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과 색칠책

 


  아이들이 아름다운 그림책을 가까이하면 아름다운 빛과 넋과 이야기를 받아먹는다. 아이들이 ‘흉내내기 색칠책’을 가까이하면 스스로 고운 빛과 넋과 이야기를 캐내기보다는 ‘똑같이 흉내내기’로 나아가곤 한다. ‘흉내내기 색칠책’이란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날개 펼쳐서 마음껏 그림놀이 하는 길에 걸림돌이 된다. 틀림없는 일이다. 그러나, 마냥 손을 놓고 색칠책을 던지면 아이들 넋이 흔들릴 만하지만, 수많은 놀잇감 가운데 하나로 삼도록 하고는, 아이가 다른 놀이로 폭 빠져들도록 보금자리를 돌보면, 색칠책쯤은 아무것 아닐 수 있다.


  송이송이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손이 얼도록 눈놀이를 하면, 마당에서 까르르 노래하면서 뛰어놀면, 꽃삽이나 호미로 흙을 쪼면서 흙투성이 되도록 놀면, 세 식구가 나란히 자전거를 타고 들길을 달리면, 색칠책쯤이란 ‘시골에도 지나다니는 자동차 한 대’일 뿐이다.


  두 아이를 자전거에 태우고 마실을 다닐라치면, 두 아이는 모두 자동차가 자전거 옆으로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자동차 배기가스가 고약하다면서 코를 싸쥔다. 나도 자동차 배기가스가 고약하다고 느끼는데, 아이들은 더 짙게 느끼는 듯하다. 다른 어른들은 어떨까? 자동차를 모는 어른은 자동차 배기가스를 얼마나 느낄까?


  멧새가 지저귀고 풀벌레가 노래하는 고운 바람을 품에 안는 아이라면, 어떤 책을 손에 쥐어 넘기더라도 고운 빛을 스스로 가꿀 수 있으리라 느낀다. 구름이 흐르고 별이 반짝이는 소리를 가슴에 담는 아이라면, 책 하나 없이 지내더라도 맑은 노래를 스스로 일굴 수 있으리라 느낀다. 아이들 눈높이를 살피는 일이란, 어른이 무릎을 꿇고 앉는 눈높이가 아니다.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이 땅에서 어른들 스스로 아름답게 살아가며 사랑하는 길을 찾을 때에 ‘아이들 눈높이’가 된다. 4347.2.6.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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