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금붕어 난 책읽기가 좋아
스테파니 블레이크 지음, 심지원 옮김 / 비룡소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시험공부 때문에 망가지는 어린이
 [어린이책 읽는 삶 19] 스테파니 블레이크, 《빨간 금붕어》(비룡소,2008)

 


- 책이름 : 빨간 금붕어
- 글 : 스테파니 블레이크
- 옮긴이 : 심지원
- 펴낸곳 : 비룡소 (2008.1.18.)
- 책값 : 6500원

 


  초·중·고등학교 열두 해를 다니는 동안 시험을 참 많이 치렀습니다. 학교는 무엇인가 배우러 다니는 곳이라 하지만, 그때나 이때나 가만히 돌아보면, 학교는 시험을 치르는 곳이 아니랴 싶습니다. 늘 시험을 치르고, 언제나 시험문제를 외도록 내모는 곳이라고 느껴요.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배우는 즐거움’이나 ‘배운 무언가를 나누는 기쁨’을 맛볼 겨를이 없어요. 어쩌면, 처음부터 이러한 이야기하고는 동떨어진 데가 학교라 할 수 있어요. 배움도 가르침도 나눔도 없이, 시험문제와 성적표만 남는 데가 학교인지 몰라요.


.. 나는 알리스와 함께 교실에 들어갔어요. 곧 수학 시험이 시작되었지요. 아는 문제가 하나도 없었어요. 옆을 슬쩍 보았더니 알리스는 거의 다 푼 거 있죠. 난 하나도 풀지 못했는데 말이에요. 나는 알리스의 시험지를 베끼려고 했어요. 그러자 알리스가 신경질을 내더니 큰 소리로 외쳤어요. “선생님! 잔이 내 걸 훔쳐봐요.” ..  (8∼9쪽)


  학교가 학교다움을 잃은 모습이 ‘한국땅다운 학교 모습’으로 뿌리내렸다고 느낍니다. 초·중·고등학교 모두 대학교만 바라보도록 이끌어요. 대학교를 바라보는 눈길은 내 꿈이나 뜻이나 사랑이 아닌 성적표 한 가지입니다. 막상 대학교에 들어간 뒤에도 꿈이나 뜻이나 사랑은 아랑곳없이 학점과 자격증과 이력서만 살피고 맙니다. 학문도 자유도 생각과 사랑도 없는 톱니바퀴입니다.


  왜 학교에서는 삶을 가르치지 않을까요. 왜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서로 어울려 즐거이 놀도록 놓아주지 않을까요.


  학교를 세우는 까닭은 모든 아이들 머리속에 틀에 박힌 지식조각을 집어넣어야 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학교를 보내는 까닭은 모든 아이들이 대학생이 되도록 미리 담금질을 해야 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학교에서 외우는 교과서로 아이들 모두 똑같은 넋 똑같은 몸짓 똑같은 차림새로 닦달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동무를 만나고 언니 오빠 동생 누나 형하고 어울리려고 학교에 갑니다. 저마다 다른 보금자리에서, 저마다 다른 마을에서, 저마다 다른 어버이한테서, 그동안 차근차근 받으며 북돋운 꿈과 뜻과 사랑을 다 함께 예쁘게 나눌 뜻으로 한 자리로 모입니다.


  이야기가 있을 때에 학교입니다. 회초리가 있거나 출석부가 있거나 교과서가 있으면 학교가 아닙니다. 마음이 있을 때에 학교입니다. 시험지가 있거나 성적표가 있거나 행동발달사항을 따질 때에는 학교가 아닙니다. 흙이 있고 나무가 있으며 풀이 자랄 때에 학교입니다. 시멘트 건물에다가 플라스틱 잔디를 운동장에 깔고는 주차장이 자동차로 득시글거린다면 학교가 아닙니다.


  아이들과 어른들이 삶을 함께 나눌 때에 비로소 학교입니다. 아이들이 서로서로 생각을 주고받을 때에 바야흐로 학교입니다. 어른들이 아이들보다 여러 해 먼저 더 살아온 나날을 슬기로이 빛내며 좋은 꿈을 들려줄 때에 시나브로 학교입니다.

 


.. 수학은 아무래도 모르겠는데 어쩌라고요 … “수학을 빵점 맞았어요. 아무것도 모르겠단 말이에요. 이제 학교에도 가기 싫어요!” “잔, 들어 보렴. 그건 그리 큰 문제가 아니야. 넌 국어랑 체육, 음악, 미술을 아주 잘하잖니.” ..  (10, 13쪽)


  학교에서 시험을 치르던 일은 언제나 괴롭게 떠오릅니다. 수도 없이 치른 시험 가운데 즐거웠던 일은 한 차례조차 없습니다. 시험공부도 괴로울 뿐이요, 시험을 치르고 나서 온 학교가 몽둥이찜질 소리로 가득 퍼질 때에도 괴로울 뿐입니다. 가을이면 시골집마다 콩 터는 소리 가득하다지만, 시험을 치르고 나면 교실마다 교사란 이름을 단 어른들이 학생이란 꼬리표 붙은 아이들을 흠씬 두들겨패며 엉덩이 살점 떨어지도록 털어대는 소리만 맴돌았어요. 나로서는 이런 끔찍한 감옥살이를 학교라 느낄 수 없어요.


