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3.8.20.
 : 구름과 바람과 벼꽃

 


- 마을 빨래터를 청소하면서 물놀이를 한다. 아이들이 한참 물놀이 하는 모습 지켜보다가 자전거를 빨래터 옆으로 끌고 오기로 한다. 땡볕 내리쬐는 날씨에 아이들이 집까지 갔다가 다시 자전거를 타고 오자면, 애써 물놀이를 하며 식힌 몸에 다시 땀이 흐르리라 생각한다.

 

- 볼그스름한 꽃이 가득 핀 배롱나무 밑에서 자전거에 태운다. 나무그늘 구비길을 달린다. 나무그늘 구비길이 끝나면 곧바로 들판이다. 들판에는 그늘이 하나도 없다. 그러나 탁 트인 들판에서는 들바람이 분다.

 

- 들바람 냄새를 맡는다. 냄새가 다르다. 지난 이레 동안 바깥마실 다니느라 자전거를 못 탔는데, 이레만에 마을 들판을 자전거로 달리니 사뭇 다른 냄새가 흐른다. 자전거를 멈추고 가만히 들여다보니, 일찍 심은 벼는 벼꽃이 맺혔다. 벼꽃이 맺히면서 볏잎은 푸른 기운이 조금씩 빠져나가 살짝 노르스름한 빛이 돌려고 한다. 저 자그마한 벼꽃이 어우러져서 들빛이 달라지는구나. 얘들아, 냄새를 맡으렴. 이제부터 날마다 들내음이 달라진단다. 벼꽃이 핀 오늘 이곳 냄새는 이 다음날 다시 지날 적에 다른 냄새가 되고, 또 다음날 다시 지날 때에 다른 냄새가 된단다.

 

- 들내음 맡으며 하늘을 본다. 하늘빛도 남다르구나 싶다. 구름과 하늘이 빚는 맑은 기운을 들이마신다. 바람이 불며 들이 눕는다. 바람 따라 살랑이는 모습은 푸른 물결빛이다. 이 푸른 물결은 곧 누런 물결이 될 테고, 누런 물결 흐드러질 무렵에는 온 들과 마을에 고소한 내음이 퍼지겠지.

 

- 작은아이는 들에 나올 적부터 잠이 든다. 면소재지 우체국 들러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깨어나지 않는다. 잘 자렴. 눈으로는 안 보더라도 네 몸과 살갗은 들내음과 들빛을 모두 받아들이겠지.

 

(최종규 . 2013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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