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없는 글쓰기 (익명 글쓰기)

 


  국어사전에서 ‘익명(匿名)’이라는 낱말을 찾아본다. “이름을 숨김”을 뜻한다 한다. 문득 생각한다. 한자말로 ‘익명’이라 적는 일이 나쁘다 느끼지 않으나, 새로운 한국말로 ‘이름숨김’이나 ‘숨긴이름’처럼 빚을 수 있으리라고. 또는 ‘이름감춤’이나 ‘감춘이름’처럼 새 낱말 빚을 수 있겠지.


  한국사람은 한국말을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말을 예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한글’이라 하는 좋은 그릇이 있다 하더라도 이 그릇에 담을 어여쁜 낱말을 빚지 못한다. 한글이라는 그릇에 담기는 낱말이란 으레 한자말이거나 영어가 되기 일쑤이다. 요사이는 아예 한자로 적거나 알파벳으로 적을 뿐 아니라 히라가나나 가타가나로까지 적기도 한다.


  쉽게 헤아려 보고 싶다. ‘익명’이라 하는 한 번 감춘 낱말이 아닌, 말뜻 그대로 생각을 나타내는 ‘이름을 숨긴’이나 ‘이름을 감춘’이라는 쉽고 또렷한 한국말로 곰곰이 헤아려 보고 싶다.


  사람들은 제 이름을 숨기거나 감춘 채 글을 쓰기도 한다. 지난날에는 문학을 하는 이들이 제 이름을 숨기거나 감추었다. 스스로 알쏭달쏭하게 보이려 하는 뜻이 있었을는지 모르나, 이름을 숨기거나 감추면, 글쓴이가 ‘몇 살이요, 남자냐 여자냐, 학교는 어디를 얼마나 다녔나, 어느 마을에 사는가, 한국사람인가 외국사람인가, 재일조선인인가 연길사람인가, 어린이인가 푸름이인가, 밥벌이로 삼는 일거리는 무엇인가’ 같은 모든 그림자가 사라진다. 문학을 읽을 사람은 이 모든 껍데기나 허울을 생각하지 않고 글만 읽는다. 곧, 문학을 문학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바라며 제 이름을 숨기거나 감추며 문학을 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누군가는 이름을 숨기며 인터넷에 글을 쓸 때에 남을 해코지하거나 괴롭히거나 따돌리거나 들볶는다. 모진 말이나 거친 말을 일삼기도 한다.


  왜 남을 해코지해야 하나. 왜 모진 말을 일삼아야 하나.


  이름을 숨긴 채 글을 써도 된다. 이름을 밝히며 글을 써도 된다. 어떻게 하든 내 글이다. 이름을 숨겨서 다른 사람이 ‘누가 썼는가’ 알아보지 못한대서 내 글 아닌 다른 사람 글이 될까. 내 글 아닌 다른 사람 글처럼 보일까.


  어느 인터넷 어느 게시판에 이름을 숨겨도 누구나 얼마든지 글을 쓸 수 있다는 소리란, 모든 마음을 활짝 열고 즐겁게 생각을 나누자는 이야기라고 느낀다. ‘익명’이라는 그늘에 스스로 갇히면서 슬프며 억지스러운 논리라는 틀에 사로잡히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름을 숨기며 글을 쓸 적에는 사람들 참모습이 드러나지 않는다. 사람들 뒷모습이 드러난다. 이뿐 아니다. 뭇사람 앞에서 제 이름을 숨긴 채 뭇칼질 같은 글을 함부로 쓰는 일이란, 누군가를 비아냥거리거나 헐뜯거나 깎아내리는 일이 아니다. 바로 ‘이름 숨긴 채 글을 쓰는 나’를 비아냥거리거나 헐뜯거나 깎아내리는 일이 된다.


