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을 이야기 4
오제 아키라 지음, 이기진 옮김 / 길찾기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함께 살아가는 땅
 [만화책 즐겨읽기 192] 오제 아키라, 《우리 마을 이야기 (4)》

 


  이 나라는 대통령 아무개 것이 아닙니다. 누구라도 이 대목을 알리라 생각합니다만, 뜻밖에 이 대목을 모르는 사람은 아주 많습니다. 이 대목을 너무 모르는 나머지 대통령뽑기에 지나치게 눈길을 두고 말아요. 대통령 한 사람 누구를 뽑든 삶도 사회도 나라도 달라지지 않거든요. 이 나라가 대통령 것이 아닌 만큼 대통령 한 사람 잘 뽑는대서 나라가 나아지지 않습니다. 대통령 하나 잘못 뽑았기에 나라가 무너지지 않아요.


  국회의원 한 사람이 마을 하나를 거머쥐지 못합니다. 정치권력이라는 이름이 있고, 국회의원이 법을 만든다고 하는데, 법이 있대서 나라가 튼튼하지 않아요. 법이 있기에 나라가 아름답거나 사랑스럽지 않습니다. 법이 없으니까 나라가 기울 일이 없습니다. 법이 없대서 나라가 어지럽거나 어수선하지 않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면, 대통령이 있어서 나라가 어지럽습니다. 국회의원·시장·군수가 있는 탓에 나라가 어수선합니다. 수십만 공무원과 수십만 교원이 있는 나머지 나라가 기울어집니다.


  옛말에도 있듯이, ‘가장 바르고 아름다우며 훌륭한 정치’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정치’입니다. 백성을 가르치거나 이끌지 않는 정치가 가장 바르고 아름다우며 훌륭하다고 일컫습니다. 백성한테서 돈을 얻어낸다든지(세금), 백성 품을 빼앗는다든지(부역·군대), 백성 목숨을 앗는다든지(전쟁), 백성 등골을 휘게 한다든지(부자들 소작제도) 하는 모든 ‘정치’가 나라를 어지럽히거나 흔드는 밑뿌리입니다.


  대통령이 할 일도, 국회의원이 할 일도, 시장이나 군수가 할 일도, 공무원이 할 일도, 교사가 할 일도 하나 없어요. 세무사가 있을 까닭이 없어요. 경찰과 군인이 있어야 할 까닭이 없어요. 이들은 모두 군식구입니다. ‘일을 안 하면’서 떵떵거리는 술꾼이나 노름꾼이라 할 만합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생각해야 합니다. 대통령이 무슨 정책을 꾀하는가요. 다른 나라하고 무역을 해서 우리 나라한테 도움이 되는 일이란 무엇인가요. 제도권 울타리에서 참교육을 외치며 힘쓰는 분들이 있습니다만, 대학바라기 밑틀을 뜯어고치거나 없애지 않으면서 시험공부만 시키는 흐름을 그대로 두는 땀방울이라 한다면, 참교육이 될 수 없어요. 군대가 무엇을 하고, 경찰이 어떤 일을 하는가요. 법정이나 교도소가 있어야 할 까닭이 있는지 생각해야 해요. 그야말로 있을 까닭이 없는 제도권 톱니바퀴가 지나치게 많은 줄 알아차려야 해요. 이 땅에서 슬기로운 한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길을 찾고 느끼며 누려야 해요.

 


- “뎃페이, 사실 나 책상 같은 거 필요없어! 전학 가기 싫어! 고료목장이 없어지는 것도 싫어!” “무슨 소리 하는 거야. 고료목장이 왜 없어져.” “없어진대. 아버지가 그랬어. 올해부터 공사가 시작된대. 이제 말도 양도 돼지도, 벚꽃도 볼 수 없대. 공단 사람이 그렇게 말했다고.” “안 없어진다니까! 그런 말 다 거짓말이라고!” (12쪽)
- “왜 일부러 집을 부수고 가는 거야?” “나도 잘 모르는데, 자기 집을 부수고 가는 게 조건이래. 여기에서 더 이상 사람이 살지 못한다는 증거로.” (20쪽)


