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장꽃 - 김환영 동시집
김환영 지음 / 창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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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23

 


살아가며 노래하다
― 깜장꽃
 김환영 글
 창비 펴냄, 2010.11.25.

 


  닷새 동안 바깥마실을 한 뒤 고흥 시골집으로 돌아옵니다. 시외버스가 서울을 떠날 적부터 들뜹니다. 이제 우리 집으로 가는구나 하고 느끼면서 즐겁습니다.


  서울을 떠나는 시외버스는 아파트하고 차츰 멀어집니다. 서울을 벗어난 시외버스는 아파트가 안 보이는 시골로 접어듭니다. 서울은 넓고 커다랗기에 한참 달려도 아파트와 건물이 끊이지 않기 일쑤이지만, 시골에서 서울로 가는 버스는 매캐한 바람을 쐬고 서울에서 시골로 가는 버스는 싱그러운 바람을 먹습니다.


  서울과 멀어질수록 조용합니다. 서울과 떨어질수록 나무가 춤을 추고, 나무마다 새와 벌레가 깃들어 노래합니다. 서울에서는 사람들이 노래하지 않습니다. 서울에서는 기계가 소리를 내고, 텔레비전과 손전화 기계가 노래와 비슷한 소리를 냅니다.


  시골에서는 사람들이 노래할까요? 예전에는 시골에서 사람들이 노래했어요. 오늘날에는 시골에서 노래하는 사람이 드물어요. 오늘날 시골에서 노래를 할 만한 사람은 다들 도시로 떠났고, 시골에 남은 이들은 텔레비전 연속극을 들여다봅니다. 그리고, 경운기와 짐차 소리에 길들면서 스스로 노래를 부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시골에는 노래가 흐릅니다. 경운기가 지나가고 난 뒤 고즈넉한 노래가 흐릅니다. 멧새와 풀벌레가 노래를 부릅니다. 개구리와 제비가 노래를 부릅니다. 시골사람이 스스로 노래를 잊었어도, 시골들과 시골숲에 사이좋게 노래를 부릅니다.


.. 집으로 들어오는 / 흙길 한가운데 / 질경이들이 새파랗다 ..  (질경이 도로)


  해 떨어진 깜깜한 저녁에 느즈막하게 시골집으로 들어섭니다. 고흥도 시골이지만, 우리 집은 고흥읍에서 한참 더 들어갑니다. 고흥읍에서 멀어지면서 창밖으로 별빛을 느낍니다. 군내버스에서건 택시에서건 별빛이 흐르는 밤하늘을 누리는 시골자락입니다. 택시를 얻어서 타건 군내버스를 잡아서 타건 풀벌레와 나무가 들려주는 노래를 듣는 시골마을입니다.


  우리 집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기지개를 켭니다. 맨 먼저, 문가 장미나무한테 인사합니다. 장미나무 곁 동백나무한테 인사합니다. 동백나무 곁 후박나무한테 인사합니다. 뒤꼍에 밤에도 하얗게 빛나는 매화나무한테 인사합니다. 흐드러진 매화꽃은 밤에 새삼스레 빛납니다. 옆밭 복숭아나무한테 인사하고, 우리 집 마당을 밝히는 풀한테 인사합니다. 잘 다녀왔습니다. 우리 이튿날 아침에 함께 놀아요.


  살며시 풀잎을 쓰다듬습니다. 가만히 나뭇가지를 어루만집니다. 밤새 포근한 기운이 집안에 감돕니다. 새로운 새벽과 아침에 멧새가 우리 집으로 찾아들어 노래를 들려줍니다. 마을고양이 몇 마리가 우리 집 옆밭에 앉아 해바라기를 합니다. 마을고양이 한 마리가 우리 집 마당 한쪽 쑥밭에 앉아 해바라기를 합니다. 얘, 쑥밭에는 앉지 마렴. 우리 식구들 먹는 쑥이잖니.


.. 어둔 하늘 아래 / 어둔 산 // 어둔 산 아래 / 검은 숲 ..  (불빛)


  꽃을 바라보고 싶은 사람은 꽃을 바라봅니다. 꽃을 바라보는 사람은 꽃을 이야기합니다. 꽃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꽃내음이 풍기는 노래를 부릅니다.


