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숲 풀빛

 


  국민학교를 다니고 중학교를 다니며 고등학교를 다닐 적에 미술이라는 수업이 있었다. 이때에 물감으로 풍경그림 그려서 점수를 받아야 하곤 했는데, 나는 나무를 그리거나 풀을 그릴 적에 몹시 힘들구나 싶어, 나무나 풀은 되도록 안 그리려 했다. 왜냐하면, 풍경이라 하든 정물이라 하든 초상이라 하든, 모두 내 눈으로 바라본 모습을 담는 그림인데, 나무를 보든 풀을 보든, 풀빛이 모두 다르다고 느꼈다. 나무 한 그루라 하지만, 똑같은 잎사귀가 하나도 없고, 똑같은 빛깔이 하나도 없다. 은행나무를 그리려 해도, 은행잎 모양과 빛깔과 무늬가 다 다르다고 느낀 나머지, 차마 은행나무를 그릴 수 없었다. 나무를 그리면서 나뭇잎을 모두 다른 모양과 빛깔과 무늬로 그려야 하는데, 고작 한 시간이나 두 시간밖에 안 되는 미술 수업에서 나무를 그릴 수 없더라.


  더 헤아려 보면, 바다를 그릴 적에도 똑같았다. 물결빛은 똑같지 않다. 코앞에서 마주하는 물결조차 왼쪽과 오른족과 가운데 물결빛이 다르다. 다 다른 빛느낌을 점으로 하나하나 찍어서 모아야 비로소 물결빛 될 텐데, 여러 날 들여도 다 찍지 못할 물결빛 그림을 어떻게 그릴 수 있겠나. 언젠가 한 번, 고등학교 적이었지 싶은데, 물결빛을 다 다르게 그린 적 있는데, 미술 선생은 ‘장난하느냐?’ 하고 콧방귀를 뀌면서 낙제점수를 주었다.


  뭉뚱그린대서 잘못 그린 그림이라고는 느끼지 않는다. 그렇지만 나무 한 그루 잎사귀 빛깔이 모두 다르듯, 들풀 잎빛이 모두 다르다. 모시풀과 부추풀을 똑같이 그릴 수 없다. 콩잎과 깻잎을 똑같이 그릴 수 없다. 동백잎과 후박잎을 똑같이 그릴 수 없다. 해바라기잎과 찔레잎을 똑같이 그릴 수 없다. 감잎과 포도잎을 똑같이 그릴 수 없다. 살구잎과 매실잎을 똑같이 그릴 수 없다. 냉이잎과 씀바귀잎을 똑같은 빛깔로 그릴 수 있을까.


  한여름 시골마을과 시골숲을 가만히 바라본다. 나무마다 잎빛이 모두 다르니, 온통 짙푸른 빛깔로 우거졌다 하지만, 나무를 하나하나 헤아릴 만하고, 수풀에는 어떤 풀이 자라는가 찬찬히 돌아볼 만하다. 칡잎이랑 하늘타리잎이랑 다르잖아. 쑥잎이랑 까마중잎이랑 다르잖아. 이 다른 풀빛을 어떻게 ‘그냥 풀빛’이라고 말할 수 있겠어.


  수만 수십만 수백만이 북적거리는 서울에서도, 사람들은 모두 다르다. 엇비슷한 옷을 갖춰 입었어도 저마다 다르다. 아이들이 똑같은 학교옷 갖춰 입었다 하더라도 다 다르다. 얼굴과 키와 몸매만 다르지 않다. 생각과 마음이 다르고, 꿈과 사랑이 다르다. 다 다른 나무와 풀이 저마다 아름다우며 애틋하듯이, 다 다른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 저마다 아름다우며 애틋하다. 다 다른 책이 저마다 살갑고 반갑다. 다 다른 이야기가 저마다 즐겁고 기쁘다. 여름에는 숲과 들을 마냥 바라보기만 해도 시원하고 상큼한 기운이 물씬 샘솟는다. 4346.7.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과 헌책방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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