  이 땅은 함께 살아가는 곳입니다. 이 나라는 ‘서울사람 것’이 아닙니다. 대통령 것이 아닌 이 나라인 한편, 서울사람 것도 아닌 이 나라입니다. 서울과 경기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온갖 편의·공공시설을 가장 많이 누린다 할 텐데, 서울과 경기도에서 편의·공공시설을 누리도록 하려고, 이 나라 골골샅샅 시골마을이 무너집니다. 값싼 먹을거리를 대주느라 웬만한 시골마을마다 온갖 농약과 비료와 항생제를 뿌려대느라 땅이 썩고 바람이 매캐합니다. 제대로 된 먹을거리인 ‘똥오줌 거름(유기농)’으로 마련한 곡식과 열매를 거두는 시골마을은 김매기와 흙살리기를 하느라 매우 바빠 등허리가 휩니다. 서울과 경기도에는 원자력발전소도 화력발전소도 짓지 않아요. 서울 둘레와 경기도 언저리에는 몇 군데 있다지만, 모두 한갓지고 정갈한 시골마을에 발전소를 지어요. 쓰레기를 파묻는 곳도 시골이요, 서울과 경기도에서 쓰는 온갖 자원을 퍼다 날라야 하는 곳도 시골입니다. 서울 옆 김포이든 인천 귀퉁이 영종도이든 조용한 시골이었으나 공항으로 바뀌어 온갖 공해로 멍들어야 합니다. 정작 공항을 짓고 싶으면 서울 한복판에 지을 노릇일 텐데, 꼭 시골을 무너뜨립니다. 서울 못지않게 커다란 도시인 부산을 북돋우는 나라 정책은 ‘서울-부산’ 잇는 기찻길과 고속도로를 잔뜩 뚫습니다. 모두 시골마을을 가로지르거나 시골 논밭을 파헤치거나 시골 숲을 무너뜨립니다.


- ‘우리가 함께 공을 가지고 놀았던, 널찍한 마당이 있었던 그 집은, 순식간에 사람이 살 수 없는 폐허가 되었다.’ (25쪽)
- “산리즈카는 농업의 고장이에요. 앞으로 더욱더 풍요로운 고장이 될 거구요.” (36쪽)
- 1969년 9월 9일. 426㎡나 되는 면적으로 공항 용지의 40%를 차지하는 고료목장의 나무 10만 그루에 대한 벌목이 시작됐다. 그것은, 수령 200년의 고목을 매일 천 그루씩 베어내는 작업이었다. (124쪽)

 

 


  경상남도 밀양 시골마을 송전탑 말썽거리가 여러 해째 이어집니다만, 밀양 시골마을까지 우람한 송전탑을 세우는 까닭이 무엇이겠어요. 바로 서울이나 부산이나 대구나 인천이나 광주 같은 커다란 도시 때문이에요. 커다란 도시가 온 나라를 무너뜨리거나 망가뜨려요. 대통령 한 사람이 나라를 망가뜨리지 않아요. 재벌 우두머리 몇 사람이 나라를 무너뜨리지 않아요. 바보스러운 정치꾼 몇몇 무리가 나라를 뒤흔들지 않아요. 정규직 노동자이건 비정규직 노동자이건, 서울이나 도시에 깃들어 톱니바퀴처럼 달삯쟁이로 일하는 ‘여느 사람’이자 ‘여느 이웃’이 이 나라를 무너뜨려요. 무슨 말인가 하면, 서울사람이 서울에서 살며 전기를 쓰고 싶으면, 서울 한복판 내 집 옆에 원자력발전소나 화력발전소를 지어야 해요. 서울에 발전소 안 짓고 시골에 발전소 짓도록 하는 짓은 가장 어리석고 못난 ‘지역이기주의’예요.


  아파트를 지으려고 돌이나 시멘트나 모래를 어디에서 파올까요. 아파트를 새로 짓는다며 허문 ‘옛 아파트 쓰레기’는 어디로 가져가서 파묻을까요. 아파트를 끝없이 지은 다음, 아파트 사람들 쓰는 물은 어느 시골마을을 퐁당 가라앉힌 커다란 댐에서 끌어올까요. 아파트 사람들 쓰는 전기는 어느 시골마을에 발전소를 지어서 끌어들일까요. 아파트 사람들 모는 자가용에 넣는 기름은 어느 시골마을에 정유공장 지어서 퍼올까요.


