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카의 웃음, 잉카의 눈물 - A Photo journey to Peru
이기식 지음 / 작가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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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64

 


웃음과 눈물을 읽는 사진
― 잉카의 웃음, 잉카의 눈물
 이기식 글·사진
 작가 펴냄, 2005.3.22. 1만 원

 


  사람들 누구나 웃고 웁니다. 사람들 누구나 웃음이 있고 눈물이 있습니다. 웃는 만큼 울고, 우는 만큼 웃습니다.


  사람 곁에서 함께 자라고 시들며 흙으로 돌아갔다가, 이듬해에 다시 씩씩하게 푸른 잎사귀 틔우는 풀도 웃고 웁니다. 풀이 짓는 웃음을 느끼는 사람이 있고, 풀이 흘리는 눈물을 느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풀이 짓는 웃음을 못 느끼는 사람이 있으며, 풀이 흘리는 눈물을 못 느끼는 사람이 있습니다.


  새가 웃고, 벌레가 웁니다. 개구리가 웃고, 제비가 웁니다. 새는 벌레를 잡아먹으면서 웃고, 벌레는 풀밭에서 노닐면서 웁니다. 개구리는 모기를 잡아먹으면서 웃고, 제비는 나비를 잡아서 새끼한테 먹이면서 웁니다.


  모두들 웃고 울면서 하루를 누립니다. 저마다 다른 삶자리에서 다른 웃음과 눈물로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삶을 짓습니다. 나는 내 웃음을 짓고, 너는 네 웃음을 짓습니다. 나는 내 눈물을 흘리고, 너는 네 눈물을 흘립니다.


.. 잔뜩 겁에 질린 나를 더 무섭게 만든 것은 짐승이 아니라 가이드다. 1미터나 되는 칼을 내 앞에서 이리저리 휘두르며 나뭇가지를 자르며 앞으로 나간다. 혹시 저 녀석이 저 칼로 내게 해코지라도 한다면, 나는 당하는 수밖에 없다. 나는 그 무기를 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고서 그 녀석이 내 물건을 차지한다면 적어도 몇 년은 일하지 않고도 살 수 있을 것이다. 내 몸에는 카메라 석 대와 돈이 몇 백 달러나 있기 때문이다 … 그렇지 않아도 어둡던 정글이 더 어두워지더니 이제는 비까지 내리는 것이다. 사진 찍기는 더없이 힘들어졌다. 급한 김에 모자로 사진기를 감싼다. 가이드 녀석이 휙하고 칼을 휘둘러 바나나잎 하나를 잘라서 내게 준다. 이파리 하나가 우선이 된다. 이파리 하나가 내 몸을 거의 다 가린다. 한참을 걸었다. 비가 그친다. 바나나 이파리를 버린다. 참 편리하다는 생각이 든다 ..  (21, 29쪽)


  노래를 합니다. 큰아이는 내 왼쪽에 누이고 작은아이는 내 오른쪽에 누인 뒤 노래를 합니다. 잘 자라고 자장노래를 부릅니다. 자장노래를 부르는 동안 목청을 가다듬습니다. 자장노래를 부를 적에 목소리를 곧고 맑게 추스릅니다. 아이들이 즐거우면서 밝은 노래를 들으며 새근새근 잠들기를 바라는 마음은, 어느새 나 스스로 즐거우면서 밝은 말을 입으로 읊는 마음이 됩니다. 아이들한테 들려주는 노래는 나한테 들려주는 노래가 되고, 아이들이 듣는 노래는 나 스스로 듣는 노래가 됩니다.


  밥을 차립니다. 아이들이 맛나게 먹을 밥을 차립니다. 아이들이 튼튼하게 자라고 씩씩하게 놀 기운을 얻도록 밥을 차립니다. 밥을 차리는 동안 구슬땀 흘리면서 사랑을 쏟습니다. 온마음 기울여 맛나게 먹을 밥을 차립니다. 아이들은 아침저녁으로 맛나면서 반가운 밥상 받겠지요. 이러는 동안 나 또한 새삼스레 맛나면서 반가운 밥상을 받습니다. 아이들이 먹는 밥 그대로 나도 즐겁고 사랑스럽게 먹습니다. 곰곰이 살피면, 아이들한테 먹이는 밥이란 나 스스로 내 넋과 몸과 숨을 살찌우는 즐겁고 사랑스러운 빛입니다.