  문득 생각합니다. 왜 옆 짝꿍한테 답을 알려주면 안 될까요. 왜 나는 옆 짝꿍한테서 답을 들으면 안 될까요. 서로서로 잘 모르니, 서로서로 머리를 맞대어 문제 하나 풀 수 없는가요. 여럿이 모둠을 지어 어려운 길을 헤쳐 나가도록 할 수 없을까요. 조금 더 잘 하는 아이는 조금 더 못 하는 아이를 돕습니다. 조금 더 똑똑한 아이는 똑똑한 머리를 씁니다.


  몸이 재거나 튼튼한 아이만 운동장에서 공을 차거나 던지며 놀아야 하지 않아요. 몸이 굼뜨거나 여린 아이도 함께 섞이고 얼크러지면서 즐거이 공놀이를 할 수 있어야 해요. 서로 돕고 서로 마음을 기울이며 웃음꽃이 피고 땀열매를 맺을 때에 ‘체육’이고 ‘교육’이며 ‘학교’예요.

 


.. 안느 아줌마는 예순 살이에요. 아줌마는 화가이기 때문에 자기 집에서 일해요. 아줌마는 여러 가지 색깔이 들어간 아주 크고 화려한 그림을 그려요. 나는 아줌마가 쓰는 색깔들을 무지무지 좋아하지요. 그 색깔들을 보고 있으면 빨래 집으로 돌아가 그림을 그리고 싶어져요. 안느 아줌마는 늘 즐거워 보여요. 자기 일을 정말로 사랑하는 것 같아요 ..  (18쪽)


  이 사회가 온통 돈 이야기로만 흐르는 까닭이 어디 한 가지 때문이겠습니까만, 아이들이 어린이집 다닐 때부터 과외니 영어니 뭐니 뭐니 하면서 지식조각만 머리에 집어넣다가는 초등학교 들어서기 무섭게 입시지옥 굴레에 가두니까,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돈 아니고는 헤아리지 않으리라 느껴요.


  이 사회가 몸이 아프거나 힘든 이웃을 살피지 못하는 밑뿌리도, 이 사회가 서로서로 예쁘게 얼크러지는 길로 나아가지 않는 밑바탕도, 이 사회가 오직 도시를 키우고 불리며 먹여살리는 흐름에서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 밑모습 또한, 하나같이 학교 때문이라고 느껴요. 시험만 치르는 학교, 성적표만 만드는 학교, 아이들 머리통만 커다랗게 부풀리는 학교, 이런 학교가 아이들을 망가뜨리고 삶터를 망가뜨리는구나 싶어요.

 


.. 오늘은 아빠가 쉬는 날이에요. 아빠는 하루 종일 나와 함께 있었어요. 아빠는 내가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방바닥에 커다란 천을 깔아 주었지요. 나는 온종일 그림을 그렸어요. 학교나 뱅상, 알리스에 대해서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죠 ..  (27쪽)


  스테파니 블레이크 님이 빚은 조그마한 이야기책 《빨간 금붕어》(비룡소,2008)를 읽습니다. 시험공부 때문에 망가지는 어린이 이야기를 읽습니다. 이 슬픈 어린이 곁에는 지난날 똑같이 시험공부 때문에 망가질 뻔하다가 씩씩하게 살아난 ‘예순 살 그림쟁이 할머니’가 있습니다. 예순 살까지 살아오며 즐거이 그림을 빚는 할머니는 고작 열 살쯤 되었을까 싶을 어린 벗한테 슬기로운 꿈을 곱게 들려줍니다. 열 살쯤 되었을까 싶을 어린이는 예순 살 그림쟁이 할머니를 좋은 벗으로 삼아 ‘삶넋’을 맞아들입니다.


  학교에서는 한 마디조차 듣지 못하던 삶넋입니다. 동무 가운데 어느 누구도 이 아이한테 속삭이지 않던 삶넋이에요. 교사도 교장선생도 어느 누구도 이 가녀린 어린이한테 예쁜 꿈이나 멋진 뜻이나 좋은 사랑을 나누지 않았어요. 학교에서는 어른이나 어린이나 몽땅 삶넋하고는 동떨어지고 말았어요.


  《빨간 금붕어》에 나오는 어린이는 학교 따위 금세 때려치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어린이는 학교를 굳이 때려치우지 않습니다. 같은 학교를 다니는 동무 가운데 하나를 좋아하거든요. 이 어린이는 아프고 슬픈 마음을 스스로 달래고 북돋웁니다. 예순 살 할머니를 동무로 삼으며 삶넋을 찬찬히 받아들이면서 제 꿈을 살찌우고 사랑을 꽃피웁니다. 이리하여, 바보스러운 학교 바보스러운 교사 바보스러운 학급동무를 차근차근 바꾸어 내요. 살가운 손짓 하나로 바꿉니다. 따스한 눈짓 하나로 바꿉니다. 포근한 몸짓 하나로 바꿉니다.


  살아가는 밑힘은 사랑입니다. 살아가는 밑넋은 꿈입니다. 살아가는 밑앎은 슬기입니다. 이제라도 학교가 학교다움을 찾으려 한다면, 바로 사랑·꿈·슬기가 무엇인가를 헤아리면서 곱게 아낄 수 있어야 합니다. (4345.3.13.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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