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는 초록 냄새 쪽빛문고 10
구도 나오코 지음, 고향옥 옮김, 초 신타 그림 / 청어람미디어 / 200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푸른 숨결로 빛나는 내 동무
 [어린이책 읽는 삶 22] 구도 나오코, 《친구는 초록 냄새》(청어람미디어,2008)

 


- 책이름 : 친구는 초록 냄새
- 글 : 구도 나오코
- 그림 : 초 신타
- 옮긴이 : 고향옥
- 펴낸곳 : 청어람미디어 (2008.12.15.)
- 책값 : 9800원

 


  깊은 밤입니다. 논배미 앞에 섭니다. 봄날 개구리는 사람이 앞에 서면 노랫소리를 똑 끊었는데, 여름날 개구리는 사람이 앞에 서니 노랫소리를 들려줍니다. 여름날 개구리는 겨울잠을 자고 깨어난 개구리가 낳은 알에서 태어난 새 목숨일까요. 온갖 개구리들이 저마다 다 다른 목소리로 노래를 들려줍니다. 이 개구리들은 그리 안 큰 몸뚱이일 텐데, 노랫소리가 참 우렁찹니다.


  논둑에 쪼그리고 앉습니다.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여기에 하나, 여기에 또 하나, 이쪽에 하나, 저쪽에 하나, 저기에 하나, 하면서 소리를 뽑는 개구리가 어디쯤 있나 헤아립니다. 수십이나 수백 마리가 터뜨리는 노래가 아니라, 예닐곱 마리쯤 터뜨리는 노래인데, 이렇게 예닐곱 마리가 서로 갈마들며 노래를 터뜨리니, 뒤쪽 다른 논에서도 하나둘 노래를 터뜨립니다.


  개구리 노랫소리는 그냥 개구리 노랫소리가 아닙니다. 나는 개구리들이 들려주는 노랫소리를 ‘개구리 노랫소리’라 뭉뚱그려 말하지만, 개구리마다 목소리가 매우 다릅니다. 같은 목소리인 개구리는 하나도 없습니다. 괙괙 노래하는 개구리가 있고, 개굴개굴 노래하는 개구리가 있으며, 배배 노래하는 개구리가 있어요. 배구배구 노래하는 개구리가 있고, 왜구왜구 노래하는 개구리가 있어요. 으으미으으미 하고 낮고 길게 뽑는 개구리가 있습니다. 두꺼비일까? 다른 녀석일까? 맹꽁이는 아닌 듯한데?


.. ‘바람 냄새가 좋군.’ 사자는 심호흡을 하고 멈춰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무와 바위 옆에 가면 머리를 문질러 보고 싶고, 보드라운 풀이 있으면 뒹굴어 보고 싶다 … ‘누군가와 함께 산책을 한다는 건, 참 좋은 거구나.’ 사자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달팽이를 이마에 태우니 혼자일 때보다 여기저기 볼 수 있어 더 즐겁다. “아, 여기에 꽃이 피어 있어.” 하고 사자가 꽃을 발견하면 달팽이가, “아, 여기에 연못이 있어.” 하고 연못을 발견해 준다 ..  (13, 20쪽)


  사람은 개구리를 바라보며 ‘개구리 노랫소리’라 말합니다. 거꾸로, 내가 개구리라 한다면, 개구리로서 사람을 바라볼 때에 ‘사람 노랫소리’ 또는 ‘사람 말소리’라 할 만할까요.


  한국사람으로서 일본사람이 말하는 모습을 바라보면 그저 뭉뚱그려 ‘일본사람 말소리’라 할는지 모릅니다. 내가 잘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이야기를 들려주면 ‘어느 외국사람 노랫소리’처럼 들을 수 있습니다.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삶을 다 다른 목소리로 다 다른 이야기를 엮어 들려주지만, 나로서는 다 다른 사람들 다 다른 말소리를 ‘다 똑같이 잘 못 알아듣는 노랫소리’처럼 여길 수 있어요.


