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고 지고! : 자연 끼리끼리 재미있는 우리말 사전 1
박남일 지음, 김우선 그림 / 길벗어린이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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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94

 


한국말을 못 배우는 요즘 아이들
― 뜨고 지고, 끼리끼리 재미있는 우리말 사전 1·자연
 박남일 글
 김우선 그림
 길벗어린이 펴냄, 2008.10.9. 11000원

 


  초·중·고등학교에서 ‘국어’ 과목을 가르칩니다. 그렇지만, 교과목인 ‘국어’ 수업 진도를 나갈 뿐, 한국말을 가르치지는 않습니다.


  ‘국어’라는 낱말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제국주의 정치권력자가 이웃나라를 억누르면서 쓴 한자말입니다. 그무렵 일본제국주의 정치권력자는 ‘일본말’이 바로 ‘나랏말’이라는 뜻에서 ‘國語’라고 적었어요. 예나 이제나 중국에서는 ‘중국사람이 중국말을 가르칠 적’에 ‘中國語’라 하지 ‘國語’라 하지 않습니다. 일본은 오늘날에도 ‘國語’라는 한자말을 씁니다. 한국사람은 지난날 ‘조선어’라 적었고, 이제는 ‘한국어’ 또는 ‘한국말’이라고 적어야 올바릅니다. 학교에서 아이들한테 가르칠 과목에서도 ‘국어’ 아닌 ‘한국말’이나 ‘한국어’로 적어야 올발라요.


  ‘국민학교’라는 이름을 ‘초등학교’로 바꾼 까닭을 생각할 노릇입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천황폐하 섬기는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일본사람이 쓴 한자말 ‘國民’을 오늘날까지 이 나라에서 쓸 수 없는 노릇이라고 뜻있는 분들이 힘있게 외쳤어요. 그래서 이제는 ‘초등학교’라는 이름을 써요. 그러니까, ‘국민’을 비롯해 ‘국어·국가(國歌)·국조(國鳥)’ 같은 일제강점기 찌꺼기를 하나하나 털거나 씻을 수 있어야 합니다. 털거나 씻을 말은 털거나 씻을 적에 아름답습니다. 먼먼 옛날부터 우리 겨레가 즐겁고 슬기롭게 쓰던 말마디를 살피고, 오늘날 우리들이 예쁘며 사랑스레 살려쓸 말마디를 톺아볼 때에 더없이 아름답습니다.


.. 해는 또 세상을 따뜻하게 해 줘. 햇빛은 밝고, 햇볕은 따사롭지. 따사한 햇볕에 ‘해바라기’를 하면 기분이 좋아. 겨울날 드는 햇볕은 따뜻해서 고맙고, 여름날 내리쬐는 햇볕은 뜨거워서 싫어 ..  (10쪽)

 


  ‘한글’은 한국말을 담는 그릇입니다. 아이를 낳은 어버이는 으레 아이들한테 한글을 일찍 가르쳐서 깨우치려고 애씁니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도 아이들한테 한글을 가르칩니다. 그러나, 집에서 어버이들이, 또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 교사들이, 아이들한테 ‘한국말’을 올바르거나 슬기롭게 가르치지 못해요.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들 여덟 살 무렵에 한글을 처음으로 배워도 됩니다. 한글은 아홉 살이나 열 살에 배워도 됩니다. 그러나, “말을 담는 그릇”에 앞서 “마음을 나타내는 말”을 제대로 배워야 해요. 열 살 어린이도, 여덟 살 어린이도, 다섯 살 어린이도, 두어 살 아기도 한국말을 제대로 배워야 하고, 참답게 배워야 하며, 슬기롭게 배워야 합니다.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한국말을 제대로 참답게 슬기롭게 가르치도록 먼저 알뜰살뜰 한국말을 익힐 노릇입니다. 어른 스스로 한국말을 제대로 못 쓰면, 아이한테 한국말을 제대로 못 가르쳐요. 어른 스스로 한국말을 참답게 안 쓰면, 아이한테 한국말을 참답게 못 보여줘요. 어른 스스로 한국말을 슬기롭게 가꾸며 보살필 줄 알아야, 아이가 스스로 한국말을 새롭고 맑게 가꾸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말 지식이 아닌 ‘말’을 사랑스레 가르쳐야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어른들은 여느 삶자리에서 이녁 마음을 나타낼 말을 사랑스레 써야 합니다. 아이들은 책상맡에서 말을 배우지 않아요. 삶자리 어디에서나 말을 배워요. 어른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언제 어디에서나 사랑스레 생각하고 사랑스레 말하면서 사랑스레 삶을 일구어야 합니다. 말은 삶이고, 삶은 말로 드러납니다.


