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 연가 1
아소우 미코토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9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317

 


가까운 이웃과 살가이 사랑
― 골목길 연가 1
 아소우 미코토 글·그림
 최윤정 옮김
 시리얼 펴냄, 2011.9.25.

 


  누구나 마음속으로 품은 꿈대로 살아갑니다. 무엇을 보거나 듣거나 읽는가에 따라 스스로 삶을 바꿉니다. 아름다운 빛을 바라면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보거나 듣거나 읽는 사람은 아름다운 길을 걸어갑니다. 아름다운 빛을 바라지 않을 때에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누리지 못하고 아름다운 삶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힘들거나 고된 나날이기에 아름다운 빛을 가슴에 못 품지 않습니다. 느긋하거나 걱정없다 싶은 나날이기에 아름다운 빛을 가슴에 품지 않습니다. 스스로 빛이 될 때에 빛입니다. 스스로 빛이 못 될 때에는 빛이 못 돼요. 남이 나를 아낄 때에 사랑이 아닙니다. 스스로 나를 아낄 때에 사랑입니다. 남이 베푸는 사랑이 아니라, 스스로 길어올려 삶을 덥히고 가꾸면서 이루는 사랑이에요.


- 교토의 거리는 바둑판 모양. 그 틈을 메우듯 작고 좁은 길이 곳곳에. 사람이 살고 고양이가 가로지르는 그 길을 사람들은 골목길이라고 부릅니다. (2쪽)


  먼먼 옛날부터 사람들은 높다란 집을 짓지 않았습니다. 집을 높다랗게 지을 까닭이 없습니다. 먼먼 옛날부터 사람들은 집을 조그맣게 지었습니다. 조그맣게 지은 집에 온 식구 바글바글 얼크러졌습니다.


  우리 집도 조그맣고 이웃집도 조그맣기 마련이었습니다. 어느 집에서나 하늘바라기를 하며, 어느 집에서나 꽃잔치가 이루어집니다. 햇볕을 혼자 차지하려는 듯이 짓던 집은 없어요. 들과 숲을 혼자 거머쥐려는 듯이 만든 집은 없어요. 모진 바람을 막으려는 섬이나 바닷가라면 서로 촘촘히 기대면서 돌울타리를 쌓지만, 여느 들이나 숲에서 짓는 들집과 숲집은 서로 넉넉하고 아늑했습니다.


  전쟁 소용돌이가 치면서 집이 달라집니다. 전쟁을 꾀하는 권력자와 지도자는 사람들을 내려다볼 만한 집을 세웁니다. 층집을 쌓습니다. 이웃을 두지 않는 권력자와 지도자는 이웃이 될 사람을 심부름꾼으로 부립니다. 이러면서 꽤나 널따란 집을 짓습니다. 궁궐이나 기와집은 바로 권력자와 지도자라는 이들이 부리던 슬픈 집입니다. 오늘날에는 문화유산으로 삼기도 하지만, 궁궐을 지어야 할 까닭이 없어요. 아흔아홉 간이나 되는 기와집을 지을 일이 없습니다.


  흔히 말하기를, 못된 나라나 권력자 때문에 전쟁이 생긴다지만, 궁궐과 기와집 때문에 전쟁이 생깁니다. 이웃한 다른 나라에서 쳐들어와서 터지는 전쟁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불러들이는 전쟁입니다.


  왜냐하면 조용하고 수수하게 살아가는 조그마한 시골마을로 쳐들어올 군대는 없습니다. 조그맣고 투박하게 살아가는 한갓진 시골마을로 쳐들어갈 군대는 없습니다. 어느 정부 군대이든 중앙정부를 노립니다. 어느 나라 군대이든 권력자한테 총구멍을 겨누어 권력을 떨어뜨린 뒤 그 자리로 올라서려 합니다.


