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함께 22. 곁에서 맞이하는 빛

 


  아이들과 밥을 먹는 자리에서 사진을 곧잘 찍는다. 아침저녁으로 밥상을 마주하면서, 아니 아침저녁으로 밥상을 차리면서 으레 사진을 몇 장씩 찍는다. 아이들 먹이려고 차린 밥이 대견하기에 사진을 찍지는 않고, 아이들과 함께 먹으려고 차리는 밥상에 감도는 빛, 이를테면 밥빛이 날마다 새삼스레 재미있다고 느껴 사진을 찍는다.


  밥빛을 흑백사진으로 찍을 수도 있다. 아마, 흑백사진으로 찍는 밥빛은 무척 새로우리라 본다. 그런데, 밥차림을 흑백사진으로 찍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옷차림을 사진으로 찍을 적에도 흑백사진으로 찍는 사람은 아주 드물고, 밥차림도, 또 집안 살림살이도 흑백사진으로 찍는 사람은 무척 드물다. 왜냐하면, 밥차림이나 옷차림이나 집살림 모두 온갖 빛깔이 곱게 어우러지면서 정갈하고 환하기 때문이다.


  가난한 나라로 찾아가서 다큐사진을 찍는다든지, 어떤 이야기틀 하나를 세워 사진을 찍는다고 할 적에, 사람들은 으레 흑백사진을 더 좋아하거나 즐긴다. 무지개빛 사진으로 찍으면 어수선하다고들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맞는 말은 아니라고 느낀다. 왜 그런가 하면, 어수선한 느낌은 사진을 찍는 사람 스스로 갈무리하거나 다스릴 노릇이다. 언뜻 보기에 어수선하구나 싶대서 흑백사진으로 찍으면 안 어수선하게 보일까? 여러모로 어수선하도록 흐트러진 빛깔 때문에 눈이 아프다면, 이 어수선하도록 흐트러진 빛깔을 다스려 아름다운 빛과 무늬로 보여주는 몫을 바로 사진가(또는 사진작가) 스스로 맡아야 하지 않을까?


  흑백사진에는 흑백사진 맛이 있다. 흑백사진다운 맛을 살리려고 흑백사진을 찍을 적에 비로소 맑게 빛난다. 검정과 하양이 얼크러진 고운 빛을 살리려는 흑백사진일 때에 바야흐로 아름다운 흑백사진이 태어난다.


  다시 말하자면, 무지개빛을 사진으로 담으려 할 적에도, 이 무지개빛을 곱게 살리면서 살가운 멋을 나누려는 넋이 있어야 한다. 이런 넋이 없이 이냥저냥 무지개빛 사진을 찍으면 너무 어수선하고 만다. 이런 넋이 없이 그냥저냥 흑백사진을 찍으면, 제빛이 제대로 살지 않는다.


  아이들과 밥을 먹는 자리에서 가끔 흑백사진으로 찍어 보기는 했는데, 영 맛과 멋이 살지 않는다고 느꼈다. 퍽 재미있기는 하지만, 잡아야 할 빛을 흘려 버리는 셈이라고 느끼곤 했다. 무지개빛이 아이들 손과 몸에 고이 깃드는데, 이 빛을 섣불리 지우거나 감추는구나 하고 느끼기도 했다.


  아이들은 저희가 좋아하는 빛깔이 눈부시거나 환한 옷을 즐겨입는다. 아이들 밥그릇은 알록달록 곱다. 아이들이 눈으로도 즐겁게 밥을 먹기를 바라면서 밥과 나물도 보드랍게 빛나도록 요모조모 헤아려 그릇과 접시를 놓는다. 그러니, 아이들 밥차림은 처음부터 무지개빛 사진으로 찍도록 엮은 셈이다. 눈빛 하나 손길 하나 따사로운 햇볕이 깃들어 여러 빛깔 골고루 퍼지기를 바라면서 차린 밥상이기에, 이 밥상을 자연빛 그대로 찍는다. 4346.12.22.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