.. 달도 차면 기울어. 보름달은 점점 기울어 반달이 되고, 반달이 조각달 되고, 조각달은 다시 그믐달이 되지 ..  (17쪽)

 


  한국말로 생각은 ‘생각’을 비롯해서 ‘셈’이 있으며, ‘어림’이 있습니다. ‘꿍꿍이’라든지 ‘속셈’도 있어요. 생각하는 결과 무늬에 따라 ‘살피다·헤아리다·보다·여기다·톺아보다·돌아보다·되새기다·짚다·그리다·곱새기다·떠올리다·돌이키다’ 들이 있어요. 궂은 일을 생각할 적에는 ‘근심·걱정·끌탕’이 있지요. 어렵거나 아픈 일을 생각할 적에는 ‘안타깝다·안쓰럽다·아쉽다’가 있으며, ‘슬프다·구슬프다·애처롭다’로 이어집니다. 힘든 이웃을 바라보면서 ‘불쌍하다·가엾다·딱하다’ 하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기울입니다. 이 나라 여느 어버이들은 이녁 아이들한테 이와 같은 ‘생각 말밭’을 얼마나 알뜰살뜰 들려주거나 알려주는가요. 이 나라 여느 학교 교사들은 아이들한테 이러저러한 ‘생각 말꾸러미’를 얼마나 제대로 이야기하거나 밝히는가요.


  ‘창피하다’와 ‘부끄럽다’가 서로 어떻게 다른가를 아이들한테 들려주지 못한다면, ‘두렵다’와 ‘무섭다’를 어떻게 다른 자리에 쓰는가를 아이들한테 보여주지 못한다면, ‘돌보다’와 ‘보살피다’가 사뭇 다른 말느낌을 아이들한테 알려주지 못한다면, 이 나라 어버이와 교사는 어른답게 한국말을 쓴다고 할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살짝·슬쩍·살며시·슬며시·살그머니·살그마니·슬그머니’를 저마다 어느 자리에 어떻게 써야 알맞나 하는 대목을 이 나라 어버이와 교사는 얼마나 찬찬히 밝히거나 보여줄까 궁금합니다.


  곰곰이 살피면, 이 나라 어른들은 ‘한국사람’이지만 ‘한국말’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한국사람으로서 한국말을 모르는 채 아이들을 낳아 ‘한국사람 되는 한국말 쓰기’를 조금도 못 가르친다고 할 만합니다. 한국사람으로서 한국말을 제대로 못 쓴다면, 영어를 배우거나 일본말을 배우거나 제대로 배울 수 있을까요.


.. 모낼 무렵에 고맙게도 비가 내렸어. 그럼, 꼭 필요할 때 내렸다고 목비. 가슴과 머리를 잇는 사람 목처럼, 농사철에도 중요한 ‘목’이 있지. 바쁜 봄에 내리는 비는 비를 맞더라도 일하라고 일비. 덜 바쁜 여름철에 내리는 비는 집에서 낮잠이나 자라고 잠비. 추수 끝난 가을에 내리는 비는 떡 해 먹는다고 떡비 ..  (29쪽)

 


  한국말을 못 배우는 요즈음 아이들은 삶을 못 배우는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말이란 삶에서 태어나기에, 삶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니 말을 제대로 못 배우는 셈입니다. ‘풀’이라는 낱말과 ‘하늘’이라는 낱말을 생각해 보셔요. 이 낱말은 누가 어떻게 지었을까요. 풀빛은 무엇이고 하늘빛은 무엇일까요.

  ‘누렇다’는 가을날 들판에 잘 익은 나락 빛깔에서 나왔습니다. ‘푸르다’는 골골샅샅 어디에서나 푸르게 돋는 풀 빛깔에서 나왔습니다. ‘파랗다’는 바다와 하늘이 해맑게 탁 트인 눈부신 빛깔에서 나왔습니다. ‘빨갛다’는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붉게 익은 맛난 열매 빛깔에서 나왔어요.


  숲에서 나온 이 낱말들은 바로 삶에서 나온 낱말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모두 숲에서 살았거든요. 옛날 사람들은 모두 숲에서 살림을 꾸리며 집을 짓고 옷을 지으며 밥을 지었어요. 집을 이루는 나무와 흙과 풀과 돌은 모두 숲에서 나와요. 옷을 짓는 실은 흙에서 자라는 풀포기에서 얻어요. 밥 또한 숲과 들에서 자라는 풀포기와 나무에서 얻은 열매입니다.


  이제 이 나라는 도시 물질문명 사회라 할 테니, 옛날처럼 ‘숲 = 삶’이자 ‘삶 = 숲’이던 누리하고는 달라, 한국말을 찬찬히 배우지 않아도 된다고 여길 사람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참말, 요즘 널리 쓰이는 말치고 살갑거나 아름다운 한국말은 없어요. 새 손전화 기계, 새 공산품, 새로 짓는 아파트와 고속도로와 공장과 발전소는 모두 영어나 일본 한자말로 이름을 붙입니다. 우리 겨레가 이 땅에서 오래도록 숲에서 삶을 지으며 누린 빛을 담는 이름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 하늘에서 내려온 물방울이 모여 졸졸졸 길 옆 도랑으로 흐르고, 도랑물 모여 골짜기 개울로 흐르고, 개울물 모여 들판의 내로 흐르고. 내는 모여 가람, 강이 되고 가람은 굽이굽이 바다에 이르지 ..  (47쪽)

 


  박남일 님이 쓰고 김우선 님이 그린 《뜨고 지고, 끼리끼리 재미있는 우리말 사전 1·자연》(길벗어린이,2008)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이렇게 예쁘며 알찬 이야기그림책이 있군요. 우리 아이들이 이 그림책을 읽으며 한국말을 한결 고우며 슬기롭게 익히며 살필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림책으로뿐 아니라 교과서에서도 이렇게 한국말을 알맞게 견주고 모아서 살피면, 어린이도 어른도 한국말을 알뜰히 사랑하면서 살뜰히 살려쓰도록 맑은 빛이 되리라 생각해요.