  우리 이웃집 할머니와 할아버지 두 분이 사흘에 걸쳐 고구마밭 고구마줄기를 걷으면서 고구마를 캡니다. 두 어르신이 고구마밭 일을 모두 끝낸 오늘밤부터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립니다. 참 용하지요. 아니, 오랜 나날 시골에서 살아가며 흙을 만지셨으니, 날을 미리 내다보며 비 내리기 앞서 일을 마치셨구나 싶어요. 그러나저러나, 들쥐와 두더쥐가 많이 파먹어 굵은 고구마가 얼마 없다고 말씀합니다. 나이가 무척 많이 든 두 어르신은 당신 먹을 몫이랑 아이들한테 보내줄 몫만 심어서 거둡니다. 어디에 내다 팔 만큼 심거나 거두지 않아요. 그러니 이 고구마밭에는 풀약 한 번 깃들지 않습니다. 식구들 먹을 만큼 조그맣게 돌보는 밭자락에는 풀약도 비료도 항생제도 스며들지 않아요.


  이와 달리 바깥에 내다 팔려고 퍽 널따란 자리에 심는 다른 푸성귀나 곡식에는 풀약도 뿌리고 비료도 하고 항생제도 쓰곤 합니다. 서울이나 도시 사람들은 때깔 좋거나 굵다란 열매 아니라면 아예 손을 안 대니까, 서울이나 도시 사람들 바라는 대로 곡식을 거두자면 풀약·비료·항생제는 반드시 써야 하고, 꽤나 많이 써야 합니다.

 

 


- “시끄러운 공항 문제를 축제 분위기로 덮어버리려는 속셈이야.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고 아무 생각도 없는 치들이 분위기에 휩쓸리겠지.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들떠서 웃고 춤추고 노는 사이에, 나라는 개차반이 되는 거다.” (44쪽)
- “오빠, 나도 요시자카 집안의 일원이야. 나도 이 마을에서 태어나고 고료목장에서 뛰어놀며 자랐어. 여기 산리즈카가 앞으로도 더욱 풍요로운 고장이 될 때까지, 나 이곳을 떠나지 않을 거야.” (65쪽)
- “말도 안 돼요! 콘크리트로 메워졌던 땅에서는 무 한 뿌리도 못 나요! 할아버지가 그랬어요! 제대로 된 땅이 되는데 10년은 걸린다고!” (210쪽)


  한국땅 시골마다 도시로 떠난 사람 아주 많아 빈집이 참으로 많습니다. 오래도록 빈집은 스스로 무너져내립니다. 스스로 무너져내린 흙집에서 돌과 시멘트와 쓰레기는 걷은 다음 밭으로 바꿉니다. 한 해 두 해 차근차근 건사하며 기름진 밭으로 바꾸어요. 도시로 가지 않고 시골에 남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천천히 이 일을 맡습니다.


  시골집에서 아이들이랑 가을비를 구경하다가 곰곰이 생각합니다. 그리 멀지 않던 지난날, 이 시골마을 ‘빈집 허물어진 터에 들어선 밭’마다 밭 아닌 살림집 있었을 때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았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참 많은 어른과 아이가 살았을 텐데, 예전에는 갯벌을 메워 논밭을 만들지도 않았고, 높은 멧자락까지 파들며 밭을 일구지 않았으니까, 오늘날보다 ‘일굴 논밭’이 매우 적어요. 그런데 모두들 먹고살았어요. 숲에서 나무를 해서 나무를 때며 살았어요. 흙과 숲이 참으로 많은 이들을 씩씩하고 튼튼하게 먹여살렸어요.


