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바닥에 쓰는 글

 


  다섯 살 큰아이가 방바닥에 제 이름 넉 자 적은 모습을 문득 본다. 아침에 일어나 방바닥을 훔치다가 이 글월을 본다. 어느새 이렇게 방바닥에 글을 그렸댜? 온 집안 벽과 문에 이런 그림 저런 글을 가득 그리더니, 이제 방바닥에까지 무언가 그리니? 키가 닿으면 천장에다가도 무언가 그리겠네?


  옛날 옛적을 더듬는다. 내가 우리 집 큰아이 나이만 하던 어린 나날, 나 또한 방바닥 종이 장판에 이렇게 무언가 끄적이거나 그리지 않았나 하고 더듬는다. 우리 집뿐 아니라 이웃이나 동무네 집에 찾아갔을 적에 방바닥에 연필로 이리저리 무언가 그리지 않았나 곰곰이 더듬는다.


  연필로 방바닥에 신나게 그림을 그리다가 지우개로 바지런히 지우는데, 그만 방바닥 종이 장판이 지지직 찢어진 일이 떠오른다. 깜짝 놀라 어쩔 줄 모르다가 풀을 꺼내 서둘러 다시 붙이고는 손가락으로 톡톡 눌러 모르는 척하던 일을 떠올린다.


  이웃이나 동무네 집 어머님께서 ‘방바닥 종이 장판 찢어진 자국’을 못 알아챌 수 없으리라. 날마다 방바닥을 훔치든 이틀이나 사흘에 한 차례 방바닥을 훔치든, 비질을 하고 걸레질을 하노라면 으레 ‘방바닥에 뭔가 일이 생긴 줄’ 알아챈다. 당신들께서는 ‘어린 것들이 하고많은 종이를 두고 왜 방바닥에까지 이런 짓인고!’ 하고 나무라거나 꿀밤 몇 대 먹일 만했을 텐데, 모두들 너그러이 보아넘겼구나 싶다. 오늘 이곳에서 우리 집 다섯 살쟁이 큰아이를 예쁘고 귀여우며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따사로이 얼싸안으라는 말씀을 말없이 물려주었을까. 4345.12.7.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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