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도끼 사계절 1318 문고 18
게리 폴슨 지음, 김민석 옮김 / 사계절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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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책과 함께 살기 108

 


아이들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 손도끼
 게리 폴슨
 김민석 옮김
 사계절 펴냄, 2001.3.28.

 


  게리 폴슨 님이 쓴 《손도끼》(사계절,2001)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이 줄거리가 미국과 캐나다 사이 아닌, 한국 아이가 한국에서 겪는 일이라면 어떨까 하고. 한국 아이 가운데 설악산이나 오대산, 지리산이나 한라산, 아니면 북녘 묘향산이나 백두산 같은 데에서 길을 잃으면 어떨까 하고.


.. 법원은 브라이언이 어머니와 지내도록 판결을 내렸다. 판사는 법률이 정하는 ‘방문권’에 따라 여름방학 동안에는 브라이언이 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모든 게 형식적이었다. 브라이언은 변호사들 못지않게 판사들도 미웠다 ..  (10쪽)


  한국에서는 작은 비행기를 함께 타고 어디론가 날아갈 아이들이 거의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작은 배를 타고 가다가 그만 배가 뒤집혀 어디인지 모를 외딴섬에 갈 아이들도 거의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깊은 숲속은 아니더라도 외딴섬에 아이 하나 똑 떨어졌다고 한다면, 외딴섬 둘레로 지나가는 배가 없고, 뭍하고도 제법 떨어졌다면, 이 외딴섬 아이는 어떻게 지낼까요.


  외딴섬에는 전화기가 터지지 않고, 물꼭지라든지 작은 집이라든지 아무것 없습니다. 편의점도 컴퓨터도 인터넷도 없습니다. 이런 곳에서 한국 아이는 무엇을 할까요. 한국에서는 손도끼를 갖기는 힘들 테고, 주머니칼 하나 있다고 치면, 열세 살 한국 아이는, 아니 열세 살 아닌 열아홉 살이나 스무 살 한국 아이는 어떻게 지낼까요.


  한 끼니라도 무언가 먹을 수 있을까요. 하룻밤이라도 제대로 잘 수 있을까요. 목마름을 채울 물을 얻을 수 있을까요. 신이 해지고 양말이 구멍나며 온몸에서 땟국물 흐를 적에 잘 견딜 수 있을까요.


.. ‘어떻게 이렇게 조용할 수 있을까?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부서지고, 찢어지고, 울부짖는 소리뿐이었는데. 어떻게 새들은 저렇게 한가로이 지저귈 수 있을까?’ … 믿을 수가 없었다. 야외 생활에 관한 책이나 텔레비전 영화에서는 모기나 파리에 대해 언급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자연에 관한 프로그램에서 보여준 건 아름다운 경치나 즐겁게 뛰노는 동물들뿐이었다 … 브라이언은 한동안 멍하니 물고기들을 바라보며 경치가 정말 좋다는 생각을 했다. 신기한 볼거리가 많았지만 모든 게 초록색과 파란색을 띤 얼룩으로만 보였다. 브라이언에겐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회색과 검정색이 눈에 익었다. 그리고 차들이 내는 소음과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로 가득 찬 도시의 소음에 익숙해져 있었다 ..  (35, 39, 42쪽)


  어린이책을 살피면 ‘○○에서 살아남기’ 같은 책이 꽤 나오고 제법 읽힙니다. 아이들은 책이나 만화나 영화나 다큐방송으로 깊은 숲속이나 외딴섬 이야기를 구경합니다. 학교에서는 그나마 ‘○○에서 살아남기’를 들려주지도 않아요. 학교에서는 아이들한테 불을 어떻게 피우는지 가르치지 못하며, 물을 어떻게 얻고, 밥을 어떻게 짓는지 알려주지 못합니다. 학교에서 기껏 가르치는 한 가지라면 대학입학시험뿐입니다.


  아이들도 학교와 똑같습니다. 으레 어머니가 밥을 차려 주겠거니, 또 학교에서는 급식을 먹으면 되겠거니, 정 안 되면 돈으로 사다 먹거나, 전화로 시켜서 카드로 긁으면 되겠거니, 하고 여깁니다. 밥을 짓는다 하더라도 전기밥솥 단추 누를 생각만 하지, 쌀을 헹구어 불려서 물을 맞추어 안칠 줄 몰라요. 아무도 안 가르치고, 아무도 안 보여줘요. 이런 아주 작은 한 가지마저 학교에서는 가르칠 줄 모르는데, 어쩌면 학교 교사부터 밥짓기를 할 줄 모르거나 안 하기에 못 가르친다 할 만합니다. 학교 교사부터 두 다리로 걸어다니지 않으니, 아이들더러 걷는 즐거움을 느끼라 하지 못해요. 학교 교사부터 골목동네 작은 사람들 삶하고 동떨어지니, 이웃을 사랑하거나 이웃과 어깨동무하는 삶을 가르치지 못해요.


  교과서 진도는 잘 나가는 학교입니다. 대학교에 붙이는 일은 잘 하는 학교입니다. 그렇지만, 사람답게 사람을 키운다거나, 사람다운 빛을 누리도록 돕는 일하고는 아주 멀리 떨어진 학교예요.


