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른입니까 6] 사회읽기
― 남북녘 ‘미사일’ 또는 ‘로켓’ 또는 ‘우주선’

 


  나는 신문을 읽지 않습니다. 나는 방송을 보지 않습니다. 우리 시골마을에는 신문이 안 들어오고, 우리 시골집에는 텔레비전을 안 놓습니다. 무언가 읽어야겠으면 내 마음 따사로이 이끄는 책을 찾아서 읽습니다. 무언가 보아야겠다면 아이들과 함께 들길마실이나 멧골마실이나 바다마실을 합니다. 시골마을 벗어나 이웃마을, 이를테면 서울이나 부산이나 인천 같은 도시로 마실을 한다든지, 시골집을 떠나 아이들 할머니 할아버지 뵈러 음성이나 일산으로 마실을 할 적에 비로소 신문이든 방송이든 마주합니다.


  사람들은 으레 묻습니다. 신문 안 읽고 방송 안 보면 사회 굴러가는 흐름을 어찌 아느냐고. 오늘날 같은 사회에서 신문이랑 방송 없이 지내면 바보가 되지 않느냐고.


  나는 빙긋빙긋 웃으면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신문에 어떤 기사가 실리나요? 방송에 어떤 사람들이 나오나요? 신문에 실린 기사 가운데 하루 지난 뒤에도 떠오르는 기사가 있나요? 방송에 나온 연속극이나 새소식이나 연예인 수다 가운데 며칠 지나서 또렷이 되새기는 모습이 있나요? 아니, 아침에 읽은 신문글이 저녁이 되면 덧없는 지식조각이 되지 않나요? 아니, 저녁에 본 방송은 이듬날 되면 고스란히 옛 것이 되거나 낡은 것 되어 새로운 방송이 자꾸자꾸 더 낯간지럽게 흐르지 않나요?


  신문을 펴면 첫 쪽부터 언제나 정치꾼 얼굴이 큼지막하게 나옵니다. 그런 다음 미국 이야기가 몇 가지 나오고, 주식시세표가 나오며, 운동경기 이야기가 나오다가는 연예인 이야기 얼마쯤 나온 뒤, 누가 죽고 다쳤다느니, 누가 돈을 떼어먹었거나 누군가를 괴롭힌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신문은 이와 같습니다. 신문은 우리 삶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방송도 엇비슷해요. 방송은 여기에 몇 가지 곁들이는데, 이른바 대중노래라든지 연속극이라든지 때때로 영화라든지 다큐멘타리라든지 나오기도 하지만, 한결같이 시청율 노리는 낯뜨거운 이야기가 그득그득합니다.


  신문을 읽는 사람이 외레 사회를 모르는 채 바보가 되지 않나요? 방송을 보는 사람이 오히려 사회와 멀어진 채 멍청이가 되지 않나요? 신문에는 ‘노동자가 왜 파업까지 하게 되는가’ 하는 대목을 밑뿌리 낱낱이 캐며 밝히지 않아요. 택시회사 일꾼이 사납금 때문에 얼마나 애먹는지, 택시회사는 사납금 제도로 돈을 얼마나 벌어들이는지, 이런저런 속깊은 이야기가 드러나지 않아요. 방송 새소식에서도 이와 같아요. 정치꾼 이야기를 할 적에도, 두 군데 커다란 정당 사람들 목소리만 담지, 정치를 아름다이 일구려 힘쓰는 사람들 이야기에는 귀퉁이 한쪽 자리조차 안 주기 일쑤예요.


  무엇보다, 신문이랑 방송은 온통 서울 이야기입니다. 부산이나 대구나 광주나 인천 이야기조차 ‘지방 소식’으로 다룰 뿐이에요. 작은도시 이야기는 끼어들 자리마저 없고, 시골 이야기는 아예 나오지 않아요.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신문이나 방송을 들출 일이 없어요.


