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눈

 


  옛 어른은 젊은이더러 ‘눈 밝을 적에 좋은 책 많이 읽어 두라’ 하고 이야기합니다. 나이 들어 눈 어두우면 제아무리 좋다 하는 책이라 하더라도 읽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눈 어둡다 해서 책을 못 읽지 않습니다. 젊은 날부터 책읽기가 익숙한 사람이라면 눈 어둡다 하더라도 책을 즐겁게 읽습니다. 많이 읽지는 못하더라도 한 줄 읽는 즐거움 누립니다. 오래 읽지는 못하더라도 두 줄 새기는 기쁨 누려요.


  젊은 날에 책읽기를 버릇으로 들이지 않은 사람은, 나이 들어 책을 가까이하려 하면 어렵습니다. 오래도록 눈길이 책하고 동떨어진 나머지, 커다랗고 굵은 글씨조차 읽어내지 못해요. 어지러울 뿐 아니라, 글월마다 깃든 삶자락을 헤아리지 못해요. 글씨 훑기에 바빠 책 하나 감도는 사랑을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못하지요.


  책을 읽는 눈이란 삶을 읽는 눈입니다. 삶을 읽는 눈이란 사람을 읽는 눈입니다. 사람을 읽는 눈이란 사랑을 읽는 눈입니다. 사랑을 읽는 눈이란 숲을 읽는 눈입니다. 숲을 읽는 눈이란 숨결을 읽는 눈입니다. 숨결을 읽는 눈이란 넋을 읽는 눈입니다. 넋을 읽는 눈이란 지구별을 읽는 눈, 곧 보금자리를 읽고 흙과 해와 물과 바람을 읽는 눈입니다. 책 하나 징검다리 되어 내가 삶을 돌아보고 사람을 살피며 사랑을 느끼는 눈길이 한결 짙고 푸르게 거듭납니다. 4346.3.1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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