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책읽기

 


  서울사람이 다 함께 꼭 사흘만 서로 어깨동무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면, 어떠한 노동운동·사회운동·시민운동·환경운동·예술운동이든 하루아침에 사라지면서 이 나라가 정갈하게 달라질 테니까.


  서울사람이 다 함께 꼭 사흘만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두 다리로 씩씩하게 서울을 떠나 저마다 제 고향마을 시골로 돌아가거나, 동무마을 시골로 마실을 가면, 서울은 텅텅 비어, 대통령이랑 국회의원이랑 판검사랑 경찰이랑 공무원이랑 교사랑 대기업 우두머리랑 간부랑 남겠지. 딱 사흘 동안 이들끼리 스스로 밥 지어 먹고, 스스로 빨래해서 옷 입고, 스스로 비질이랑 걸레질하며 잠자리 마련하고, 스스로 자가용을 몰든 자전거를 몰든 하면서 살림을 꾸려 보라고 하자. 의사랑 간호사랑 스스로 병원을 쓸고 닦으며 치워 보라고 하자.


  공장 일꾼도, 버스와 택시와 지하철 일꾼도, 택배 일꾼이랑 우체국 일꾼도, 청소 일꾼도, 다 같이 까르르 하하 호호 웃으며 시골집에 오순도순 모여 옥수수 구워 먹고 감자랑 고구마 삶아 먹으며 누룽지 긁어 먹는 나날을 사흘 보내는 동안, 서울도 이 나라도 모조리 달라지겠지. 군인을 끌여들여 버스를 몰게 하고 공장을 돌리게 하고 비행기를 뜨게 한다구? 그러면 군인도 몽땅 제 어머니 아버지 찾아 그리운 고향집으로 가야지. 군인들도 모조리 사흘쯤 군대를 떠나, 별쟁이랑 꽃쟁이끼리 군대 막사를 지켜 보라고 하자. 젊은이들이 사흘만 군대를 비우면, 군대가 얼마나 부질없는가를 깨닫고는 해마다 수십 조에 이르는 돈을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쏟아 버리는 일까지 말끔히 사라지겠지.

  딱 사흘이면 된다. 딱 사흘 동안 신문도 방송도 인터넷도 책도 모조리 끊고는, 전깃불도 몽땅 끊고는, 깜깜한 밤하늘을 누리고 해맑은 낮하늘을 누리면서 삶을 돌아볼 겨를을 누리면, 서울사람 마음밭에 싱그럽고 푸른 사랑이 새삼스럽게 샘솟을 수 있겠지. 4345.12.5.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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