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 일상의 풍경
안해룡 지음, 리만근 사진 / 현실문화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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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124

 


이웃을 찾는 사진찍기
― 북녘 일상의 풍경
 리만근(석임생) 사진,안해룡 글
 현실문화연구 펴냄,2005.6.26./28000원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사진실에서 일하면서 북녘에 머물 일이 있던 리만근 님은 《북녘 일상의 풍경》(현실문화연구,2005)이라는 사진책 하나 낸 적 있습니다. 2005년 6월에는 이녁 이름을 밝힐 수 없어 ‘리만근’이라고 이름을 숨겨 사진책을 내놓고, 이듬해 12월에는 이녁 이름을 ‘리만근(석임생)’으로 밝히며 두 번째 사진책을 내놓습니다.


  신문기자도 사진작가도 아니면서 북녘사람 여느 삶자락을 사진으로 찍어 남녘에서 내놓는 일이란 아주 드뭅니다. 아니, 아직 이루어지기 어려운 일이라고 느낍니다. 몇몇 신문사 사진기자가 북녘을 취재하며 찍은 사진으로 책을 엮으며 ‘북녘 정치 얼거리 헐뜯기’에서 홀가분하지 못합니다. 여러 사진작가가 북녘을 드나들며 찍은 사진으로 책을 엮으며 ‘북녘 여느 사람 삶자락 들여다보기’까지는 다가서지 못합니다. 사진기자이든 사진작가이든 여러 해 머물며 사진을 찍을 수 없었거든요. 적어도 여러 달 꾸준히 머물며 마을을 느끼고 사람을 마주하는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을 수 없기도 했어요. 먼저 ‘편견’이나 ‘선입관’을 내려놓아야 하지만, 오래도록 남녘에서 받은 제도권 교육 지식 틀에서 홀가분하지 못해요.


  공공기관에 몸담은 ‘사진 직원’이 되어 북녘에서 일곱 해 지낸 리만근(석임생) 님은 당신이 맡은 일을 사진으로 담는 한편 “나는 지금의 북한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우연히 오랫동안 북한에 머물 수 있는 기회가 행운처럼 나에게 다가왔다. 이 기적 같은 행운은 나를 들뜨게 했지만, 한편에는 왠지 모를 불안함도 있었다(7쪽).” 같은 말마따나, ‘회사(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 일을 넘어서는 ‘사진삶(북녘 이웃 마주하기)’으로 나아갑니다. 굳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듯 눈총을 받으면서까지 ‘북녘 이웃 마주하기(사진삶)’을 하지 않아도 일삯은 꾸준히 받았을 테고, 당신 일자리(사진 직원)는 걱정이 없었겠지요.

 

 

 


  그러나, 리만근(석임생) 님은 생각했어요. 남녘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북녘에서 살아가는 이웃을 생각했어요. 남녘하고 이웃한 나라요 한겨레이지만, 도무지 만날 수 없고 사귈 수 없는 높다란 울타리가 놓인 북녘땅 사람들을 생각했어요.


  “북한의 사람들도 사진 찍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백일이나 돌, 그리고 가족의 경사가 있다면 동네 사진관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김일성 주석의 생일이나 김정일 장군의 생일 등이 되면 태양상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기도 한다. 필름을 구하기가 쉽지 않지만 〈우리 중대 사진사 왔네〉라는 노래가 불리울 정도로 북한 사람들은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다(8쪽).”와 같은 이야기처럼, 북녘사람은 ‘뿔 달린 사람’이 아닙니다. 사진책 《북녘 일상의 풍경》에 나오는 북녘사람 가운데 머리에 뿔 달린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진책 《북녘 일상의 풍경》에 나오는 북녘이웃 가운데 얼굴이 시뻘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북녘이웃은 그예 한겨레일 뿐, 빨갱이도 파랭이도 노랭이도 아닙니다. 북녘동무는 그예 사람일 뿐, 적군도 아군도 괴뢰군도 아닙니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에요. 북녘에서도 누군가는 권력을 누리며 탱자탱자 놀고먹기도 하겠지요. 남녘에서도 이와 같아요. 남녘에서도 누군가는 권력을 누리며 탱자탱자 놀고먹어요. 그리고, 북녘에서나 남녘에서나 가난한 사람은 똑같이 가난합니다. 힘겨운 사람은 똑같이 힘겨워요. 이와 함께, 북녘에서나 남녘에서나 웃는 사람은 늘 웃습니다. 까르르 웃고 하하호호 웃어요. 신나게 노래하고 즐겁게 노래합니다.