- ‘충분히 즐거운데요? 난 종이라면 사족을 못 쓰거든요.’ (13쪽)
- “그런데 난, 책만 만질 수 있다면 그냥 행복한가 봐요.” (20쪽)
- “책으로 만들고 싶을 만큼 간절한 바람을, 책으로 만들어 보자 결심하게 되는 건 대개, 그만둘 때예요. 난, 손님이 참고 참아 왔던 바람에, 아름다운 무덤을 채워 주는 거예요.” (28쪽)


  작은 집 사람들은 서로 이웃입니다. 서로 이웃이니 작은 집이 모인 마을에는 지도자도 대통령도 있을 까닭이 없습니다. 작은 집이 모인 마을에는 판사도 검사도 부질없습니다. 작은 집이 모인 마을에는 교사나 교수도 쓸모없습니다. 작은 집이 모인 마을에는 의사와 간호사조차 덧없습니다. 작은 집이 모인 마을에는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나 공무원이나 회사원이나 공장 노동자조차 있을 일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작은 집이 모인 시골마을에서는 어느 집이나 스스로 삶을 짓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밥과 집과 옷을 지으며 살아가는 수수한 시골마을은 서로서로 아름다운 이웃입니다. 마을에 있어야 할 사람은 이웃일 뿐, 경찰이나 군대가 있어야 하지 않아요. 시골마을이 평화로운 까닭은 군대나 경찰이 있기 때문이 아니에요. 시골마을에는 전쟁무기 하나 없고 지도자라든지 권력자가 아무도 없기 때문에 평화롭습니다.


  이와 달리 경찰이 많고 군대까지 있는 커다란 도시는 평화롭지 않습니다. 판사와 검사가 있고, 의사와 간호사가 있으며, 교사와 교수가 많은 커다란 도시는 아름답지 않습니다. 공무원도 회사원도 공장 노동자도 많으며, 연예인이나 운동선수 또한 많은 커다란 도시는 평화로움하고는 아주 동떨어져요. 함께 나누면서 서로 아끼는 얼거리가 아닌, 피를 튀기도록 다투면서 남을 밟고 올라서야 살아남는 얼거리인 커다란 도시이기 때문입니다.


- “고마워. 그 사람은 ‘훨씬 더 좋은 거’ 운운했지만, 그깟 100만엔짜리 다이아몬드보다 훨씬 좋아.” (58쪽)
- “케이크 만드는 거? 배운 적 없어. 어릴 때부터 책 보고 혼자 만들었어. 너무 먹고 싶어서. 우리 집이 기온에서 화과자집을 하거든.” (135쪽)
- “나 쿄토가 싫은 건 아니야. 그저 도쿄말을 하고 싶은 거지. 도쿄말 전염시켜 줘.” (145쪽)


  아소우 미코토 님 만화책 《골목길 연가》(시리얼,2011) 첫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연가’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일본사람이 즐겨쓰는 한자말입니다. 일본사람은 ‘연가’라든지 ‘戀歌’일 테지만, 한국사람한테는 ‘사랑노래’입니다. 그러니까, 이 만화책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골목길 사랑노래”입니다. 조그마한 골목집이 모인 골목동네에서 살아가는 이웃이 저마다 어떻게 얽히고 설키면서 사랑노래를 부르는 빛을 이루는가를 보여줍니다. 골목길에서 피어나는 사랑노래가 우리 삶을 얼마나 아름답고 즐겁게 북돋우는가를 밝힙니다.


- “촛불을 가운데 두고 이렇게 둘이 앉아 있으면, 왠지 함께 있는 사람과 거리도 가까워지는 것 같고, 몸과 몸을 기댄 채, 하나의 빛에 포근하게 싸이는 느낌도 들고, 그 가족에게도 아마 소중한 시간이었을 거예요.” (160쪽)


  아파트에 사랑노래가 없다고 할 수 없어요. 어디에서라도 서로 아끼는 마음이 흐르면 사랑노래가 번집니다. 사막에서도 너른 바다에서도 사랑노래는 흐릅니다. 시끌벅적한 도시 한복판에서도 우글거리는 학교에서도 사랑노래는 얼마든지 흐릅니다.


  마음을 열어 빙그레 웃음짓는 사람이 사랑을 속삭입니다. 마음 가득 따사로운 품이 되어 이웃을 껴안거나 어깨동무하는 사람이 사랑을 들려줍니다. 마음밭에 꿈씨 한 톨 심어 곱게 가꾸는 사람이 사랑을 꽃피웁니다.


  만화책 《골목길 연가》는 골목길이기에 더 멋스럽거나 아름답다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서로 이웃이 되는 자리를 보여주고, 서로 사랑노래가 되는 결을 밝힐 뿐입니다. 골목길이기에 더 아름다운 사랑이 아니라, 서로 마음을 열어 마주하는 이웃들이기에 사랑노래가 되는 무늬를 찬찬히 이야기해요.


  가까운 이웃과 살가이 사랑합니다. 나는 너한테 가까운 이웃이 되고, 너는 나한테 가까운 이웃이 됩니다. 4347.2.2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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