  다시금 마음을 가다듬습니다. 개구리들은 나한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저마다 다 다른 목소리와 결과 무늬로 이렇게 이야기꽃을 피우는가 하고 생각에 잠깁니다. 개구리가 들려주는 고운 이야기를 내 마음으로 받아들여 내 넋을 다시금 곱고 맑게 다스리자고 생각합니다.


.. 달팽이가 ‘으음, 으음.’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러니까 수풀 속 이파리들 속에 파묻혀 있으면 온몸에 바람이 스며들어 와.” … “오늘은 유난히 목소리가 예뻐.” “틀림없이 좋은 노래가 될 거야.” 달팽이의 발성연습을 들으며 당나귀가 말했다 ..  (26, 65쪽)


  그야말로 사람이 물결을 이루는 곳에 있어도, 내 살붙이 모습은 놓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 왁자지껄한 한복판에 서도, 내 살붙이가 읊는 말마디를 한두 마디쯤 알아듣습니다.


  마음을 그러모으면 바라볼 수 있습니다. 마음을 그러모을 때에 들을 수 있습니다.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기에 바라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며, 느끼지 못하리라 봅니다. 곧, 마음이 있고, 생각이 있으며, 사랑이 있을 때에 내 몸이 움직이는구나 싶어요.


  나 스스로 좋은 넋이 되어야 합니다. 나부터 좋은 얼로 빛나야 합니다. 내가 시나브로 좋은 사람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나는 내 삶을 아끼는 하루를 누리면서 내 곁에서 나란히 맑게 웃거나 울 예쁜 동무를 사귀거든요.


  동무는 멀리 있지 않아요. 동무는 그저 나이가 같은 사람이 아니에요. 동무는 같은 학교를 다닌대서 사귀지 않아요. 동무는 서로서로 믿고 기대며 좋아할 수 있는 어여쁜 삶지기예요.


.. 사자가 종종종 뛰어간다. 저녁노을이 하도 예뻐 언덕에 올라가 해 지는 것을 보려는 것이다 … “오늘은 심심한 땅에 들렀다가 쓸쓸한 땅을 돌아보고, 그리고 기쁨의 땅에서 잠시 쉬어야지.” 달팽이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  (67, 93쪽)


  구도 나오코 님 이야기책 《친구는 초록 냄새》(청어람미디어,2008)를 읽습니다. 잔잔하게 울려퍼지는 이야기를 읽습니다. 참말, 내 좋은 동무는 누구라도 풀내음이 난다고 느낍니다. 그래요, 나는 말합니다. 내 동무는 풀내음, 이라고 말합니다. 나도 풀내음이요 내 동무도 풀내음입니다. 나부터 풀내음이고 내 살붙이도 풀내음입니다. 내가 즐겁게 풀내음이면서 우리 아이들도 풀내음이에요.


  풀내음, 풀빛, 풀꽃, 풀결, 풀삶, 풀맛이라 할 만합니다. 푸르고 푸릅니다. 푸르면서 푸릅니다.


.. 사자는 ‘기쁨에 찬 얼굴’ 그대로 당나귀와 놀기로 했다. 그리고, ‘근심에 찬 얼굴’은 혼자만 있을 때를 위해 아껴 두기로 했다 … “글쎄, 왠지 아주 먼 옛날부터 친구였던 것 같은 기분이 들어.” ..  (115, 202쪽)


  얼굴이 푸르고, 마음이 푸릅니다. 눈빛이 푸르고, 생각이 푸릅니다. 손길이 푸르고, 사랑이 푸릅니다.


  손에 책을 쥘 때면, 책도 손도 모두 푸릅니다. 손에 수저를 들 때면, 수저도 밥그릇도 손도 모두 푸릅니다. 손에 호미를 잡으면, 호미도 손도 흙땅도 푸릅니다.


  푸른 하루입니다. 푸른 나날입니다. 푸른 목소리입니다. 푸른 누리입니다. 푸른 꿈결입니다. 푸른 목숨이요, 푸른 이야기이며, 푸른 살림입니다.


  아이들은 모두 천천히 자라면서 푸름이로 멋진 나날을 맞이하고, 푸른 나날 예쁘게 보내는 고운 넋은 이 땅을 푸르게 보살피는 착한 사랑을 푸른 숨결로 북돋웁니다. (4345.7.13.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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