  어린 두 아이한테 읽힐 그림책을 헤아립니다. 어린 두 아이가 스스로 챙겨 읽을 그림책을 돌아봅니다. 아무 그림책이나 읽히지 못하고, 아무 그림책이나 아이들이 쥐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듣고 읽을 그림책은 언제나 어버이인 내가 먼저 읽고 살핍니다. 아이들이 먹는 마음밥은 언제나 어버이인 내가 먼저 마음밥으로 삼습니다. 어버이로서 마음밥 즐겁게 얻을 만한 그림책이라고 느낄 적에 아이들한테도 기쁘게 건넵니다.


  아이들이 사랑스럽게 자라려면 어떻게 할 때에 즐거울까요? 길은 오직 하나입니다. 어버이 스스로 사랑스럽게 살아가면 됩니다. 어버이 스스로 사랑스럽게 살아가면 아이들은 사랑스럽게 자랍니다. 어버이 스스로 즐겁게 살아가면 아이들은 즐겁게 뛰놉니다. 어버이 스스로 신나게 일하며 예쁘게 노래하면, 아이들은 시나브로 신나게 뒹굴면서 예쁘게 노래합니다.

 

 

 


.. 어찌 저리도 무표정할까. 사진 찍어 달라고 달려온 사내아이 몇 녀석만 생글거릴 따름이다. 처음엔 서너 녀석이 몰려오더니, 이제는 온 동네 아이들이 다 몰려온다. 이곳 사람들은 사진 찍는 것을 싫어한다고 여행안내서에서 읽었다. 그런데 몇 사람을 빼고는 거절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능글능글한 가이드가 유능해서인가 … 우리 같으면 그 선생님은 벌써 목이 두 번도 잘렸을 것이다. 사진기를 꺼내 그것을 찍고 있으니, 뒤에서 뭐라고 소리친다. 사진 찍는 것을 허락받았느냐고 한 중년의 사내가 소리친다. 이럴 때는 편리하다. 아무 말도 못 알아들은 척하면 된다. 일을 끝낸 다음 미소로 답하면 대개 해결되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불충분하면 목례를 잠깐 하고 ‘그라시아스’ 하면 된다. 그것도 안 되면 삼십육계가 상책이다 ..  (35, 46쪽)


  사진을 찍습니다. 날마다 사진을 찍습니다. 내 곁에서 아이들 자라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사진을 찍고, 내 보금자리에서 마주하는 반가우며 즐거운 모습을 찬찬히 살피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내가 찍은 사진은 어떤 누군가한테 보여주려고 찍는 사진이 아닙니다. 내가 찍은 사진은 스스로 즐겁기에 찍는 사진입니다. 작품인 사진이 아닙니다. 삶이 드러나는 사진입니다. 나와 살아가는 아이들은 서로 반가이 맞이하는 한솥밥지기이기에 함께 살아갑니다. 다른 무엇이란 없습니다. 서로 아낄 줄 알고 함께 사랑을 나누고픈 한식구입니다.


  사진을 찍는 길은 한 가지입니다. 즐거움입니다. 하루를 즐겁게 빛내고 싶기에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을 찍는 매무새는 한 가지입니다. 사랑입니다. 날마다 사랑으로 노래하고 싶기에 사진을 찍습니다.


  살아가는 길은 하나입니다. 즐거움입니다. 언제나 즐겁게 살아가고 싶으니,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사랑을 노래하고 싶기에 살아갑니다. 꿈을 이루고 싶기에 살아갑니다. 이야기를 누리면서 조곤조곤 도란도란 속닥속닥 나누고 싶어서 살아가요.


  아마, 사진을 놓고 ‘현대사진’이라 말하기도 하고, ‘예술사진’이라 말하기도 하며, ‘다큐사진’이나 ‘패션사진’이나 ‘보도사진’이라 말하기도 할 테지요. ‘작품사진’이라 말하기도 해요. 그러나, 사진은 사진일 뿐입니다.


