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 가수 새미 Dear 그림책
찰스 키핑 글 그림, 서애경 옮김 / 사계절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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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16

 


너는 서울에서 살아서 재미있니
― 길거리 가수 새미
 찰스 키핑 글·그림,서애경 옮김
 사계절 펴냄,2005.5.26./9500원

 


  서울에서 살아가기에 재미없는 나날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어디에서 살아가든 스스로 재미나는 꿈과 사랑이 있을 때에는, 스스로 재미나는 삶을 누리리라 느껴요. 서울에서 살아가든 고흥에서 살아가든, 내가 날마다 새롭게 맞이하는 하루를 즐거이 바라보지 못하거나 기쁘게 어루만지지 못한다면, 재미난 일은 나한테 찾아오지 않으리라 느껴요. 아니, 재미난 일이란 스스로 빚으니까, 스스로 너른 생각과 맑은 사랑과 푸른 꿈을 키워야겠지요.


  그런데, 서울에서 살아가며 스스로 너른 생각과 맑은 사랑과 푸른 꿈을 키우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궁금합니다. 어디에서 살아가든 스스로 생각과 사랑과 꿈으로 이야기를 지을 수 있으면 재미날 테지만, 막상 서울에서든 고흥에서든 스스로 이야기를 짓는 슬기를 빛내는 이는 너무 드물지 않느냐 싶어요.


  이야기꽃하고 자꾸 동떨어져요. 이야기샘하고 자꾸 멀어져요. 스스로 이야기꾸러미를 꾸리지 못해요.


  이야기빛을 영글 때에 삶빛이 환하고, 이야기열매를 나눌 적에 삶열매를 나누어요. 이야기사랑으로 삶사랑을 꽃피웁니다. 이야기꿈으로 삶꿈을 북돋웁니다.


  고흥 같은 시골에서는 아이들이 초·중·고등학교를 시골에서 다니며 서울바라기가 되도록 이끌어요.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가야 한다거나 서울에 있는 큰회사에 들어가야 한다고 내몰아요.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붙으면 학교나 읍내나 마을마다 걸개천을 내걸어요. ‘서울에 들어갔으니 축하한다’는 소리일 텐데, 아이들은 한 번 서울로 떠나면 한가위나 설날 때가 아니고는 고향마을로 돌아가는 일이 없어요. 서울에서 돈을 버느라 바쁘고, 서울에서 짝짓기를 하느라 바쁘며, 서울에서 일자리를 지키느라 바빠요.


  아이들은 꿈이 있어서 서울로 가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사랑이 있어서 서울로 가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서울로 가면 무언가 있겠지’ 하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서울에 사람이 많으니, 뭐가 되든 되겠지’ 하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이러한 생각조차 없이 서울로 떠나곤 합니다.


.. 동네 꼬마들과 개들도 흥에 겨워 새미를 따라다니며 춤을 춥니다. 새미에게 이곳은 천국이나 다름없습니다 ..  (3쪽)


  시골아이가 서울아이가 되는 흐름을 살피면, 시골아이는 태어나 자란 ‘주소’가 시골일 뿐, 정작 시골흙을 밟거나 시골숲을 누비거나 시골바다에서 헤엄친 일이 아주 드뭅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며 느긋하게 흙을 만지며 일하거나 놀지 못해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가서 비디오나 텔레비전을 볼 뿐입니다. 초등학교부터 교과서 수업에 바쁘고, 놀이를 한댔자 자전거를 탈 뿐이요, 또다시 텔레비전 앞에 앉습니다. 중학교부터 대입시험 굴레에 갇혀 늦도록 시험공부를 합니다. 이동안 시골 중·고등학교 아이들이 즐기는 놀이란 딱히 없습니다. 서로 모둠을 이루어 멧길을 오르거나 숲속놀이를 하지 않아요. 바다와 갯벌이 코앞에 있어도 바다를 누비거나 갯벌을 달리지 않아요.