  사회를 읽고 싶으면 사회를 읽으면 됩니다. 나 스스로 사회와 부대끼면서 내 눈썰미와 마음그릇으로 사회를 돌아보면 됩니다. 사회읽기란 나와 이웃이 지내는 마을이 어떻게 흐르는가를 몸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바라보는 일이에요. 신문이나 방송이나 책이나 논문이나 잡지로는 사회읽기에 한 가지 도움조차 주지 못해요. 내가 사회에 있을 때에 사회를 읽고, 내가 사회를 생각할 때에 사회를 읽어요.


  고흥 시골집을 떠나 인천으로 이틀 마실을 다녀오는 길에, 순천 기차역에 내려 김밥 두 줄을 사는데, 분식집 텔레비전에서 ‘북녘에서 로켓을 쏘았다. 북녘 가난한 주민 삶은 걱정하지 않는다. 로켓 개발비로 쓸 돈을 민생 살리는 데에 써라. 남녘 안보를 어지럽히는 나쁜 짓이다.’와 같은 이야기가 흐릅니다. 김밥 두 줄 받고 5500원을 치릅니다. 가방에 김밥통을 담습니다. 순천 버스역까지 천천히 걸어갑니다. 고흥으로 들어가는 시외버스를 탑니다. 시외버스는 국도를 달려 고흥으로 접어들고, 고흥 읍내에서 내리니 아주 한갓집니다. 짐이 많아 군내버스 말고 택시를 탑니다. 억새풀 흐드러지고 갈대밭 어여쁜 시골길 지나 우리 마을 어귀에 닿습니다. 눈부시게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며 기지개를 켭니다. 아이들 모두 잠든 깊은 밤에는 홀로 마당으로 내려와 까만 하늘을 새삼스레 올려다봅니다. 쏟아지는 별을 가득 안습니다.


  남녘 대통령과 정치꾼과 기자와 지식인이 ‘걱정해 주는 북녘 민생’이란 무엇일까요. 남녘 대통령과 정치꾼과 기자와 지식인은 ‘남녘 민생 걱정’을 얼마나 하며 살까요. 남녘땅 고흥 나로섬에 지은 우주기지에서 ‘우주선에 붙일 로켓 추진장치’를 쏘려고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돈을 쏟아부었지만, 끝내 로켓 추진장치를 못 쏘고 끝났어요. 몇 조인지 몇 십 조인지 알 수 없는 돈을 우주개발 하겠다면서 쓴 남녘이에요.


  얼추 10조라고 쳐 보아요. 10조 원이라는 돈을 남녘 ‘민생’을 살펴 보듬는 데에 썼다고 하면, 우리들 남녘살이는 어떠한 모습으로 거듭날까요. 이른바 ‘4대강 살리기’를 ‘남녘사람 삶 살리기’를 하는 쪽으로 가닥잡았다면 우리들 남녘살이는 어떠한 빛깔로 환하게 빛날까요.


  이렇게 하니 잘못이고 저렇게 하니 글러먹는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사회를 어떻게 읽겠느냐는 소리입니다. 남녘 과학자와 공무원이 ‘러시아 기술자’ 아닌 ‘북녘 기술자’를 받아들였으면, 한결 적은 돈을 들여 더 빨리 ‘로켓 추진 장치 쏘는 일’도 ‘뜻을 이루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러는 동안 남북교류라든지 남북협력이라든지 남북통일이라든지, 더 따사롭고 슬기로우며 즐겁게 이루는 길을 걸었겠지요. 남녘과 북녘이 따사로이 손을 잡으면 국방비에 터무니없는 돈을 들일 까닭이 없고, 이 국방비는 ‘대학 무상교육’이라든지 ‘병원 무상시설’이라든지 ‘출판 무상지원’처럼, 교육과 복지와 문화를 북돋우는 아름다운 꿈을 이루는 멋스러운 길이 되리라 느껴요. 사회를 읽으려면, 신문이나 방송이라 하는 ‘안경’을 벗고, ‘내 눈’으로 내 삶을 사랑하면서 눈빛을 맑게 트면 돼요. 4345.12.13.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