.. 친구가 된 모닥불과 함께 하룻밤을 지내고 나서 땔감이 많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오전 내내 숲에서 일했다. 부러뜨린 나뭇가지들을 쪼개거나 잘라 은신처 돌출부 아래에 차곡차곡 쌓았다 … 놀랍게도 배가 불렀다. 다시는 배가 부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앞으로는 허기만 느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배가 불렀다. 거북알 한 개와 나무딸기 몇 움큼밖에 먹지 않았지만 배가 불렀다 … 자신이 직접 만든 활과 화살로 음식을 장만했다는 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터득했다는 것과 같은 말이었다. 브라이언은 활, 화살, 물고기, 손도끼, 하늘을 생각하며 기뻐 날뛰었다 ..  (102, 109, 121쪽)


  학교는 아이들을 시험기계와 입시바보로 만든다고 느껴요. 학교는 아이들마다 다 다른 빛을 살리지 않는다고 느껴요. 아니, 학교는 아이들한테 서린 다 다른 빛을 짓밟거나 깔아뭉개는 일에 앞장선다고 느껴요.


  학교를 마친 아이들이 남녀가 서로 아끼며 사랑하는 길을 걷는다고 느끼지 못하겠어요. 학교를 마친 아이들이 민주와 통일과 평등과 평화로 나아간다고 느끼지 못하겠어요. 학교를 마친 아이들이,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마친 아이들이, 얼마나 이 땅을 올바로 읽거나 살피는가요. 학교를 마친 아이들이, 글 한 줄 얼마나 아름답거나 사랑스럽게 쓰는가요. 학교를 마친 아이들이, 동무를 어떻게 아끼고 이웃과 어떻게 품앗이를 하는가요.


  오늘날 한국에서 《손도끼》에 나오는 줄거리처럼 깊은 숲속에 혼자 떨어지는 아이가 있다면, 이 아이는 틀림없이 굶고 추위에 떨다가 죽으리라 느껴요. 아무도 모르게 죽어 숲을 살찌우는 거름이 되리라 느껴요.


  풀을 뜯어서 먹을 줄 모르니까요. 나뭇잎을 뜯어서 먹는 줄 모르니까요. 가랑잎을 그러모으고 땅을 파서 몸을 따뜻하게 할 줄 모르니까요. 아이들이 시냇물이나 골짝물을 마실 줄 알까요. 아이들이 늘 숨을 쉬며 살아가는 줄 느끼기나 할까요. 바람이 싱그럽지 못하면 죽는 줄, 공장과 발전소가 늘고 자동차가 넘치는 삶이란, 사람을 살리는 삶이 아니라 사람을 죽이는 삶인 줄, 얼마나 깨닫거나 느낄까요. 학교는 아이들한테 삶을 어떻게 보여주고, 아이들이 삶을 어떻게 사랑하도록 이끌까요.


.. 호수로 마음을 돌리니, 자신이 있는 곳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쪽으로 지는 해가 폭죽처럼 터지며 호수와 나무들을 붉게 물들였다. 브라이언은 눈앞에서 펼쳐지는 이 놀라운 경치를 함께 볼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중얼거렸다 … 라이터로 불을 피우면서 불 피우는 게 너무 쉬워 놀랐다. 하지만 라이터는 브라이언이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할 기회를 빼앗아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이터만 있으면 어떻게 불을 지펴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  (161, 177쪽)


  청소년문학 《손도끼》는 주인공 아이가 숲속에서 씩씩하게 살아남는 줄거리를 그립니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지만, 글쎄, 모를 노릇이에요. 웬만한 아이라면 그냥 죽지 않았을까요. 숲에서 악을 쓰고 용을 쓰다가 죽는 모습을 그려야 올바르지 않을까요. 아무것도 스스로 해 보지 않고 어른들 손에 이끌려 입시지옥에 휘둘리는 아이들이 어떻게 숲에서 마흔이레만에 ‘숲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 아리송합니다.


  그렇지만, 아직 열세 살밖에 안 된 아이이기 때문에, 그동안 도시 물질문명 때가 많이 탔다 하더라도, 몸에서 부르는 소리를 듣고, 지식 아닌 몸으로 숲을 껴안으며 살아가는 빛을 되살려 아름답게 살아남는다고 할 수 있어요.


  다만, 청소년문학 《손도끼》에서는 이 열세 살 아이가 ‘너무 자연스럽게 훌륭히’ 숲에서 살아남는 모습으로 그립니다. 이 아이가 부딪히거나 겪는 고단함과 괴로움과 어려움이 제대로 안 나타납니다. 기껏 모기에 물리는 이야기쯤? 숲에서 처음으로 하룻밤 새며 얼마나 춥고 얼마나 몸이 얼어붙는지 제대로 그리지 않아요. 나무딸기가 맺힌다면 구월이 저물 무렵일 텐데, 구월 캐나다 깊은 숲에서 아이가 얼어죽지 않는다거나 이가 덜덜 떨리지 않는다니, 이래저래 알쏭달쏭해요.


  아무튼, 아이는 살아남으면서 《손도끼》 이야기를 마무리짓습니다. 아이는 살아남아서 숲에서 지낸 달포쯤 되는 나날을 오래도록 가슴에 새긴다고 합니다. 이 일이 밑거름 되어 이 아이는 아름다운 빛과 사랑스러운 꿈을 오래오래 나눌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4346.12.12.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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