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산책자 - 두 책벌레 건축가가 함께 걷고 기록한, 책의 집 이야기
강예린.이치훈 지음 / 반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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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관은 싱그러운 책 읽는 곳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55] 강예린·이치훈, 《도서관 산책자》(반비,2012)

 


- 책이름 : 도서관 산책자
- 글 : 강예린·이치훈
- 펴낸곳 : 반비 (2012.10.25.)
- 책값 : 16000원

 


  도서관은 싱그러운 책을 읽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싱그러운 책이 아니라면 굳이 도서관까지 찾아가서 읽을 까닭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싱그러운 책이 아닐 때에는 대여점에서 빌린다든지 여느 책방에서 사다 읽어도 될 테지요. 그러나, 싱그러운 책이 아니라 한다면, 굳이 내 아름다운 겨를을 내어 읽어야 할까 궁금해요.


  싱그러운 책이기에 도서관에서 빌려 읽습니다. 싱그러운 책이기에 새책방에서 주머니를 털어 장만해서 읽습니다. 싱그러운 책이기에 새책방 책꽂이에서 사라진 책을 오랜 품과 겨를을 들여 헌책방을 찾아다니면서 즐겁게 사들여서 읽습니다.


  조금 더 생각한다면, 싱그러운 이야기라고 느낄 때에 출판사에서 책을 만들어야지 싶습니다. 한 번 더 생각한다면, 싱그러운 이야기를 다룬 책이라고 여길 때에 책방에서 책을 갖추어 꽂아야지 싶습니다. 많이 팔릴 만하거나 널리 읽힐 만하기에 책을 만들 수 있을 테지만, 많이 팔린다거나 널리 읽힌대서 ‘싱그러운’ 이야기가 되지는 않아요. 신문 1쪽에 나오거나 방송 맨 처음에 나오는 이야기이기에 ‘싱그러운’ 삶이나 사랑이나 꿈을 들려주지는 않아요.


  찬찬히 생각할 노릇이라고 느껴요. 신문 1쪽에 큼지막하게 나오는 이야기 가운데 몇 가지나 하루 뒤나 한 달 뒤나 한 해 뒤에도 기쁘게 떠올리거나 되새길 이야기가 되나요. 방송에서 흐르는 이야기 가운데 몇 가지나 하루 뒤나 한 달 뒤나 한 해 뒤에서 즐거이 돌아보거나 아로새길 이야기가 되나요.


.. 형무소 옆 도서관에는 책이 수감되어 있는가? 지식이 지혜로 교정될 때까지 책은 세상에서 격리되는가? ‘경성감옥’ 옆에 서 있는 도서관을 보노라니, 자연스레 도서관 역시 감옥처럼 근대적인 ‘훈육’의 공간이라는 것이 떠오른다 … 훌륭한 도서관을 짓고자 하는 건축가라면 그 안에서 사람이 교류하는 구체적인 모습뿐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도서관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  (27, 48쪽)


  어느 모로 본다면, 도서관에서는 ‘싱그럽’지 않은 책도 건사할 만합니다. 싱그럽지 않은 책도 알뜰히 갖추면서 ‘책으로 삶을 읽’도록 돕는 구실을 할 수 있어요. 날마다 나오는 신문을 하나하나 모아서 ‘신문으로 사회를 읽’도록 이끄는 몫을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다른 눈길로 본다면, 도서관에서 구태여 싱그럽지 않은 책을 건사해야 할까 알쏭달쏭해요. 싱그러운 책만 즐겁게 찾아서 읽는 데에도 온삶을 다 바쳐도 다 못 읽는다 할 만큼 많은데, 꼭 ‘안 싱그러운’ 책을 도서관이 갖추어야 할까요. 지나치게 많은 ‘안 싱그러운’ 책이 가득 꽂히는 바람에, 사람들은 막상 ‘싱그러운’ 책을 못 찾거나 못 보거나 못 느끼지 않나요. 싱그러운 책은 싱그럽지 못한 책 사이에 낑기거나 눌리면서 햇볕을 못 보다가는 ‘대출실적 0’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폐휴지로 버려지지는 않나요.


