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자리



  인천마실·서울마실·일산마실을 하면서 틈틈이 글을 쓴다. 글은 어디에서나 쓸 수 있다. 그런데 고흥이 아닌 인천과 서울과 일산에서는 들노래나 숲빛을 누리지 못하면서 글을 쓴다. 인천과 서울과 일산에서는 끊임없는 자동차와 기계가 복닥이는 소리가 퍼지는 한복판에서 글을 쓴다.


  어느 곳에 있더라도 나는 나이기 때문에 내가 쓰는 글은 내 삶이다. 어느 곳에 있더라도 내 마음이나 넋이 흔들릴 까닭이 없으니 내 글은 내 뜻에 따라 흐른다. 다만, 언제나 맑은 물을 마실 수 있는 곳에서 쓰는 글하고 언제나 안 맑은 물에 둘러싸인 곳에서 쓰는 글이 같지 않다. 늘 푸른 바람이 흐르는 곳에서 쓰는 글이랑 늘 안 푸른 바람이 흐르는 곳에서 쓰는 글이랑 같지 않다.


  공부를 하려고 조용한 곳을 찾듯이, 나 또한 아이들과 조용한 곳을 찾아서 살아가야 비로소 글빛 북돋우는 하루가 된다 할 수 있을까. 삶에 따라 태어나는 글이니, 시골에서 살며 쓰는 글과 도시에 머물며 쓰는 글은 사뭇 다를밖에 없을까.


  사람은 어느 곳에 살더라도 스스로 움직인다. 시골에 있기에 하늘빛을 더 바라보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둘레가 온갖 건물로 꽉 막힌데다가 자동차가 물결치고 사람이 사람들한테 치이는 자리에서는 좀처럼 하늘빛을 그리지 못한다. 하늘을 올려다볼 틈이 없으니 하늘을 못 보기도 한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가는 그만 자동차한테 받치거나 길바닥에서 넘어지거나 부딪힐 만하다. 내 마음은 어디에서도 내 마음이지만, 인천과 서울과 일산에서 닷새째 지내며 돌아보니, 자꾸 어느 한쪽으로 휩쓸리는구나 하고 깨닫는다. 졸졸졸 흐르는 냇물을 마실 수 없이 쓰는 글과, 아침저녁으로 멧새 노랫소리가 퍼지지 않는 곳에서 쓰는 글과, 온갖 봄풀이 돋는데다가 겨울눈이 터지며 꽃망울이랑 잎망울이 흐드러지는 시골빛을 누리는 동안 쓰던 글은 참 다르구나 싶다. 시골빛을 꿈꾸며 쓰는 글과 시골빛을 누리며 쓰는 글은 참 다르구나 하고 느낀다. 4347.3.1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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