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림 농사

 


  나는 ‘유기농’으로 고추농사를 짓는다는 사람 말은 믿지 않는다. 거름을 사람 똥오줌으로 줄 만큼 고추밭에 뿌릴 수 없기도 하거니와, 같은 땅에 해마다 고추를 심을 수 없기도 하다.


  비닐을 씌우면서 곡식과 열매를 키우는데 ‘유기농’과 ‘친환경’이라는 이름을 붙인다면 믿을 수 없다. 비닐집 세워서 농사를 지으면 ‘비닐농사’이지, 다른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다. 감자밭에도 고추밭에도 마늘밭에도 배추밭에도 무밭에도 온통 비닐을 씌우는 비닐농사를 하는 오늘날 흐름이라면, 섣불리 ‘유기농’이나 ‘친환경’이라는 이름을 붙여서는 안 된다고 느낀다. 그래서 요새 어떤 흙일꾼은 ‘노지 감자’라는 말을 쓴다. ‘노지(露地)’는 일본말로 ‘맨땅’을 가리킨다. ‘맨땅 감자’란 뜻인데, 이렇게 따로 이름을 안 붙이면 사람들이 제대로 모른다고 한다.


  귀농이나 귀촌을 가르치거나 알려준다는 모임이나 자리를 보면, 으레 ‘비닐집 짓’고 밭두둑마다 넓게 ‘비닐을 까’는 모습부터 보여주던데, 왜 이렇게 ‘생각있고 뜻있다’는 사람조차 비닐사랑에 매달리는지 알쏭달쏭하다.


  얼마 앞서 어느 모내기잔치 행사에 갔을 때에 여러 사람 주고받는 이야기를 곁에서 들었다. 한 사람이, 고추나 여러 가지 푸성귀 심어 기르면서 ‘푸성귀가 빗물 맞으면 안 되어 비가림 시설을 한다’는 말을 한다. 다른 한 사람이, 그러면 그 농사는 친환경도 유기농도 아닌 ‘비가림 농사’ 아니냐고 말을 한다. 아까 말한 사람은, 그게 아니고 유기농으로 하려면 ‘비가림 시설을 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그러니 다른 한 사람이 다시, ‘그게 바로 비가림 농사이지 뭐냐’면서, ‘언제부터 고추고 토마토고 빗물 안 마시고 자라느냐고, 이녁 밭에서는 고추도 배추도 무도 무엇도 빗물 잘 마시면서 잘 큰다’고 덧붙인다.


  가만히 따지면, 오늘날 도시사람 먹는 모든 곡식과 푸성귀와 열매는 ‘농약 농사’와 ‘항생제 농사’와 ‘비료 농사’에다가 ‘비닐 농사’로 거둔다. 곧, 오늘날 사람들은 몽땅 ‘농약·항생제·비료·비닐 농사’로 거두는 곡식이랑 푸성귀랑 열매를 먹는 셈이다. 아니, 감자도 고구마도 참외도 수박도 딸기도 토마토도 멜론도 블루베리도 커피도 포도도 사과도 배도 복숭아도 아닌, 농약과 항생제와 비료와 비닐을 먹는 셈이다. 4346.6.2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과 헌책방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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