  예부터 ‘때린 사람은 잠 못 이룬다’고 했다. 왜냐하면, 때린 사람은 ‘때린 느낌’이 몸과 마음에 아로새겨지기 때문이다. 때린 느낌이 때린 사람한테서 지워질 수 없다. 이름을 숨긴 채 뭇칼질 하듯 글을 쓰면, 이 글은 ‘이름 숨긴 채 글을 쓰는 내’ 몸과 마음에 깊이 새겨진다. 지워지지 않는다. 곧, 이름을 숨기든 이름을 드러내든, 나 스스로 쓰는 모든 글은 내 몸과 마음에 아로새겨지면서 ‘내 생각’과 ‘내 삶’이 된다.


  입에 발린 고운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이는 참말 ‘입에 발린 고운 듯 보이는 삶’에서 허덕인다. 속알맹이까지 알차도록 어여삐 말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이는 참말 ‘속알맹이까지 알차도록 어여삐 삶’을 일군다. 막말을 일삼는 사람이라면, 막삶을 보내고 만다. 거친 말이란 거친 삶이다.


  사랑을 꽃피우는 삶을 바란다면, 내 이름을 숨기거나 드러내거나 내 사랑을 흐드러지게 꽃피우도록 글을 쓸 노릇이다. 이 땅에 평화와 평등과 자유와 민주가 자리잡기를 바란다면, 나부터 스스로 언제나 평화로운 넋과 평등한 꿈과 자유로운 사랑과 민주다운 얼을 빛내는 글을 쓸 일이다.


  평화롭지 않은 말이라면 평화롭지 않은 넋이며 평화롭지 못한 삶이다. 자유롭지 못한 글이라면 자유롭지 않은 마음이며 자유롭지 못한 삶이다.


  이름을 숨기며 쓰는 글은 ‘딴 사람이 안 본다’고 여기며 용두질을 하는 모습과 같다. 딴 사람이 보든 안 보든, 풀숲이나 길바닥에 쓰레기가 떨어졌으면 아무렇지 않게 주워 치우거나 쓰레기통으로 옮길 노릇이다. 누가 ‘당신은 참 착한 일을 했소’ 하는 말을 하건 말건 아랑곳하지 말고, 나 스스로 마땅히 할 몫을 하면 된다. 스스로 착하게 살고 스스로 참답게 생각하며 스스로 아름답게 꿈꾸면 된다.


  이름은 한낱 허울이기만 하지 않다. 이름은 사람 몸뚱이처럼 대수롭다. 다만, 이름과 몸뚱이가 아무리 대수롭다 하더라도 알맹이와 마음에 앞설 수 없다. 이름으로 누리는 삶이 아니라 알맹이로 누리는 삶이요, 겉치레로 꾸미는 삶이 아니라 온마음 기쁘게 누리는 삶일 테니까.


  이름을 사람들 앞에서 숨긴들, 누구보다 나 스스로 내 글을 바라본다. 다른 사람들이 모른다 하지만 나는 내 글을 안다. 나는 내 글을 알기 때문에, 내가 하는 모든 짓을 고스란히 바라본다. 내가 내 짓이 미운 줄 느끼며 바라본다면 나는 나 스스로를 갉아먹거나 깎아내리는 꼴이다. 한자말로 일컫자면, ‘자위’란 ‘자해’일 뿐이다. ‘자위’하듯 ‘익명’으로 글을 쓰는 일은 스스로를 ‘자해’하는 글이 될 뿐이다. 스스로를 사랑하며 글을 쓰면, 언제나 스스로를 사랑하는 삶이 된다. 스스로를 사랑하며 글을 쓰면, 이름을 숨기건 밝히건 늘 내 마음 따사롭게 돌보며 어여삐 빛난다고 느낀다. (4345.4.25.물.ㅎㄲㅅㄱ)

 

 

***

 

알라딘서재 논쟁에서 더없이 부질없구나 싶은 '익명 글'로 스스로 갉아먹으려는 분이 곧잘 보여, 이 같은 글을 한 자락 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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