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에서 도시락 먹는 책읽기

 


  혼자서 먼길 나들이를 다니거나 식구들 다 함께 먼길 마실을 갈 적 첫날에는 집에서 장만한 도시락을 먹는다. 그러나 첫날 낮을 지나고 저녁이 될 때부터는 온통 바깥에서 사다 먹어야 한다. 배가 고프니 밥을 찾아서 먹는다 할 텐데, 집에서 밥을 차려서 먹을 때처럼 풀을 먹기란 몹시 힘들다. 바깥에서 사다 먹는 밥에는 풀다운 풀이 적기도 하지만, 온통 기름과 양념으로 범벅이 된다. 풀맛이 아닌 기름맛과 양념맛인데다가 매우 맵고 달고 짜기까지 하다. 날풀을 먹고 싶은 마음을 채울 길이 없다.


  집에서 밥을 차려 먹을 때에는 아이들과 복닥이느라 이래저래 바쁘고 빠듯하게 먹이고 먹지만, 집밥을 먹으며 속이 거북하거나 더부룩한 적은 없다. 집 바깥으로 나와서 밥을 얻어 먹든 사다 먹든, 속이 느긋하거나 넉넉한 적이 없다.


  나는 ‘풀만 먹는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풀이 없는 밥차림은 어쩐지 반갑지 않다. 눈으로 밥차림을 바라볼 때부터 사랑스러운 숨결을 느끼지 못한다. 싱그러운 풀빛으로 빛나는 날풀을 젓가락으로 집거나 손가락으로 들어서 혓바닥에 올려놓으면, 풀포기가 그동안 깃들던 흙땅 내음과 흙기운을 씻은 냇물 내음을 느낀다. 이 풀포기 하나는 어느 시골에서 어느 햇살과 어느 바람을 받아들이며 무럭무럭 자라다가 나한테 찾아들어 한몸이 될까, 하고 생각하며 즐겁다.


  그렇지만, 집밥이든 바깥밥이든 나랑 한몸이 되는데, 바깥밥을 밉게 여기거나 싫다 여길 까닭이란 없다. 차려서 건네는 사람들 사랑을 느끼고, 마련해서 내미는 사람들 손길을 느끼면 되잖아. (4345.10.1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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