  시골에서 흙을 일구는 흙지기한테 여쭈어 보셔요. 이녁은 왜 흙을 갈아 씨앗을 심거나 뿌려 거둡니까, 하고 여쭈어 보셔요. 아기를 낳고 젖을 물리는 어머니한테 여쭈어 보셔요. 이녁은 왜 아기를 낳아 젖을 물립니까, 하고 여쭈어 보셔요.


  시골 흙지기는 ‘농사꾼’이기 때문에 씨를 뿌릴까요? 아기 어머니는 ‘어머니’이기 때문에 젖을 물릴까요?
  무엇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일이란 없습니다. 무엇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해야 한다면 즐겁지 않고, 사랑스럽지 못하며, 반갑지 못합니다.


  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되고, 즐겁게 하는 일이어야 합니다. 시켜서 하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되고, 사랑스럽게 하는 일이어야 합니다. 무언가 만들어서 보여주어야 하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되고, 반갑게 맞이하며 꿈을 이루는 일이어야 합니다.

 

 


.. 아마존 정글에 사는 원주민의 사정을 조금 엄밀하게 따져 보자. 그러면 그들이 축제에서도 웃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웃음을 잃어버리게 만든 것은 장사꾼들이다. 장사꾼들은 정글에서 나는 장작, 동물 가죽, 과일 등을 아주 싼값에 사들인다. 그리고는 정글에서 반드시 필요하지도 않는 것을 사도록 했다 … 보통의 식당에서 나는 전식도 다 먹지 못한다. 양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리마에서 식사하는 모습을 보면 극과 극이다. 빈민촌에 사는 사람들은 하루에 한 끼 아니면 두 끼 정도를 먹는다. 그것도 기껏해야 감자 몇 개 정도 먹는 것이 전부다. 그러니 빈민촌에 사는 사람들 모두가 몸이 호리호리한 것은 당연하다. 반면에 그 이외의 사람들은 엄청 많이 먹는다. 페루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요리와 헬스이다. 그렇게들 많이 먹으니 열심히 살 빼지 않으면 터질 것이다. 물론 토요일 밤의 파티도 빼놓을 수가 없다. 수많은 사람들이 토요일 밤이면 디스코텍에서 밤새 춤추고 논다. 빈부의 극심한 격차는 먹고 노는 데서도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다 ..  (54, 80쪽)


  보잘것없는 사진은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보잘것있는’ 사진 또한 없습니다. 사진을 놓고 이것은 보잘것없다 나눌 수 없고, 저것은 ‘보잘것있다’ 나눌 수 없습니다. 모든 사진은 그저 사진입니다.


  공모전을 노린다든지 작품이나 예술이 되도록 했다든지 하더라도, 더 보잘것없거나 덜 보잘것없지 않을 뿐더러, 더 보잘것있거나 아무런 보잘것있을 수 없습니다. 공모전을 노렸으면 ‘공모전을 노린 무엇’이 됩니다. 작품이나 예술이 되도록 했다면 ‘작품이나 예술인 무엇’이 됩니다. 사진이 아닙니다. 공모전을 노린 그림은 그림이 아닌 ‘공모전을 노린 무엇’이지요. 공모전을 노린 글은 글이 아닌 ‘공모전을 노린 무엇’입니다.


  아이들한테 밥을 차려 먹이며 ‘너는 학자가 되어라!’라든지 ‘너는 축구선수가 되어라!’라든지 ‘너는 국회의원이 되어라!’와 같이 말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말할 분이 있을는지 모릅니다. 그예 사랑으로 차리는 밥입니다. 그예 사랑으로 차린 밥을 먹고 자라는 아이들은 아이다움을 건사하면서 사랑스럽게 자랍니다. 사랑 아닌 영양성분이나 끼니로 차리는 밥을 먹고 자라는 아이들은 아이다움을 놓치거나 잃습니다. 사랑스러움이 아닌 ‘목적’으로 달려야 합니다.


