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약병 책읽기



  네 식구 함께 바깥마실 나오던 금요일 아침에 마을 어귀 도랑에서 뒹구는 농약병을 본다. 마을 할배들 아침부터 마늘밭에 농약 뿌리려고 부산하다. 우리 마을과 이웃 여러 마을은 ‘친환경농업단지’ 이름표가 붙으나, 나락논에만 ‘친환경농약’을 쓸 뿐, 마늘밭에는 ‘친환경 아닌 그냥 농약’을 쓴다. 그런데, 이 마을에서 네 해째 살며 지켜보니, 그냥 농약이든 친환경이라는 농약이든, 이 농약이 훑고 지나가면 벌과 나비와 개구리가 모조리 죽는다. 제비도 죽고 참새와 딱새와 박새도 죽는다.


  농약병이 논도랑에서 뒹구니 논도랑에 미꾸라지나 가재나 다슬기나 붕어가 살지 못한다. 농약병이 논도랑에서 굴러다니니 개똥벌레를 만나기 아주 힘들다. 새마을운동을 벌인 박씨 대통령이 온 시골마을에 슬레트지붕을 얹은 일을 놓고 무엇이 잘못이요 얼마나 끔찍한 일이 시골흙에 생겼는지 깨닫는 사람을 만나기 매우 어렵다. 논둑과 밭둑을 시멘트로 메울 뿐 아니라 시멘트도랑을 자꾸 만드는 일이 앞으로 얼마나 무시무시한 일을 불러들일는지 내다보려는 사람은 아예 만날 수조차 없다.


  농약병을 논도랑에 아무렇지 않게 버리니, 이 마을에서 살아가는 할매도 할배도 나란히 수도물을 마시고 싶어 하는구나. 4347.4.1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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