  굳이 모든 책을 건사해야 한다면, 모든 책을 건사하는 도서관은 딱 한 군데만 있으면 되리라 생각합니다. 딱 한 군데 도서관을 빼고는 ‘싱그러운’ 책만 건사해야지 싶습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려는 사람이 “이 책 갖추어 주셔요” 하고 바란다 할지라도, 도서관을 지키는 일꾼이 “갖추기를 바라는 책”을 하나하나 훑으면서 ‘싱그러운’ 책만 추려서 갖추어야 할 노릇이라고 느껴요.


  이러고 나서, 도서관 지키는 일꾼이 할 일이 생깁니다. 무엇이냐 하면, 도서관에서 꾸준히 사들여 갖춘 ‘싱그러운’ 책을 누구보다 도서관 일꾼이 먼저 즐겁게 읽은 뒤에 ‘싱그러운 책을 읽은 느낌’을 글로 써서 ‘도서관신문’이나 ‘도서관잡지’를 만들어야지요.


  ‘새로 들어온 책 목록’만 띄운다면, 도서관으로서 제구실을 못 한다고 느껴요. 출판사에서 쓴 ‘보도자료’만 붙인다면, 도서관 일꾼으로서 제몫을 못 한다고 느껴요.


  도서관 일꾼이란, 도서관에 들여오는 책을 맨 먼저 읽고 ‘줄거리에 깃든 넋’을 받아들인 다음, 이 아름다운 넋을 ‘도서관에 찾아오는 이웃’한테 차근차근 들려주면서, 사람들 스스로 ‘아름다운 넋’을 읽고 되새기면서 새롭게 태어나도록 돕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 도서관 3층으로 올라가면 어른들의 열람실이 나온다. 도서관을 지을 때 공부하는 방을 만들자는 의견도 일부 있었으나, 건축주는 ‘책 읽는 도서관’이어야 한다는 의지가 확고했다고 한다. 전과와 문제집처럼 남이 추려 놓은 지식을 보는 것이 아니라, 추려지지 않은 지식과 이야기를 스스로 탐구하는 것이 갖는 힘과 의미를 알리고 싶었겠지 싶어 … 집에서 가져온 책으로 공부하는 열람실, 독서실은 우리 도서관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공간이다. 일제 시절부터 내려온, 근대적인 훈육식 교육 경험을 도서관이 물려받은 결과라고 한다 ..  (32∼34, 45쪽)


  도서관은 싱그러운 책을 읽으면서 내 삶을 싱그럽게 가꾸는 기운을 얻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싱그러운 책을 읽는 까닭은 나 스스로 싱그러운 넋으로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싱그러운 눈길로 내 모습을 들여다봅니다. 싱그러운 눈길로 이웃이랑 동무를 사랑합니다. 싱그러운 눈길로 나무와 풀과 꽃을 아낍니다. 싱그러운 눈길로 파랗게 빛나는 하늘을 껴안고, 기름진 들판과 푸른 숲을 어루만집니다.


  싱그러운 책을 읽는 나는 싱그러운 사람으로 거듭납니다. 책을 읽기에 거듭나지는 않아요. 책을 읽는 동안 내 마음속에서 ‘싱그러운 씨앗’ 하나가 움을 터요. 천천히 뿌리를 내리고 찬찬히 줄기를 올리지요. 싱그러운 책을 읽고 싱그러운 말을 나누며 싱그러운 일을 하면서, 시나브로 내 마음속 싱그러운 씨앗이 씩씩하게 자랍니다.


  책에는 길이 없으나, 책을 읽으며 스스로 길을 찾는 기운을 얻습니다. 책에는 길이 없으니, 책을 읽으며 길을 찾다가는 헤매기만 할 뿐이에요. 책을 읽으며 길을 헤매면, 이 책도 읽고 저 책도 읽으며 온갖 책지식을 잔뜩 쌓을 수 있어요. 그렇지만, 책지식으로 무엇을 할까요. 책지식으로는 사랑을 하지 못해요. 책지식으로는 꿈을 꾸지 못해요. 책지식으로는 풀씨를 받지 못해요. 책지식으로는 나뭇가지에 새로 돋는 잎사귀를 느끼지 못해요.


