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삶에 푸른책

 


  한국말사전에는 ‘푸름이’라는 낱말은 없습니다. ‘청소년’이라는 낱말만 있습니다. ‘청소년’이라는 낱말은 한국말사전에 나오지만, ‘청소녀’라는 낱말은 안 나옵니다. ‘청소년’이라는 낱말이 머스마만 가리키지 않으나, 아무래도 ‘소년’이라는 낱말은 머스마만 가리킵니다. 흔히 쓰는 ‘청소년’이지만, 곰곰이 살피면 그리 쓸 만하지 않다 여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푸름이’라는 낱말을 좋아하고 즐겨씁니다.


  어린이는 어린 사람을 가리킵니다. 푸름이는 푸른 사람을 가리킵니다. 몸이 푸르고 마음이 푸르기에 푸름이입니다. 사랑이 푸르고 삶이 푸르니 푸름이입니다. 다만, 오늘날 거의 모든 푸름이는 푸른 몸과 마음으로 지내지 못합니다. 푸름이 아닌 ‘예비 입시생’이나 ‘입시생’입니다. 거의 모든 푸름이가 대학바라기에 목을 매달아야 합니다.


  저는 전라남도 고흥이라고 하는 시골에서 두 아이와 함께 살아갑니다. 제가 태어난 곳은 인천이지만, 충청북도 충주 끝자락 멧골마을에서 여러 해 지낸 뒤 고흥 시골마을에 뿌리를 내렸어요. 우리 집 아이들이 푸른 숨결 마시면서 살아가기를 바라는 뜻이고, 저와 곁님 두 사람도 푸른 숨결 먹으면서 즐겁게 일하기를 바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우리 네 식구가 전남 고흥 시골마을에 깃든 까닭 가운데 하나는, 두 아이를 앞으로 학교에 보내지 않겠다는 뜻이 있으며, 두 아이가 학교에 굳이 다니지 않으면서도 푸른 넋이 되고 푸른 사랑이 되어 푸른 삶을 가꿀 수 있기를 바라는 뜻이 있기도 합니다.


  저는 고등학교만 마친 학력입니다. 우리 곁님은 중학교만 마친 학력입니다. 더 꼼꼼히 말하자면, 저는 대학교에 들어가서 다섯 학기를 다닌 뒤 스스로 그만두었습니다. 우리 곁님은 고등학교를 두 해쯤 다니다가 스스로 그만두었습니다. 저는 대학교 문턱을 밟고 첫 학기를 듣던 날부터 우리 사회에서 대학교가 제구실을 안 하거나 못 한다고 느꼈습니다. 우리 곁님은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에 대학교뿐 아니라 고등학교도 중학교도 초등학교도 모두 제구실을 안 하거나 못 한다고 깨달았습니다. 저는 좀 늦게 알아챘고, 곁님은 일찌감치 알아챘습니다. 이런 얼거리를 알아채도 학교는 그냥 다녀서 졸업장을 거머쥘 수 있지만, 뒤틀리거나 비틀린 학교를 끝까지 마쳐서 졸업장을 가져야 할 까닭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부질없는 졸업장을 내밀면서 일자리를 얻고 싶지 않았어요. 덧없는 졸업장으로 내 얼굴에 껍데기를 씌우고 싶지 않았어요.


  아름답게 살아가고 싶어 졸업장을 버렸습니다. 사랑스럽게 꿈꾸고 싶어 졸업장 아닌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저는 대학교를 다닐 적에도 신문배달을 하며 먹고살았는데, 대학교를 그만둔 뒤에는 배달 구역을 늘려 오로지 신문배달로 살림을 꾸렸습니다. 곁님은 고등학교를 그만둔 뒤에 편의점과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했습니다. 중졸 학력을 받아줄 만한 일자리는 거의 없었으리라 생각해요. 저 또한 고졸 학력을 받아주는 일자리는 참 적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고졸 학력으로 출판사에 일자리를 얻었어요. 이때가 1999년입니다. 2001년부터는 고졸 학력이면서 ‘한국말사전 만드는 기획편집자’가 되었습니다. 졸업장으로만 따진다면 도무지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저를 받아준 출판사에서는 졸업장이 아닌 마음을 바라보아 주었어요. 학력이나 경력이 아닌 제 마음속에 있는 빛과 꿈을 읽어 주었어요. 그래서 저는 2001년 1월부터 2003년 8월까지 한국말사전 만드는 일을 했습니다. 2003년 9월부터는 이오덕 선생님이 남긴 책과 글을 갈무리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학력도 경력도 없던 제 삶이니, 학맥도 연줄도 돈도 없는데, 제 마음빛을 읽고 믿는 분들이 있기에 무척 뜻있고 값있으며 아름다운 일을 하며 살 수 있었습니다.


