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ker Evans: American Photographs (Hardcover)
Evans, Walker / Distributed Art Pub Inc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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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이 사진책은 다시 살 수 없겠지만, 새로 나온 이 워커 에반스 책이면 넉넉히 즐길 만하리라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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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이야기를 연 밑바탕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63] 워커 에반스(Walker Evans), 《Photographs for the Farm Security Administration 1935-1938》(Da Capo press,1973)

 


  한국 사진밭에도 두루 알려진 ‘워커 에반스’나 ‘도로디어 랭’ 같은 사진쟁이는 미국에서 ‘농업안정국(FSA,Farm Security Administration)’ 사진을 찍으면서 ‘다큐사진 새길을 열었다’고들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나는 내 나름대로 생각해 봅니다. 먼저, 1930년대 미국에서 워커 에반스 님이나 도로디어 랭 님 같은 이들이 ‘농업안정국한테서 돈을 받으며 일감을 얻지 않’았더라도, ‘대공황이며 여러 가지 어려운 가시밭길 한복판에서 고단하게 지내는 시골사람 모습과 이야기’를 이녁 스스로 사진으로 옮기려 했을까요. 다음으로는, 농업안정국이 생기고 농업안정국에서 미국 시골마을 삶자락을 낱낱이 살피며 어떤 정책을 꾀할 뜻이 있었기에, 농업정책을 꾀할 공무원부터 시골마을 삶자락을 제대로 살피거나 알아보고자 여러 사진쟁이를 불러 ‘기록사진을 찍도록 일을 맡겼’기에, 비로소 ‘워커 에반스’라는 이름이나 ‘도로디어 랭’ 같은 이름이 사진밭에 태어날 수 있었다고 할까요.


  두 가지 모두 옳다고 할 수 있고, 두 가지보다 다른 테두리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밖에 여러 가지가 맞물리면서 ‘다큐사진 새길’이 열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농업안정국이나 워커 에반스·도로디어 랭이 아닌 ‘세계 사진 역사’에 이름이 남지 않은 수많은 이들이 지구별 곳곳에서 그야말로 ‘다큐사진 새길’을 씩씩하게 걸었다고 할 수 있어요.


  나는 어느 쪽을 옳거나 맞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진책을 읽을 때에는 사진책에 담긴 사진을 읽고, 사진에 서린 이야기를 읽을 뿐, 이 사진이 찍히도록 이끌거나 돕거나 애쓴 흐름은 그리 대수롭지 않다고 느껴요. 어느 밑바탕이 있으니 이러저러한 사진이 태어날 만하지만, 밑바탕을 캐자고 사진을 읽지는 않아요. 사진을 읽으려고 사진을 바라볼 뿐이에요. 이를테면, 우리 집 아이들이 올해(2012년)에 다섯 살·두 살인데, 이 아이들을 바라보며 예쁘거나 사랑스럽다고 느낀다면 그야말로 아이들 스스로 맑고 환하게 빛나는 숨결이 있어서 예쁘거나 사랑스럽습니다. 어버이인 내가 이 아이들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기저귀를 몇 장 빨래하고 밥을 얼마나 지어 먹이며 밤마다 자장노래를 얼마나 애틋하게 불러 주었느니 하는 ‘뒤치다꺼리’는 대수롭지 않아요. 아이들을 보살핀 어버이 손길은 따스하거나 넉넉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만, 아이들을 바라볼 때에는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바라볼 뿐이에요.


  사진책 《Photographs for the Farm Security Administration 1935-1938》(Da Capo press,1973)을 읽습니다. 사진책에 붙은 이름을 살피면 ‘사진들’은 사진들이로되, ‘농업안정국에서 1935년부터 1938년 사이에 찍은’ 사진이라고 합니다. 미국 시골 참모습을 밝힌다거나 가난한 시골사람 삶을 파헤친다거나 ‘새로운 다큐사진 이야기’를 선보인다거나 하는 느낌은 조금도 안 담습니다. 이 사진책을 펼치면, 워커 에반스(Walker Evans) 님이 어떠한 원판(어떤 크기 어떤 필름)으로 사진을 찍었느냐를 찬찬히 밝히고, ‘농업안정국에서 바라는 대로 찍은 사진’을 목록처럼 죽 실어 줍니다. 이러면서 ‘농업안정국에서 바라는 대로 찍은 사진 가운데 따로 추린 사진’을 앞자리에서 큼직하게 보여줍니다.


  사진책 앞자리에 실린 ‘추린 사진(Selected Photographs)’을 보면, 세계 사진 역사에 널리 알려진 작품이 파노라마처럼 죽 나옵니다. ‘추린 사진’을 지나 ‘목록 사진’을 보면, 워커 에반스 님이 어떤 흐름으로 ‘기록사진’을 찍었는가를 살필 수 있습니다. ‘목록 사진’은 바깥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할 사진인데, 이 ‘목록 사진’을 보면 워커 에반스 님이 ‘기록사진’만 찍지 않고 이녁 나름대로 ‘빛을 만지’거나 ‘사진틀을 새롭게 엮어’ 보려 한 자국이 드러납니다.