  서울아이는 밤이 되어도 별이나 달을 보지 않습니다. 별이나 달이 안 보일 만큼 높은 건물이 빽빽할 뿐 아니라, 가게마다 등불이 훤하기 때문이지만, 서울어른 가운데 별이나 달을 사랑하면서 누리는 분이 매우 적어요. 곧, 서울어른 스스로 별이랑 달을 안 즐기니, 서울아이 또한 별이랑 달을 안 즐겨요. 시골아이도 이와 같아요. 시골어른 스스로 별이랑 달을 즐길 적에 시골아이도 별이랑 달을 즐겨요. 그러나, 시골어른 스스로 시골숲을 누리지 않는 나머지 시골아이 또한 ‘주소만 시골인 틀’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이 아이들이나 이 어른들은 시골에 있든 서울에 있든 스스로 삶을 빚는 꿈과 사랑이 없어요. 스스로 재미난 하루를 열지 못해요.


..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관객들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없게 되었지요. 어마어마한 스타디움 공연에서 새미는 모래알처럼 작은 존재였고, 새미의 귀에는 어둠 속에서 관객들이 질러대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습니다. 관객들은 전혀 새미의 노래를 듣지 않는 듯했습니다 ..  (14쪽)


  그림책 《길거리 가수 새미》(사계절,2005)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길거리 가수 새미’는 도시에서 살아가며 노래를 불렀는데, 새미가 사는 도시는 좀 변두리라 할 만한 데입니다. 새미는 도시 변두리, 이를테면 골목동네 한켠에서 조용히 살아가며 노래를 즐겼고, 새미 둘레에는 새미가 부르는 노래를 함께 즐기는 벗이 있습니다. 그런데, 새미는 제 삶터를 한껏 누리지 않아요. ‘변두리’ 아닌 ‘한복판’을 바라요. 돈을 많이 벌고 이름을 높이 얻으며 힘을 실컷 거머쥐기를 바라요.


  이리하여 새미는 ‘길거리 가수’ 아닌 ‘큰무대 가수’가 됩니다. 자, 그러면, 새미는 삶이 즐거울까요. ‘큰무대 가수’가 되었으니 날마다 아름다운 꿈이랑 사랑을 즐길까요.


.. 비 오는 날, 새미는 공원에 앉아 제 처지를 속상해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문득 옛 친구들이 자기를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는 것을 깨달았지요. 순간 머릿속에 번뜩 스쳐 가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새미 스트리트싱어는, 변함없이 혼자서도 노래하고 춤출 수 있는, 길거리 가수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  (29쪽)


  서울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바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바보스럽게 살아갈 때에 바보요, 스스로 슬기롭게 살아간다면 슬기쟁이입니다. 그래서 한 번 묻고 싶어요. “너는 서울에서 살아서 재미있니?” 하고. 재미가 있으면 무엇 때문에 재미있는지 다시 묻고 싶어요. 재미가 없으면 무엇 때문에 재미없는지 거듭 묻고 싶어요.


  서울에서 살며 재미있는 사람은 이 재미를 이웃 시골이나 도시하고 얼마나 예쁘게 나눌는지 궁금합니다. 서울에서 살며 재미없는 사람은 왜 재미없는 곳에 그대로 붙박아 지내는지 궁금합니다. 아니, 서울사람은 ‘살아가는 재미’를 생각하는 하루를 보내는지 궁금합니다.


  별을 못 보는 삶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궁금합니다. 해를 못 쬐는 삶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궁금합니다. 무지개를 못 보는 삶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궁금합니다. 미리내를 못 보고, 뭉게구름을 못 보며, 제비와 사마귀를 못 보는 삶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궁금합니다.


  아이들이 자동차 걱정을 않고 신나게 뛰어놀 빈터와 흙땅이 없는 서울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궁금합니다. 어른들이 바람소리와 나무그늘을 누리며 막걸리 한 잔 즐길 만한 너른 마당이 없는 서울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궁금합니다. 아이들이 어버이와 풀을 뜯으면서 풀내음을 먹을 수 없는 서울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궁금합니다. 어른들이 스스로 씨앗을 심어 나무 한 그루 사랑할 손바닥만한 마당조차 건사할 수 없는 서울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궁금합니다. 4345.11.25.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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