  저는 신문배달 일을 하며 푼푼이 아끼고 모은 돈으로 꾸준히 책을 사서 읽었습니다. 출판사에 들어간 뒤에는 한 달 일삯 가운데 1/3을 책값으로 썼고 2/3는 적금을 부었어요.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기도 하고, 새책방이나 헌책방에 가서 서서 읽기도 했지만, 오래도록 되새기고 싶은 책은 언제나 허리띠 졸라매어 스스로 장만해서 밑줄을 그으면서 읽었습니다. 고등학교 다닐 적에는 한 해에 100권은 읽자고 다짐했고, 고등학교를 마친 첫 해에는 한 해에 500권은 읽자고 다짐했어요. 대학교를 다섯 학기 다니고 그만둘 무렵에는 한 해에 1000권은 읽자고 다짐했으며, 출판사에 들어가서 일할 즈음에는 한 해에 2000권은 읽자고 다짐했습니다. 이 다짐은 오늘날까지 그대로 잇습니다.


  한 해에 2000권을 장만해서 읽는 일이란 어렵다면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생각을 바꾸면 즐겁습니다. 즐겁게 삶을 배우면서 사랑을 익히겠다는 마음가짐이라면, 한 해에 2000권 아닌 3000권이나 5000권을 읽을 수 있습니다. 마음먹기에 따라 한 해에 1만 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숫자란 대수롭지 않습니다. 한 해에 2000권을 읽는대서 한 해에 1999권을 읽는 사람보다 대단하지 않습니다. 한 해에 2000권을 읽기에 한 해에 2001권을 읽는 사람보다 떨어지지 않습니다. 더 헤아려 보셔요. 한 해에 1999권을 읽는 사람은 한 해에 1998권을 읽는 사람보다 대단할까요? 한 해에 1998권을 읽는 사람은 한 해에 1997권을 읽는 사람보다 대단한가요? 한 해에 1997권을 읽는 사람은 한 해에 1996권을 읽는 사람보다 대단하나요? 더 더 헤아려 보셔요. 한 해에 100권을 읽는 사람은 한 해에 99권을 읽는 사람보다 대단할는지요? 한 해에 10권을 읽는 사람은 한 해에 9권을 읽는 사람보다 대단하다 할 만한가요?


  한 해에 0권을 읽든 한 해에 2000권을 읽든 모두 똑같습니다. 책을 읽은 권수는 아무것이 아닙니다. 한 해에 2000권이 아닌 2만 권을 읽었다 하더라도 ‘책만 읽은 삶’이라면 아무것도 되지 않습니다. 책을 읽는 까닭은 ‘책만 읽어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삶을 읽고 삶을 가꾸며 삶을 누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가다듬은 아름다운 눈빛과 눈썰미와 눈높이와 눈매로 나 스스로를 사랑하고 내 이웃을 아끼며 내 삶자리를 돌보는 빛을 얻고 싶기 때문입니다.


  책읽기를 하는 까닭은 삶읽기를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내 삶을 읽고 내 이웃 삶을 읽습니다.


  푸름이한테 들려주고 싶은 책은 바로 삶입니다. 사랑이고 꿈입니다. 노래이고 춤입니다. 웃음이고 이야기입니다. 푸름이는 푸른 삶을 가꾸도록 돕는 푸른 책을 읽을 때에 싱그러이 웃고 노래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푸른 삶을 누리도록 이끄는 푸른 책을 사귀면서 아름답게 춤추고 꿈꿀 수 있기를 바랍니다.


  푸름이한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쓰면서 몇 가지 새로운 말을 쓸 생각입니다. 한국말사전에 안 나오는 ‘푸름이’라는 낱말을 쓰듯이, 푸름이가 읽을 예쁜 책을 가리켜 ‘푸른책’이라고 이름을 붙이려 합니다. 푸른책을 읽는 푸름이는 ‘푸른삶’을 가꾼다고 말하려 합니다. 책을 읽는 길은 ‘책길’이라 가리키고, 책을 읽는 삶은 ‘책삶’이라 가리키며, 책으로 이루어진 숲은 ‘책숲’이라 가리키려 해요. ‘책읽기’와 맞물려 ‘삶읽기’라는 말을 쓰려 하고, ‘글읽기’와 ‘글쓰기’라든지, ‘삶빛’과 ‘숲빛’과 ‘마음빛’처럼, 스스로 마음을 아끼고 보살피는 어여쁜 말을 차근차근 길어올리려 합니다. 즐거이 노래하면서 ‘책말’을 읽으셔요. 마음을 살찌우는 ‘책밥’을 배불리 먹으면서 이웃하고 ‘책사랑’을 나누시기를 빌어요. 착하고 참다우며 아름다운 마음이 피어나는 자리에, 사랑스럽고 즐거우며 맑은 꿈이 몽실몽실 자라리라 믿습니다. 4347.3.1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푸른삶 푸른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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