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후다닥

 


  아침에 큰아이가 일어날 즈음 밥냄비 물갈이를 한다. 밤냄비에는 어젯밤에 미리 씻어서 불리는 쌀이 있다. 작은아이가 일어날 즈음 밥냄비에 불을 넣는다. 천천히 천천히 끓겠지. 보일러를 돌린다. 곁님 핏기저귀부터 빨래한다. 그제 빨래를 잔뜩 했는데 어제 하루 또 빨래가 잔뜩 나온다. 비빔질을 하며 따순 물이 나올 즈음 큰아이를 부른다. 큰아이 목 둘레에 수건을 두른 뒤에 머리를 감긴다. 머리를 다 감긴 뒤 머리카락 물기를 털고 나서 큰아이더러 보일러를 끄고 마당으로 나가서 놀며 머리를 말리라고 얘기한다.


  고단한 몸이 아직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았기에 핏기저귀와 속옷만 손빨래를 하고, 나머지는 기계한테 맡기기로 한다. 기계한테 맡기더라도 모든 옷가지를 비누로 비빔질을 한다. 소매와 깃과 바짓단은 손으로 조물조물 비비지 않으면 기계한테 맡기더라도 제대로 빨아내지 못한다. 수건도 손으로 척척 잘 비비고 나서야 기계한테 맡긴다.


  밥냄비 불을 줄이고 피아노방을 치운다. 두 아이는 하루만에, 아니 반나절만에 신나게 어지르며 논다. 치우고 돌아서면 다시 어지르고, 또 치우고 돌아서면 새로 어지른다. 먼먼 옛날부터 타고난 버릇일까. 돌이켜보면, 먼먼 옛날에는 아이들이 집안에서 어지를 살림이 없었으리라. 피아노방 바닥에 깔아 놓은 깔개와 이불을 걷는다. 방바닥을 다 치우고 비질을 한다. 깔개와 이불을 마당에서 텅텅 먼지를 털고 해바라기를 시킨다.


  부엌으로 돌아가 밥불을 더 줄이고, 국냄비에 불을 넣는다. 국을 끓이면서 감자와 고구마를 썬다. 오늘은 카레를 해 봐야지. 국이 거의 익을 무렵 카레냄비가 달아오른다. 기름을 휘 두르고는 감자와 고구마를 볶는다. 국이 다 익어 불을 끌 무렵 감자와 고구마를 그만 볶고는 물을 채워 불을 키운다.


  배고픈 아이들은 내가 부르지 않았어도 밥상맡에 앉아서 서로 조잘거리면서 논다. 배고프지? 배가 안 고프면 부르고 불러도 안 오잖아? 구워서 소금을 뿌린 김은 아이들이 바로 먹어치우지만 굽지도 않고 소금도 안 뿌린 김은 아이들이 손을 잘 안 댄다. 그렇지만 모르는 척한다. 배고픈 아이들은 밥상에 딱 하나 놓은 ‘안 굽고 소금 안 친’ 김을 하나씩 날름날름 집어먹는다.


  콩나물무국에 된장을 푼다. 그러고 나서 국그릇에 떠러 두 아이한테 내준다. 국부터 마시렴. 국에 함께 넣은 곤약덩이를 꺼낸다. 통통통 잘게 썬다. 밥상에 올린다. 두 아이는 국과 김과 곤약을 허둥지둥 먹는다. 카레가 다 끓고 익으려면 멀었다.


  빨래기계는 진작 일을 마쳤다. 카레가 끓는 사이 옷가지를 꺼내 마당으로 나간다. 빨랫줄과 빨랫대에 알맞게 넌다. 곁님 핏기저귀는 다 말랐으나 더 햇볕을 쬐도록 그대로 둔다. 기지개를 켜며 부엌으로 돌아가 카레 간을 본다. 양배추와 물고기묵을 썰어서 간장으로 버무린다. 아이들이 너무 배고파 하니 이것부터 내주고, 카레는 간이 덜 맞았지만 얼른 떠서 내준다. 함께 밥을 먹는데, 오늘 카레는 영 간이 안 맞아 밍밍하다. 얘들아 미안하구나. 그래도 배고픈 아이들은 씩씩하게 밥그릇을 비운다. 배고플 적에는 간이고 맛이고 아랑곳하지는 않네. 저녁에는 간을 제대로 맞추어 맛나게 새로 차려 줄게. 4347.2.23.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