  오제 아키라 님 만화책 《우리 마을 이야기》(길찾기,2012) 넷째 권을 헤아려 봅니다. ‘도시사람들 문화·시설 누리도록 시골사람이 바쳐야 하는 땅’이 아닌 ‘누구나 사랑스레 어울리며 함께 살아가는 땅’을 지키려는 사람들 목소리를 듣고 얼굴을 봅니다. 만화책 하나에 아주 많은 이야기가 깃듭니다. 시골에 공항이 들어서지 못하도록 가로막으려는 움직임이 아닌, 시골이 어떠한 곳인가를 밝히고 시골에서 아름다운 두레와 품앗이를 누리는 사람들 꿈을 읽습니다. 참말 ‘우리 마을 이야기’예요. 너희 마을이 아닌 우리 마을이에요. 너희 나라가 아닌 우리 나라예요. 일본 시골마을 이야기 아닌 우리 시골마을 이야기예요. 오순도순 얼크러지고 알콩달콩 사랑을 꽃피우며, 쓰레기 하나 없이 흙하고 한몸이 되어 푸른 숨결로 살아가던 사람들 이야기예요.


- 불도저로 파헤쳐진 논밭과 삼림은 이미 공단이 매수한 땅이었지만, 그것은 우리들의 집과 논밭, 그리고 우리 마을과 이어져 있었다. 거칠게 파헤쳐진 붉은 땅을 보면, 우리의 땅이 투영되어 보였다. 우리들이 엄연히 여기 살고 있는데도, 이 나라에서 산리즈카는 이미 ‘공항 용지’일 뿐이었다. (162쪽)
- “새참 시간에는 늘 밝은 모습으로 엄마를 위로해 줬어. 당신들 농사도 바쁠 텐데, 모두들. 마을 아주머니들이 돌아가면서 와 주셨어. 다들 너무 훌륭하셔. 그치 오빠? 마을사람 수는 점점 줄고 있지만, 상황은 점점 악화되고 있지만, 그럴수록 다들 강해지고 있어. 단단하게 서로 결속하고 있어.” “그건 품앗이야. 옛날부터 있었던 마을 공동체의 관습이지.” “응. 마을의 미풍양속이 새롭게 되살아난 거네. 마을이 무너지려고 하는 지금에 와서.” (192∼193쪽)

 


  도시에서 살고픈 이는 도시에 남고, 서울에서 살고픈 이도 서울에 남을 노릇이에요. 그런데, 도시에서 살든 서울에서 살든, ‘사람으로 살아가’려는 마음이라면 내 먹을거리는 내가 내 밭에서 거두어야지 싶어요. 도시에서도 집 곁에 밭을 일구어야지 싶어요. 서울에서도 집과 집 사이에 밭이 있어야지 싶어요.


  사람들이 스스로 ‘내 밥을 내 손으로 심어 거두지’ 않으니 바보가 되는구나 싶어요.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시장도 법관도 의사도 검사도 교수도 교사도 몽땅 스스로 밭을 일구어 이녁 먹을거리를 이녁 손으로 돌보며 거두어야지 싶어요.


  스스로 흙을 만지지 않으면 아무것도 몰라요. 스스로 곡식을 거두지 않으면,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금을 그으며 서로 등지게 만드는 도시 문명 사회가 왜 자꾸 커지는가를 깨닫지 못해요. 내 손으로 냇물을 떠마실 만큼 정갈한 시골 숲을 누리지 못하면, 자동차가 이 나라를 얼마나 끔찍하게 짓밟는가를 느끼지 못해요.


  도시사람도 ‘페트병에 담긴 먹는샘물’ 맛이랑 냇물에서 흐르는 물맛이 얼마나 다른가를 느낄 수 있어야 해요. 서울사람도 자동차 배기가스가 넘치는 서울 바람맛이랑 국립공원 이름까지 붙는 시골마을 바람맛이 어떻게 다른가를 깨달을 수 있어야 해요.


  먼 옛날 맹자 어머니는 아이를 가르치려고 ‘도시로 가지’ 않아요. 오늘날 어머니와 아버지도 생각해야 해요. 아이들을 사랑스럽게 돌보고 아이뿐 아니라 어른 스스로 아름답게 살아가자면, 삶터와 보금자리를 어디에 어떻게 마련해서 무슨 일을 하며 어떤 꿈과 사랑을 키워야 하는가를 생각해야 해요. 함께 살아가는 땅을 생각해야 해요. (4345.11.17.흙.ㅎㄲㅅㄱ)

 


― 우리 마을 이야기 4 (오제 아키라 글·그림,이기진 옮김,길찾기 펴냄,2012.5.31./8800원)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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