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말하는 두 갈래 길

 


  책을 읽고 나서 ‘책을 말하자’ 하고 생각할 적에, 으레 두 갈래 길에 선다. 이 책을 이웃한테 알려주면서 선물할 만한가, 이 책은 조용히 서재도서관에 갖다 두고는 마음속에서 잊을 만한가.


  어느 책이든 스스로 주머니를 털어서 장만한 뒤 읽는다. 다 읽고 나서 즐거운 책이든, 다 읽은 뒤에 아쉽구나 느끼는 책이든, 스스로 살림돈을 덜어 책을 장만한다. 그러니, 책을 읽고 나서 ‘책을 말하자’ 하고 쓰는 느낌글은 으레 두 갈래 길에 선다. 내 살림돈을 들여서 장만한 이 책이 즐거웠다면, 조금 들인 책값으로 이렇게 큰 보람을 누리는구나 하고 깨닫는다. 내 살림돈을 그러모아 장만한 이 책이 아쉽거나 모자라거나 따분했다면, 조금 들인 책값조차 씁쓸하거나 쓸쓸하다.


  나는 어느 책 하나를 아쉽거나 안타깝다고 느낄 테지만, 다른 이는 이 책을 아쉽지 않다고 느끼거나 안타깝지 않다고 느끼리라. 왜냐하면, 좋다고 생각해서 이 책을 펴내지 않았겠는가. 생각해 보면 그렇다. 나는 냇물을 즐겁게 마신다. 다슬기와 가재가 함께 살아가는 냇물을 즐겁게 마신다. 오늘날 거의 모든 사람들은 수돗물을 마신다. 시골마을 여럿을 잠기게 하고 시멘트로 둑을 세운 커다란 댐에 가둔 물을 시멘트관을 잇고 이어서 화학처리와 살균처리를 한 수돗물을 마시는 오늘날 거의 모든 사람들이다. 정수기로 거르더라도 수돗물은 수돗물이다. 수돗물에서 나는 냄새를 느끼는 사람은 페트병에 담긴 샘물을 마시는데, 페트병 샘물도 샘물이지만, 플라스틱통에 담긴 채 퍽 오랜 날 고인 샘물이다. 흐르는 물이 아니다.


  골짜기와 들과 숲 사이를 흐르는 냇물을 마시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오늘날 아주 드물다. 도시사람과 시골사람이 99:1이라 할 만하니, 1만 냇물을 마실는지 모른다면, 1조차 냇물을 마시지는 않는다. 시골에도 수돗물이 들어온다. 중앙정부와 지자체와 농협에서는 ‘냇물이 안 깨끗하다’는 이야기를 자꾸 퍼뜨린다. 아마 999:1쯤 되지 않을까.


  냇물맛을 모르고 냇물내음을 모르는 사람한테 냇물을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냇물빛과 냇물노래를 들려주기도 어렵다. 그렇지만, 조용히 믿는다. 우리 몸을 이루는 물을 헤아리고, 지구별을 둘러싼 빗물과 바닷물을 떠올린다. 어느 누구도 빗물과 바닷물을 화학처리나 살균처리 하지 않는다. 바닷물을 화학처리나 살균처리 한다면 바다에서 사는 물고기와 조개는 모두 죽는다. 공장에서 냇물에 쓰레기를 흘려 보라. 논밭에서 냇물에 농약을 풀어 보라. 이때에도 물고기는 몽땅 죽는다. 발전소에서 열폐수를 바다에 쏟아부으면 ‘따뜻한 바다’에서 사는 물고기는 몰릴는지 모르나, 발전소 둘레 바다는 몽땅 망가진다.


  독자 자리에 서건 작가 자리에 서건, 모든 사람들이 별을 떠올릴 수 있기를 빈다. 별은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똑같이 뜬다. 별은 낮에도 밤에도 똑같이 저 하늘에 있다. 매캐한 먼지띠에 가려 별을 못 본다 하더라도 별은 틀림없이 저 하늘에서 맑게 빛난다. 지구도 우주 한쪽에서 맑게 빛나는 별 가운데 하나이다. 우리는 누구나 맑은 별빛을 온몸으로 담으면서 살아가는 숨결이다.


  책이 되어 준 나무한테 아름다운 빛을 흩뿌리는 삶이 되기를 빈다. 무늬로만 책이 아닌, 속살로 살뜰히 책이 될 수 있기를 빈다. 아름다운 빛을 알뜰히 품는 책이 태어날 수 있기를 빈다. 아름다운 빛을 즐겁게 알아보는 사람들이 늘어나기를 빈다. 4347.1.8.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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