  대학교에 가려고 중·고등학교에서 입시지옥에 갇혀야 하면 얼마나 불쌍한가요. 대학교에는 가도 되고 안 가도 됩니다. 대학교에서 할 일이 있거나 대학교에서 남다르게 할 공부가 있어야 대학교를 가야지요. 중학교에서는 중학교답게 가르칠 것이 있어야 합니다. 고등학교에서는 고등학교답게 가르칠 이야기가 있어야 합니다. 입시교육이어서는 안 됩니다. 입시교육은 아이들 넋을 망가뜨립니다. 입시교육은 아이를 학교에 보낸 어버이 넋까지 짓밟습니다.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은 ‘사진가’나 ‘작가’나 ‘예술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느낍니다.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은 ‘-家’나 ‘-쟁이’ 아닌 ‘즐김이’나 ‘사랑이’로 살아갈 노릇입니다. ‘사진 즐김이’와 ‘사진 사랑이’로 살아갈 노릇이에요.


  틀을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틀을 만들면 사진이 아닌, 틀에 박힌 복제품이나 공산품이 됩니다. 울타리를 쌓지 말아야 합니다. 울타리를 쌓으면 사진하고 동떨어진, 권력과 상업주의와 박제가 되고 맙니다.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자유로운 사진이 될 때에 즐겁습니다. 웃고 우는 삶을 이야기하는 착한 사진이 될 때에 사랑스럽습니다. 사진으로 가는 길이란 삶으로 가는 길하고 같아요. 착하고 참다우며 아름답게 걷는 길이 삶길이요 사진길입니다.

 

 


.. 페루의 수도 리마는 1년 내내 기후가 온화하다. 365일 내내 15도에서 25도 사이를 오르락내리락 한다. 일교차도 7도 정도에 불과하다. 이처럼 리마의 기온은 거의 환상적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다 거의 매일 온화한 햇살이 비친다. 거의 1년 내내 아침에 눈을 뜨면 맑은 하늘을 보여준다. 그뿐이 아니다. 높은 건물은 거의 없고 나지막한 건물들이 예쁘게 열 지어 있다 … 어느 부자 나라의 수도가 이처럼 깨끗하고 아름다울까 … 내가 보기에 서울의 하늘보다는 몇 배나 맑다. 해가 질 때면 황홀한 일몰을 즐길 수도 있다. 정직하게 말하면 세계의 다른 대도시들보다 하늘은 더 맑다 … 실제로 낮은 지역으로 내려오는 것이 고산병을 치유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다. 이제는 주위의 산야도 즐길 수 있고, 흐르는 물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하늘은 더없이 맑고, 햇살은 한없이 따사롭다. 이제 정신이 드는 것 같다. 며칠간 시달리던 고산병도 이제는 완치가 된 듯하다. 산길 옆의 풀밭에서 할머니와 어린아이 둘이 함께 앉아 있따. 아이 둘은 할머니 주위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할머니는 양털로 실을 잣는다. 그 옆에는 아이의 어머니인 듯한 젊은 아주머니가 낫으로 풀을 벤다. 또 한참을 내려오니 아이를 등에 업은 아주머니가 라마를 몰고 어디론가 간다. 조랑말과 같이 노는 아이도 만났다. 정겨운 풍경이다 ..  (68, 115쪽)


  고려대학교 독문과 교수라고 하는 이기식 님이 내놓은 사진책 《잉카의 웃음, 잉카의 눈물》(작가,2005)을 읽습니다. 이기식 님은 칠레라는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온몸으로 삶을 느낍니다. 한국에서 칠레로 날아간 뒤, 칠레 이곳저곳을 두루 두 다리로 밟으면서 이야기를 듣습니다. 칠레사람 모습을 바라보고 칠레사람 삶자리를 지켜봅니다. 때때로 사진기를 손에 쥐어 사진을 찍지만, 사진기에 앞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코로 맡습니다. 살갗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헤아리며 머리로 생각합니다.