  그런데, “펀펀하고 넓게 트인 들은 곡식과 들꽃이 자라는 기름지고 푸른 땅. 농부는 하루 종일 들에 나가 일을 하지. 넓고 펀펀한 벌은 풀도 나무도 잘 자라지 않는 거친 땅(40쪽).” 같은 이야기에서는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들·벌’을 이렇게 이야기해도 될까 아리송합니다.


  ‘들’은 “푸른 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벌’을 꼭 “거친 벌”이라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비사벌’이나 ‘서라벌’이나 ‘달구벌’이나 ‘황산벌’ 같은 땅이름을 생각해 보셔요. 이런 이름을 붙인 고을은 “거친 벌”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고을을 가리키는 이름입니다.


  그러니까, ‘들’은 시골을 이루면서 곡식과 푸성귀를 일구는 땅입니다. 들에 집을 짓고 마을이 되면 ‘시골’이에요. ‘벌’에도 집을 짓고 사람들이 모여서 살아갈 수 있어요. 이렇게 벌에 집을 짓고 고을을 이루면 ‘서라벌’이나 ‘비사벌’처럼 새 이름이 붙어요. 요즈음으로 치면 ‘도시’를 가리키는 자리에 ‘-벌’을 붙여서 썼습니다. 도시는 시골과 달리 흙을 일구지 않고 풀과 나무를 돌보지는 않으니까, 언뜻 보기에는 “거친 땅”이라 여길 수 있지만, “풀과 나무를 심어서 돌보지 않을 뿐인 탁 트이며 너른 땅”이라고 해야 올바르다고 느껴요.


  ‘재미있는 우리말 사전’이라고 이름을 붙인 이야기책이지만, ‘점점’이나 ‘것’이나 ‘-지다’나 ‘필요’나 ‘-의’ 같은 말투가 곳곳에 나타납니다. 이런 낱말과 말투를 굳이 이 이야기책에 써야 했나 싶어요.
  ‘부르다’는 “동무를 부르다”라든지 “별명을 부르다”처럼 쓰는 낱말입니다. “자연을 부르는 우리말”처럼 쓰지 않습니다. ‘가리키다’나 ‘일컫다’ 같은 낱말을 넣어야 올발라요.


  ‘신기(神奇)한’ 같은 한자말은 한자말이라 여기지 않아도 될 만하지만, 이런 낱말을 자꾸 쓰니까 ‘놀라운’이나 ‘남다른’이나 ‘새삼스러운’ 같은 한국말은 설 자리를 잃습니다. “모두 갯벌에 속(屬)하지” 같은 말투를 어른들이 퍽 자주 쓰는데, 어른들은 이런 말투를 쓰더라도 아이들한테 이런 말투를 들려주어야 하는지 생각할 일입니다. “모두 갯벌이지”나 “모두 갯벌이라 하지”처럼 써야 알맞습니다.


 바람이 점점 더 세게 불어 → 바람이 자꾸 더 세게 불어
 잎이 나는 걸 시샘해 부는 잎샘바람 → 잎이 날 적에 시샘해 부는 잎샘바람
 다디달게 느껴져서 단비 → 다디달게 느껴서 단비
 꼭 필요할 때 내렸다고 목비 → 꼭 바랄 때 내렸다고 목비
 는개보다 더 가는 건 안개 → 는개보다 더 가늘면 안개
 간밤에 도대체 어떤 비가 내린 걸까 → 간밤에 참말 어떤 비가 내렸을까
 우리가 사는 땅별의 핏줄기 → 우리가 사는 땅별을 살리는 핏줄기
 모두 갯벌에 속하지 → 모두 갯벌이지
 물때는 신기한 바다 시계지 → 물때는 놀라운 바다 시계지
 아름다운 자연을 부르는 어여쁜 우리말의 재미에
 → 아름다운 자연을 가리키는 어여쁜 우리말 재미에


  아이도 어른도 사랑스럽게 주고받을 말을 익히고 가꿀 수 있기를 빕니다. 어른과 아이는 서로서로 따사롭게 마주하고 어깨동무하면서 아름다운 꿈으로 나아가는 말을 살찌울 수 있기를 빌어요. 박남일 님이 빚은 《뜨고 지고, 끼리끼리 재미있는 우리말 사전 1·자연》은 사랑스러운 말길과 아름다운 글길을 빛낼 살가운 길동무 구실을 톡톡히 하리라 생각합니다. 고운 말이 흘러 고운 삶이 환하고, 맑은 말이 감돌며 맑은 넋이 눈부십니다. 4346.9.7.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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