  씨앗을 심고 싶은 사람은 씨앗을 심습니다. 씨앗을 심는 사람은 흙을 어루만집니다. 흙을 어루만지는 사람은 흙내음이 풍기는 손길로 밥을 짓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싶은 사람은 자전거를 탑니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두 다리를 믿습니다. 두 다리를 믿는 사람은 자전거를 타듯이 씩씩하게 숲길을 걷고 멧길을 넘습니다.


  텔레비전을 바라보고 싶으면 텔레비전을 바라봅니다. 할인매장에 가고 싶으면 할인매장에 갑니다. 자가용을 몰고 싶으면 자가용을 몹니다. 그러니까, 평화를 바라는 사람은 평화롭게 살아요. 사랑을 나누고 싶은 사람은 언제 어디에서나 사랑을 나누지요. 돈을 바라기에 돈과 얽힌 삶을 누리고, 삼월에 삼월꽃을 꿈꾸지 않으니 삼월이 되든 사월이 되든 오월이 되든 꽃이 어디에 얼마나 피었는가를 깨닫지 못합니다.


.. 비가 와요 / 단비가 내려요 ..  (병아리 열두 마리)


  우리 시골집 곳곳에 온갖 봄꽃이 핍니다. 아이들은 꽃을 밟기도 하고 꽃을 꺾기도 하며 꽃내음을 맡기도 합니다. 아이들과 꽃은 서로 동무입니다. 놀이동무이고 삶동무입니다.


  꽃은 풀줄기가 내놓는 선물입니다. 풀줄기는 꽃이라는 선물을 내놓으면서 씨앗이라는 꿈을 톡톡 터뜨립니다. 풀씨는 바람과 빗물을 따라 곳곳에 퍼집니다. 사람이 애써 씨앗을 심어야 푸성귀를 거둘 수 있지 않습니다. 사람이 먹는 풀은 무나 배추만이 아니에요. 질경이와 씀바귀도 사람이 먹어요. 꽃만 보는 유채가 아니라 줄기와 잎사귀와 꽃술까지 아삭아삭 먹는 풀밥입니다.


  김환영 님 동시집 《깜장꽃》(창비,2010)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바깥마실 마치고 고흥집으로 돌아오는 시외버스에서 읽으며 생각합니다. 김환영 님은 도시를 벗어나 시골로 들어서며 살아가던 어느 날 시가 저절로 터져나왔다고 해요. 온갖 이야기가 샘솟고, 갖은 노래가 피어났다고 합니다.


  아주 마땅합니다. 누구라도 시골에서 살아가면 노래를 부릅니다. 풀노래를 부르고 꽃노래를 불러요. 하늘노래와 냇물노래와 숲노래를 부르지요. 그러면, 도시에서 살면? 서울이나 부산에서 살면? 도시내기는 노래를 부를까요, 안 부를까요?


  서울내기도 노래를 부릅니다. 서울내기는 서울노래를 부릅니다. 시골내기는 시골노래를 불러요. 인천내기는 인천노래를 부르고, 강릉내기는 강릉노래를 부릅니다. 저마다 제 삶자락에서 노래를 불러요. 이 노래가 더 사랑스럽거나 저 노래가 더 얄딱구리하지 않습니다. 이 노래가 더 좋거나 저 노래가 더 얄궂지 않습니다.


  우리 삶은 언제나 노래입니다. 슬프면 슬픈 노래요 기쁘면 기쁜 노래입니다. 고단하면 고단한 노래요 웃으면 웃는 노래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김환영 님은 언제나 노래를 불렀습니다. 시골로 갔기에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언제나 노래를 불렀는데 그동안 스스로 노래인 줄 못 느꼈을 뿐이에요. 이제서야 조금 느긋한 마음과 몸가짐이 되어 노래를 들여다보는 셈이로구나 싶습니다.


  우리는 모두 노래를 부르며 살아갑니다. 우리는 모두 노래를 부르듯이 밥을 지어서 먹습니다. 우리는 모두 노래와 함께 이야기꽃을 피우고 들꽃을 사랑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노래하는 넋이요, 노래로 삶을 짓는 숨결입니다. 4347.3.2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동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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