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집 4. 우리 집 풀밭 2013.6.30.

 


  풀밭을 바라본다. 제멋대로 자라는 풀이라 여길 수 있는데, 아마 풀은 제멋대로 자란다고 해야 옳다. 왜냐하면 ‘풀 나름대로 제멋’으로 자라니까 제멋대로 자란다. 풀은 사람 눈치를 보지 않는다. 풀은 씨앗이 떨어져 뿌리를 내리는 대로 자란다. 풀은 사람 손길을 보며 자란다. 풀은 씨앗이 떨어져 뿌리를 내리더라도 사람들이 어떤 손길로 저희를 쓰다듬거나 마주하는가에 따라 다르게 자란다. 우리 집 풀밭은 좀 내버려 두는 풀밭이다. 땅심을 북돋우고 싶기에 한동안 내버려 두는 풀밭이다. 오래도록 농약과 비료에 길든 땅뙈기에 숱한 풀이 나고 자라다가 겨우내 시들어 죽기를 되풀이하면서 차근차근 기운이 살아나기를 바라며 내버려 두는 풀밭이다. 이 풀도 좋고 저 풀도 좋지. 이 풀도 반갑고 저 풀도 고맙지. 다만, 나무한테 가는 길은 낫으로 벤다. 매화나무, 뽕나무, 감나무, 탱자나무, 여기에 올해에 우리가 심은 어린나무로 가는 길만큼은 거님길을 낸다. 매화나무에 노랗게 익는 열매가 얼마나 말랑말랑한가 만져 보려고 풀밭을 낫으로 베면서 지나간다. 큰아이가 따라온다. 우리 집은 워낙 풀밭이니 이제 아이들은 이럭저럭 익숙하다. 늘 맡는 내음을 느끼고, 늘 보는 빛깔을 마주한다. 얘, 사름벼리야, 이 풀이 바로 풀빛이란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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