.. 동서양 모두 자연에서 소요하며 책을 읽는 것은 조금 더 높은 경지에 닿고자 하는 마음과 통한다. 자연에서 머리를 맑게 헹구고 책을 읽는 것은 마음을 닦는 일에 가깝다 … 사진책도서관은 최종규 관장님 말씀처럼 ‘육지에서 섬 빼고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인 전남 고흥에 자리잡고 있다. 이 먼 곳까지 작정하고 오는 동안 독자는 사진책을 읽을 마음의 폭을 마련한다. 사진책은 대개 텍스트가 아니라 이미지를 읽는 것이다. 느릿한 읽기를 통해서만 이미지를 찬찬히 감상할 수 있다. 고속도로와 고속철도 시대에도 고흥은 변함이 없을 것이라는 판단에 이곳에 자리잡았다는 관장님의 말씀은 ‘순간을 영원으로’ 간직하고 있는 사진책과 분위기가 맞춤하다 ..  (83, 160∼161쪽)


  책을 읽듯 사람을 읽습니다. 사람을 읽듯 책을 읽습니다. 책을 읽듯 꽃을 읽습니다. 꽃을 읽듯 책을 읽습니다.


  가을을 느껴 보셔요. 겨울을 느껴 보셔요. 봄과 여름을 느껴 보셔요. 다 다른 철에 다 다른 날씨를 느껴 보셔요.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선물인지 느껴 보셔요.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고을에서 다 다른 꿈으로 살아내며 쓴 책을 천천히 읽어 보셔요. 책을 읽을 때에는 숲으로 가서 나무 밑에 앉아 읽어 보셔요. 열 쪽이나 백 쪽쯤 읽었다면 책을 살짝 덮고는 파랗게 빛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셔요. 구름이 어떻게 흐르는가를 바라보고, 들새가 몇 마리쯤 날아가며 노래하는가 들어 보셔요.


  겨울이 코앞이라 풀벌레가 모두 고이 잠들었나 싶다가도, 빈 들판을 걷다 보면 곳곳에서 가느다란 노랫소리가 울려퍼져요. 아마 이른겨울까지 적잖은 풀벌레가 시골마을 들판에서 어여삐 노래를 부르겠구나 싶어요. 들새와 멧새는 한겨울에도 먹이를 찾으며 노래를 부르겠지요. 우리 집 어린 아이들도 마당에서 볼이 빨개지도록 뛰놀며 노래를 부를 테고요.


  책을 읽으며 삶을 읽습니다. 삶을 읽으며 책을 읽습니다. 서로서로 사랑하며 살아갈 삶을 읽으려고 책을 손에 쥡니다. 다 함께 어깨동무하는 아름다운 꿈을 그리면서 책을 손에 듭니다.


.. 이렇게 서고에서 길을 잃는 것은 책을 읽는 재미 중의 하나가 아닐까? 책을 읽다가 흥미로운 주석이나 인용에 이끌려 다른 책으로 계속 손을 옮기며 책이 열어 주는 여러 갈래의 길로 들어서다 보면 어느새 독자는 수십, 수백 년의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말을 걸어 오는 저자들을 한꺼번에 만나게 된다 … 개인이 구매하기 어려운 책을 도서관이 대신 구비해 주는 것이 옳지만, 도서관으로서는 예산이 한정되어 있다 보니 아무래도 소설이나 에세이처럼 찾는 사람이 많은 책을 더 구입하는 쪽으로 기운다. 그래서 사진책은 어지간한 규모의 도서관이 아니면 만나기 힘들다 ..  (136, 158쪽)


  강예린 이치훈 두 분이 쓰고 엮은 《도서관 산책자》(반비,2012)라는 인문책을 읽습니다. 도서관으로 나들이를 가는 두 분은 건축일을 한다고 합니다. 창녕에서는 도서관을 짓도록 함께 슬기를 모았다고도 해요.


