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물맛

 


  집에서 끓여 아이들 먹이는 밥이랑, 바깥에서 사다가 먹이는 밥을 곰곰이 헤아려 보면, 아무래도 물맛부터 다르다. 조용하고 시원한 바람 흐르는 시골마을에서 흐르는 땅밑물을 길어서 짓는 밥에서 피어나는 맛이랑, 댐에 가둔 물을 길디긴 시멘트 물관과 쇠파이프 물꼭지를 거쳐서 얻어 짓는 밥에서 샘솟는 맛은 다르다.


  만화책 《미스터 초밥왕》에 나오는 아이는 초밥 맛을 더욱 높이려고 ‘초밥을 지을 때에 쓰는 물’을 ‘초밥에 쓸 쌀을 거둔 시골에서 나락이 늘 마시던 물’을 길어와서 쓰기도 한다. 제아무리 쌀이 좋다 하더라도 ‘쌀이 나고 자란 고장’에서 ‘나락이 자라는 동안 늘 마시던 물’이 아닌 수도물을 쓰면 제맛이 살아나지 않는 줄 몸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지은 밥맛도 벽에 부딪힌다. ‘쌀이 나고 자란 고장’에서 ‘나락이 늘 마시던 바람’까지 담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도시사람은, 또 시골이라 하더라도 읍내나 면소재지 사람은, 샘물이나 냇물이나 우물물이나 땅밑물이나 골짝물이 아닌 수도물을 마신다. 언제나 수도물뿐이다. 애써 시골로 깃들지 않고서야 물맛을 제대로 알아채거나 느끼기 어렵다. 물맛을 이야기 나누기 어렵고, 물맛을 놓고 이래저래 삶빛을 주고받기 어렵다.


  그러나, 물 한 방울에서 물맛을 느끼지 못하는 도시 사회가 더 깊어지거나 퍼진다 하더라도 물맛을 자꾸 이야기해야지 싶다. 물맛이 사라지고, 물맛을 잃는 오늘날이기에 더더욱 ‘가게에서 플라스틱병에 담아서 파는 먹는샘물’ 아닌, 사람과 들짐승과 풀벌레와 푸나무 모두 살리는 ‘물맛’이 무엇인가를 꾸준히 이야기해야지 싶다. 물맛을 모르고는 밥맛을 알 수 없고, 밥맛을 모르고는 삶맛을 알 수 없다. 4346.6.2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과 헌책방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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