 

 

 

 

 


  미국 농업안정국은 사진예술을 뽐낸다든지 사진문화를 펼친다든지 하는 일을 맡지 않습니다. 1930년대 미국 시골마을 삶자락을 사진으로 담아(기록) 농업정책을 꾀하는 밑자료로 삼으려 했습니다. 농업안정국에서 워커 에반스 님을 비롯한 사진쟁이들한테 일삯을 얼마나 주고 필름값은 얼마나 치러 주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목록 사진’이 있는 모습을 보니, 아무래도 이 사진책에 실린 사진을 모두 농업안정국에 내놓았을 텐데, 농업안정국에서는 이 ‘목록 사진’을 받으면서 어느 한편으로는 썩 달갑지 않았겠다 싶기도 합니다. 워커 에반스 님은 ‘한 곳에서 이렇게도 찍고 저렇게도 찍’어요. 아이들 사진이나 한식구 사진에서도 ‘이런 모습으로도 찍고 저런 모습으로도 찍’어요.


  그러니까, 농업안정국 공무원이 바라보자면, 아무리 ‘사진을 찍어 밑자료로 삼는 기록으로 다루려고 사진 일감을 사진쟁이한테 맡겼다’ 하더라도, ‘한 자리에서 한 장’만 찍으면 되지, 왜 이런 얼굴 저런 모습까지 여러 장 찍느냐고 투덜거릴 수 있겠다 싶어요. 건물 하나를 찍어도 ‘이런 빛살 저런 빛느낌’을 달리 하면서 찍기도 했으니, ‘워커 에반스 이놈이 필름을 함부로 쓰지 않나’ 하고 골을 부릴 수 있구나 싶어요. 농업안정국은 사진쟁이한테 ‘사진을 찍어서 달라’고 했지 ‘예술사진을 찍’는다거나 ‘다큐사진을 찍’어 달라고는 하지 않았어요. 농업안정국은 미국 시골이 어떤 모습인가를 낱낱이 담는 사진을 바랐지, ‘다큐사진 새길을 연다 할 만’한 사진을 바라지 않았어요.

  이러거나 저러거나, 농업안정국은 여러 사진쟁이한테 사진을 맡기며 이곳에서 쓸 사진을 얻습니다. 투덜거리거나 골을 부릴 만하지만, 바라는 사진을 여러모로 얻습니다. 홀가분하게 사진을 찍을 수는 없고, ‘일감 맡긴 이가 바라는 사진’을 찍어야 하던 워커 에반스 님이었을 텐데, 농업안정국이 바라는 대로 사진을 찍으면서도, 워커 에반스 님은 당신 나름대로 당신 눈썰미와 눈길과 눈빛이 담기는 사진을 어떻게 나타낼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어요. 아니, 누가 어떤 사진 찍어 달라 바란다 하더라도, 사진기를 농업안정국 공무원 아닌 워커 에반스 님이 쥐었으면 아주 마땅히 ‘워커 에반스 사진’이 나오겠지요. 그리고, 농업안정국이 바라는 대로 미국 여러 시골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워커 에반스 님은 ‘수많은 사람들 다 다른 삶터’에 눈을 뜨고 ‘수많은 사람들 다 다른 삶자락’에 눈을 밝혔으리라 느껴요.


  사진이란 이러하다, 하고 말하지 못해요. 왜냐하면, 사진은 사진을 읽거나 찍는 사람마다 다 다른 삶이에요. ‘사랑이란 이러하다, 삶이란 이러하다, 꿈이란 이러하다.’ 같은 말도 이와 같아요. 함부로 어떻다 하고 말할 수 없어요. 다 다른 사람들마다 다 다른 사랑이요 삶이며 꿈이에요. 워커 에반스 님은 스스로 바랐든 누군가 시켰든, 숱한 사람을 마주하고 온갖 삶터를 돌면서 ‘사진 찍는 길’을 새롭게 헤아릴밖에 없습니다. 이제껏 다른 사진쟁이들 스스로 즐겁고 힘차게 보여주지 못하던 사진길을 살필밖에 없습니다.


  1930년대를 지나 2010년대를 맞이한 오늘날을 생각합니다. 오늘날에는 고향나라 골골샅샅 누비는 사진쟁이도 많고, 고향나라를 떠나 지구별 여러 나라를 누비는 사진쟁이도 많습니다. 꼭 ‘다큐사진’이라는 이름이 아니더라도 갖은 곳을 누빕니다. 광고사진이나 패션사진이라 하더라도 스튜디오에 짱박혀서 찍지는 않아요.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도 찍고 브라질 정글에서도 찍어요. ‘사진 찍는 길’은 한 갈래가 아니요 ‘사진 읽는 눈’ 또한 한 가지가 아니에요. 워커 에반스 님이 남다르게 ‘다큐사진 새길’을 열었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만, 워커 에반스 님은 오직 하나, ‘사진 찍는 길’과 ‘사진 읽는 눈’은 수없이 많구나 하는 이야기를 농업안정국한테서 일감을 받아 찍은 사진으로 찬찬히 보여주는구나 싶습니다.


  사진이야기를 여는 밑바탕은 바로 나한테 있습니다. 누가 일감을 맡긴대서 찍을 수 있는 사진이 아니에요. 논문이나 보고서로 내는 비평글이라 해서 사진읽기가 새롭게 태어나지 않아요. 스스로 삶을 새롭게 일굴 때에 사진찍기가 새롭게 거듭납니다. 스스로 삶을 새롭게 사랑할 적에 사진읽기가 새삼스레 빛납니다. (4345.10.22.다.ㅎㄲㅅㄱ)

 

(최종규 - 사진책 읽는 즐거움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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