  《도서관 산책자》를 읽으며 생각해 봅니다. 한국에서 ‘도서관 나들이’를 할 만할 수 있을까? 한국에 있는 도서관은 ‘서울에 있는 도서관’이랑 ‘부산에 있는 도서관’이랑 ‘순천에 있는 도서관’이 다를까?


  나는 ‘전국 헌책방 나들이’를 즐깁니다. 서울에 있는 헌책방이랑 부산에 있는 헌책방이랑 순천에 있는 헌책방은 책시렁이 저마다 달라요. 남원에 있는 헌책방이랑 진주에 있는 헌책방이랑 춘천에 있는 헌책방은 책꽂이가 사뭇 달라요.


  대전에 있는 헌책방에서는 대전사람들 삶을 헤아리는 책을 만납니다. 전주에 있는 헌책방에서는 전주사람들 삶을 톺아보는 책을 만납니다. 인천에 있는 헌책방에서는 인천사람들 삶을 그리는 책을 만나요.


  도서관은 어떠할까 궁금해요. 인천에 있는 도서관에서는 ‘인천사람 인천 이야기’를 다루는 책이나 자료가 얼마나 있을까요. 의정부에 있는 도서관에는 ‘의정부사람 의정부 이야기’를 다루는 책이나 자료가 얼마나 있을까요. 제주에 있는 도서관에는 ‘제주도 사람 제주도 이야기’를 다루는 책이나 자료가 얼마나 있을까요.


  인문책 《도서관 산책자》에서는 한국에서 도서관은 도서관 아닌 ‘독서실’ 노릇을 한다는데, 이 말은 썩 알맞지 않아요. 왜냐하면 ‘독서실’은 “책을 읽는 방”이거든요. 또 한국사람은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려고 해서 말썽이라고 말하지만, 이 말 또한 알맞지 않아요. 왜냐하면 ‘공부’는 “시험점수 더 잘 따려고 문제집이랑 참고서를 외우는 짓”하고 동떨어지거든요.


  무슨 말인가 하면, 한국사람은 ‘도서관’도 ‘독서실’도 ‘공부’도 제대로 몰라요. 도서관이 어떤 책을 건사하며 사람들하고 나누어야 아름다운 책터가 되는가를 깨닫지 않아요. 독서실이라 할 때에는 어떤 곳에 어떻게 마련할 때에 ‘책읽기’ 즐기도록 돕는가를 살피지 않아요. 공부가 무엇이며 공부를 하는 삶은 어떠한 사랑으로 피어나는가를 생각하지 않아요.


  한 마디로 간추리면, 한국에 있는 도서관은 도서관이라기보다는 ‘시험지옥 공장’이랄 수 있습니다. 칸막이로 좁게 나누어 조용히 문제집 풀기를 하느라 고개를 처박아야 하는 데는 도서관도 독서실도 아니에요. 이런 곳은 그야말로 불지옥이에요. 가시방석 입시지옥일 뿐이에요.


  강예린 이치훈 두 분은 ‘입시지옥’으로 나뒹구는 데가 아닌, 참말 ‘책읽기’가 싱그러이 숨쉬는 곳을 찾아 “도서관 나들이”를 합니다. 이러면서 “도서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생각해 보면, 한국에서 여태껏 “도서관 나들이”를 하면서 “도서관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 해요. 어쩌면 아예 없는지 몰라요.


  작은 책씨앗 구실을 하는 《도서관 산책자》일 테지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는 이제 겨우 “도서관 나들이”를 할 만큼 되었다고 할 테지요. 앞으로는 “도서관 한살이”라든지 “도서관 사랑짓기”라든지 “도서관 숲살림”을 다루는 이야기책도 태어날 수 있기를 빌어요. 책으로 읽는 삶을 헤아리고, 책을 발판 삼아 저마다 눈부시게 열어젖히는 고운 생각날개가 이야기숲처럼 흐드러지기를 빌어요. (4345.11.18.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 인문책은 삶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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