토끼풀꽃 책읽기



  국민학교 다니던 1980년대에 동무들과 놀며 ‘이름 말하기 내기’를 곧잘 했다. 동네나 나무나 영화나 만화 같은 이름을 하나씩 들기도 하고, 나라나 고장 같은 이름을 하나씩 들기도 한다. 가끔 꽃이름 대기를 겨루기도 했는데, 이렇게 꽃이름을 하나하나 서로 들다 보니, 이름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구나 하고 느꼈고, 이름뿐 아니라 생김새를 제대로 떠올리지도 못하는구나 하고 느꼈다. 참 창피했다.


  그렇지만,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꽃이름을 모른대서 깔보거나 나무라는 동무나 이웃이나 어른을 못 보았다. 대학교를 다섯 학기 다니고 그만둘 적에도 꽃이름이나 풀이름을 모른대서 혀를 끌끌 차는 교수나 어른이나 이웃을 못 보았다. 시골에서 살아가는 요즈막에도 꽃이나 풀이나 나무에 붙은 오래된 이름을 모른대서 뒷통수를 긁적이거나 쓸쓸해 하는 이웃이나 어른을 못 본다.


  무척 궁금하다. 우리는 꽃도 풀도 나무도 모르는 채 살아갈 수 있을까. 능금을 먹으면서 능금꽃을 몰라도 될까. 배를 먹으면서 배꽃을 몰라도 될까. 딸기를 먹으면서 딸기꽃을 몰라도 될까. 콩을 먹으면서 콩꽃을 몰라도 될까. 밥을 먹으면서 벼꽃을 몰라도 될까. 밀꽃이나 보리꽃을 아는 이는 몇이나 있을까.


  시골로 마실을 오는 손님 가운데에는 토끼풀꽃을 모르는 분이 가끔 있다. 도시로 마실을 가서 만난 분하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골목이나 길 한쪽에 피어난 토끼풀꽃을 보고는 “어머나, 이 구석지고 시끄러운 찻길 한복판에 토끼풀꽃이 피었네.” 하고 놀라면 “어디에 있어요?” 하면서 토끼풀꽃이 어떻게 생긴 줄 모르기 일쑤이다.


  내가 다닌 국민학교에는 짐승을 키운다는 사육장이 있었고, 사육장에는 거위와 칠면조와 닭과 토끼가 있었다. 풀 먹는 짐승한테 주려고 토끼풀을 잔뜩 뜯곤 했다. 어린 나날을 도시에서 보냈어도 토끼풀은 참 자주 마주하고 자주 뜯으면서 풀내음을 맡고 꽃빛을 누렸다. 아주 넓게 무리짓기도 하지만, 조그맣게 무리짓는 토끼풀밭을 볼 때면, 또 토끼풀꽃잔치를 볼 때면, 괜히 웃음이 난다. 4347.4.3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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