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일기 35] 20대가 없는 고흥
― 도시로 떠날 아이들 만나고

 


  아침에 읍내로 군내버스를 타고 간 뒤, 읍내에서 도양읍으로 다시 시외버스를 타고 찾아갑니다. 도양읍 버스역에서 도양읍을 살짝 한 바퀴 돌고 나서 녹동고등학교로 갔어요. 오늘은 아침에 한 시간 반 동안 녹동고 3학년 푸름이하고 ‘삶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습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눌 푸름이는 대입시험을 마쳤으며, 고등학교를 마치면 곧 도시로 떠나 대학교를 다닌다고 해요.


  그런데, 입시에 시달리면서 잠을 제대로 못 잤을까요. 아이들은 처음부터 책상에 엎드려서 잠을 자기도 합니다. 1/4쯤은 잠을 부르고, 1/4쯤은 맨 뒤에 앉아서 등을 돌린 채 수다를 떱니다. 그렇지만 1/2이 되는 아이들이 저를 바라보면서 눈빛을 밝혀요. 그래서 자는 아이는 굳이 깨우지 않기로 했어요. 이야기보다 잠을 바라는 아이라면 잠을 자야 맞아요. 이야기보다 저희끼리 수다를 떨 아이들도 저희끼리 수다를 떨어야지요.


  한참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도시를 떠나 시골마을 고흥으로 온 까닭을 들려주고는, 아이들더러 “고흥에 무엇이 없을까요?” 하고 물었어요. ‘영화관’이 없고 ‘백화점’이 없다고 말하더니, 누군가 ‘20대’가 없다고 말해요. 무엇이 없느냐고 물은 뒤 ‘고흥에 무엇이 있을까’ 하고 물으려다가 입을 다물었어요. 그래, 너희 말대로 고흥에 20대가 없지. 그러면 왜 고흥에 20대가 없을까?


  녹동고등학교뿐 아니라 고흥고등학교에서도 고3 아이들은 입시를 마치고 모두 고흥을 떠나 서울로 가요. 고흥을 한 번 떠난 아이들은 어른이 되도록 고흥으로 돌아오지 않아요. 처음에는 명절날 맞추어 돌아오다가도 나중에는 아예 안 오기 일쑤예요. 그러니, 고흥은 남녘에서 인구가 가장 빠르게 줄어드는 시골입니다.


  나는 아이들한테 내 삶을 들려주었습니다. 눈빛을 맑게 밝히는 아이라면 가슴으로 아로새겨 주리라 믿고 이야기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장만 갖고도 한국말사전 만드는 일을 이 시골에서 하는 마흔 살 아저씨는, 고속도로와 골프장과 공장과 발전소와 군부대를 비롯한 위해시설뿐 아니라 극장도 백화점도 아파트숲도 없이 조용하며 깨끗하고 아름다운 이 시골에서 뿌리내릴 생각이라고, 우리 집 아이들이 커서 나중에 이곳을 떠나더라도 언제든지 돌아오고 싶은 고향이 되도록 집숲을 일구어 나무와 풀과 꽃과 흙과 햇볕과 바람과 빗물을 사랑하며 살아갈 생각이라고, 찬찬히 말했어요.


  예쁜 아이들아, 왜 고흥에 20대가 없는 줄 아니? 다들 대학교만 바라보고 회사원이나 공무원만 바라보면서 우리 삶터이자 고향인 이 시골에 어떤 빛과 꿈과 사랑이 있는 줄 하나도 살피지 않고 아끼지 않기 때문이란다. 숲을 바라보지 않고, 바다를 껴안지 않으며, 나무와 풀과 흙을 보듬지 않기 때문이란다. 4346.12.18.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고흥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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