  사진을 찍으려고 칠레에 갔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사진책을 내거나 사진전시를 열려고 칠레에 갔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한국에서 원주나 장흥이나 밀양으로 다녀오면서 원주사람과 장흥사람과 밀양사람 삶을 느낄 수 있어요. 마을마다 사람이 다르고 삶이 다르며 이야기가 달라요. 오늘날 한국은 모두 ‘서울바라기’이고, 서울은 ‘미국바라기’나 ‘유럽바라기’로 흐르지만, 아무리 ‘서울바라기’라 하더라도, 원주는 원주답고 장흥은 장흥다우며 밀양은 밀양답습니다.


  칠레는 칠레답습니다. 칠레다운 빛이 흐르고 칠레다운 노래가 있습니다. 칠레다운 무늬가 있으며 칠레다운 꿈이 있어요.


.. 사진을 몇 장 더 찍고 집앞에서 동네를 내려다본다. 소녀가 다가오더니 자기를 한국으로 데려가 달라고 말한다. 깜짝 놀라 무슨 말이냐고 되묻는다. 자기도 한국에 가서 일하고 싶단다. 무슨 일을 할 수 있느냐니까 뭐든지 할 수 있단다. 돈을 많이 벌려면 일본이나 미국에 가는 게 낫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 나라들은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따. 마치 무작정 상경하려는 시골 처녀 같다는 생각이 든다 … 빌마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바람에 여러 집을 돌아볼 수 있었다. 그녀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그랬더니 자기는 수고비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약간의 돈을 주었더니 행복한 얼굴이다. 그러고는 곧바로 아들과 함께 가게로 달려간다. 아들과 함께 과자 한 봉지와 아이스크림 한 개를 손에 들고 다시 온다. 아주 행복한 얼굴이다 ..  (85, 87쪽)

 


  웃음과 눈물을 읽는 사진입니다. 웃음을 찍고 눈물을 찍는 사진입니다. 웃음과 눈물을 주고받는 삶입니다. 웃으면서 이야기하고, 울면서 이야기하는 삶입니다. 아이들과 복닥이면서 웃음과 눈물이 샘솟습니다. 동무와 사귀면서 웃고 웁니다. 이웃과 어깨를 겯고 두레와 품앗이를 하면서 웃음과 눈물이 흐릅니다.


  낮이 흐르고 밤이 지나갑니다. 해가 뜨고 달이 뜹니다. 별이 내리고 비가 내립니다. 나락이 익고 푸성귀가 짙푸릅니다. 호박알 굵고 시래기가 마릅니다.


  텃새는 겨우내 먹이를 찾아 이 집 저 집 이곳저곳 날아다닙니다. 철새는 알맞춤한 보금자리를 찾아 바지런히 날아다닙니다. 풀과 나무는 꽃을 피워 씨앗을 떨굽니다. 흙은 모든 숨결 고이 받아들여 따사로운 삶자리 내어줍니다.


  아침해가 뜹니다. 저녁해가 집니다. 동이 트며 새들이 노래하고 풀벌레는 살짝 잠듭니다. 겨울 앞두고 잠자리들 알을 낳고는 하나둘 기운 잃으며 숨을 거둡니다. 잠자리 주검이 풀밭에 스러지고 냇물에 둥둥 뜹니다.


  우리들 살아가는 이곳에 어떤 이야기 있는가요. 우리들 새롭게 눈을 뜨며 맞이하는 하루에 어떤 이야기 찾아드는가요. 우리들 서로 어떤 눈빛으로 마주보면서, 오늘 하루 어떤 이야기 길어올리고 싶은가요.


.. 시내 가까이에 사는 빈민들은 가파른 언덕에 닥지닥지 집을 짓고 산다. 산사태라도 나면 큰 재앙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비가 거의 오지 않으니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곳 만차이에 사는 사람들은 그들보다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그러나 교통이 여간 나쁘지 않다. 대중교통이 없으니 걸어서 그 언덕을 넘어 일하러 다닌다. 그래서 누런 색깔의 언덕에 하얀 길이 나 있다. 마치 눈 온 다음에 난 발자국처럼 ..  (97쪽)


  이기식 님은 《잉카의 웃음, 잉카의 눈물》이라는 사진책에서 ‘잉카’를 읽습니다. 잉카를 만났고, 잉카와 사귀었으며, 잉카와 지냈기 때문입니다. 이기식 님이 만난 잉카는 이기식 님한테 ‘이곳(잉카 땅)에 있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기식 님은 그곳(잉카 땅)에서 그곳 이야기를 듣습니다.