 

 

 


  리만근(석임생) 님은 “나의 사진 작업은 단순히 북한의 이미지만을 담은 것이 아니다. 나는 북한 사람들의 일상을 이해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우리와는 확연하게 달라져 버린 북한의 말을 이해하려고 북한의 국어사전을 놓고 단어 공부를 해 가며 북한의 신문과 방송을 세심하고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사진에 담긴 북한의 외양은 얼핏 보면 우리의 1960∼70년대 모습처럼 보이지만, 나는 사진 안에서 우리의 생활과는 너무도 달라져 버린 북한의 일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9쪽).” 하고 밝힙니다. 그래요. 남녘과 북녘은 기나긴 해에 걸쳐 서로 다른 삶이 되어요. 같은 말이라지만 남녘말과 북녘말은 달라요. 맞춤법도 다르지만 국어사전도 다르지요. 띄어쓰기도 다르지만 말느낌이랑 말높낮이도 달라요. 다만, 아무리 다르다 하더라도 같은 말로 이야기를 섞을 수 있어요. 저마다 달리 쓰는 낱말이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한데 섞이지요. 누군가 부추라 말하고 누군가 정구지라 말한대서 서로 못 알아듣지 않아요. 이내 알아차리지요. 누군가 민들레라 하고 말똥굴레라 한대서 서로 못 알아채지 않아요. 곧 알아챕니다.


  그러니까, 나는 너를 알려고 다가서면 돼요. 너는 나를 알려고 다가오면 돼요. 서로 손을 잡으면 돼요. 서로 어깨동무하면 되지요. 마음으로 사귀고 사랑으로 오순도순 이야기꽃 피우면 될 일입니다. 어떻게 사는지 들여다봅니다. 구경꾼 구경이 아니라, 이웃집 이웃마실로 함께 살아갈 길을 찾으면 돼요.


  리만근(석임생) 님은 힘주어 말해요. “사진에 담겨 있는 북한의 사람들은 비록 어렵게 살고 멀리 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다정스럽게 다가오는 우리 고향의 이웃들이었다(9쪽).” 하고. 그렇지요. 이웃을 찾는 사진찍기를 누리는 우리들이지요. 머나먼 남남을 스쳐 지나가는 구경거리로 바라보는 사진찍기가 아니에요. 살가운 이웃하고 도란도란 이야기잔치 누리려는 사진찍기예요. 동떨어진 남남하고 등을 지려는 사진찍기일 수 없습니다. 따사로운 눈길로 따사로이 얼싸안으면서 따사로이 삶을 누릴 너와 내가 이루는 마을을 생각하는 사진찍기입니다.


  내 이웃을 찍을 때에는 값진 사진기를 써야 하지 않습니다. 사랑어린 손길로 다룰 사진기라면 넉넉합니다. 내 이웃을 찍을 때에는 빼어난 솜씨가 있어야 하지 않습니다. 즐겁게 찍고 기쁘게 나눌 사진을 생각하면 됩니다. 내 이웃을 찍을 때에 이런 이론 저런 평론을 들먹여야 하지 않습니다. 서로 아끼는 품이요 함께 노래하는 넋이면 사랑스럽습니다.


  사진에는 내 이야기를 담습니다. 사진에 담는 이웃 모습이라 하더라도, 이웃과 마주하는 내 이야기입니다. 사진에는 내 꿈을 담습니다. 사진에 담는 이웃 삶자락이라 하더라도, 이웃하고 어깨동무하는 내 삶에 어리는 꿈입니다. 사진에는 내 사랑을 담습니다. 사진에 담는 이웃 이야기라 하더라도, 이웃사람하고 알콩달콩 주고받는 이야기에서 찬찬히 피어나는 꽃과 같은 사랑이에요. 4346.1.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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