  잉카사람은 잉카사람 스스로 사진을 찍거나 글을 쓸까요? 잉카사람은 스스로 사진을 찍거나 글을 쓰지 않으면 이녁 모습과 삶을 아로새기지 못할까요? 어쩌면, 잉카사람은 굳이 스스로 글을 안 쓰고 사진을 안 찍어도 이녁 삶을 고스란히 글로도 사진으로도 남기는 셈 아닐까요? 잉카사람은 글이나 사진 없이 오로지 이녁 삶으로, 이녁 웃음과 눈물로 먼먼 옛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또 먼먼 앞날이 찾아오도록, 즐겁고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가슴속에 아로새기지 않을까요?


.. 이들은 자신의 모자를 스스로 뜨개질한다. 어린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모두가 자신의 모자를 만드는 것이다. 이들은 길을 가면서도 아주 능숙한 손놀림으로 뜨개질을 한다. 이들은 자기 모자를 스스로 뜨개질한다는 데 대해서 무척 자랑스러워 한다. 여자들도 화려한 허리띠를 두르고 다닌다 … 중년의 남자가 호수 부근에 움막 같은 집을 짓고 있다. 곧 결혼할 아들을 위해 짓고 있다고 한다. 사진을 찍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잠깐 기다리라고 한다. 그러고는 황급히 빨간색의 꼬깔 모자와 전통의상을 입는다. 이제는 찍어도 좋다고 말한다. 전통의상도 걸치지 않고 사진을 찍는 것은 모욕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  (127, 128쪽)


  사진으로 찍으면 사진이 남습니다. 글을 쓰면 글이 남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면 이야기가 남습니다. 마음으로 아로새기면 마음에 남습니다. 사랑을 주고받으면 사랑이 태어나 사랑이 남습니다.


  ‘사진은 기록’이라고 하는데, 사진만 기록이 아닙니다. ‘글로 써야 남는다’고 하는데, 글만 남지 않습니다. 마음에 아로새긴 모습을 남한테 보여주지 못한다고 하지만, 마음에 아로새긴 모습을 조곤조곤 이야기로 들려주면 이웃사람 마음속에도 하나둘 그림으로 어떤 모습이 피어납니다. 글로 남기지 않았어도 가슴으로 아로새긴 이야기를 언제라도 다시 꺼내어 이웃과 동무한테 즐거이 들려줄 수 있어요.


  그러니까, 사람은 웃음과 눈물로 살아갑니다. 이야기는 웃음과 눈물로 이루어집니다. 사진도 글도 언제나 웃음과 눈물을 마주합니다.


  이야기가 있을 적에 사진이요 글입니다. 이야기란 삶인 만큼, 삶이 드러날 적에 사진이요 글입니다. 삶이란 웃음과 눈물이니, 사진이나 글이 되자면 마땅히 웃음과 눈물이 잔잔히 드러날 수 있어야 합니다.


.. 이 책에 실린 사진은 대단한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필자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사진들이다. 필자의 경험과 생각을 사진으로써 표현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  (135쪽)


  이기식 님은 이기식 님이 마음으로 만난 사람들 삶을 사진과 글을 빌어 나타냅니다. 사진책 《잉카의 웃음, 잉카의 눈물》은 이기식 님 손을 거쳐 태어납니다. 이기식 님은 대단한 사진가 아니요 훌륭한 작가 아닙니다. 그러나, 이웃을 만나려 한 사람이요, 동무와 사귀려 한 사람입니다.


  앞으로 다른 어느 분은 부탄에서 이웃을 만나 사진과 글 곱게 어우러진 이야기 선보일 수 있습니다. 또 어느 분은 일본에서, 필리핀에서, 네팔에서, 마다가스카르에서, 이집트에서, 볼리비아에서, 덴마크에서, 저마다 다른 목소리와 숨결과 사랑이 속삭이는 이야기를 길어올릴 수 있습니다.


  언제나 바로 이곳에 있는 사진입니다. 언제나 바로 이곳에 있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4346.10.1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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