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가와 놀기 - 환상을 담는 토이 카메라
현정민 지음, 한인규 사진 / 시공아트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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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진놀이 즐기는 삶이란
 [찾아 읽는 사진책 81] 현정민·한인규, 《홀가와 놀기》(시공아트,2009)

 


  ‘홀가’라 하는 사진기가 있습니다. 영어로 ‘토이카메라’ 갈래에 든다는 사진기입니다. 꼭 ‘장난감’이라 여길 수 있을 테지만, 이 사진기는 가벼운 장난감이 아닙니다. 놀이하듯 가벼이 즐길 수 있는 사진기입니다. 그래서 ‘토이카메라’를 한국말로 옮긴다면 ‘놀이하는 사진기’, 곧 ‘놀이사진기’로 적으면 알맞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른바 ‘사진놀이’에 꽤 잘 어울리는 사진기라 할 만합니다.


  나는 ‘놀이사진기’를 따로 쓰지 않습니다. 나는 일부러 빛샘을 즐기지 않거든요. 나는 일부러 사진 테두리가 까맣거나 뿌옇게 나오도록 하지 않아요. 나도 ‘사진놀이’를 즐기는 사람이요, 집에서 아이들을 사진으로 담을 때에 즐겁게 담습니다만, 애써 ‘꿈 같아 보이는 모습’을 만들 마음은 없습니다. 내 아이들을 바라보면 언제나 꿈과 같고, 늘 사랑스럽기 때문에, 여느 사진기로 이 꿈 같으며 사랑스러운 모습을 꾸밈없이 담습니다.


  현정민, 한인규 두 분이 함께 글을 쓰고 사진을 담은 《홀가와 놀기》(시공아트,2009)를 읽다가 생각합니다. 두 분은 “아주 기본적인 장치로만 이루어진 저렴한 카메라 홀가 덕분에 일반인들도 중형사진에 좀더 쉽게 다가설 수 있었다(11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값이 얼마나 싸기에 이렇게 말하는가 궁금하지만, 이래저래 값이 싸기에 이렇게 말하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사진놀이는 값싼 사진기로만 즐기지는 않아요. 대형사진기로도 사진놀이를 즐기면 됩니다. 디지털사진기로도, 1회용사진기로도, 똑딱이디지털사진기로도, 값싼 필름사진기로도 얼마든지 사진놀이를 즐기면 돼요. 값싼 사진기를 쓴대서 더 사진놀이를 마음껏 누리지 않습니다. 사진을 하는 마음이 홀가분할 때에 비로소 사진놀이를 신나게 누립니다. 사진기를 쥔 손이 홀가분하고, 사진기로 들여다보는 온누리를 맑게 헤아릴 때에 바야흐로 사진놀이가 빛납니다.

 

 


  그나저나, 《홀가와 놀기》라 한다면, 이 사진책에 담은 ‘사진기 홀가 모습’부터 ‘홀가 사진기로 찍어서 보여주’면 한결 그럴듯하리라 생각합니다. 곰곰이 보건대, ‘사진기 홀가’는 ‘다른 사진기’로 찍어서 보여주는구나 싶어요. 아무래도 ‘사진기나 필름이나 부품을 또렷하게 보여주’는 데에서는 홀가로는 제대로 보여주기 힘들기 때문이라 할 텐데, 참말 “홀가와 놀기”를 이야기하는 책이 된다면, 이런 대목부터 “홀가와 놀기”를 마음껏 선보일 때에 더 재미나리라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파노라마사진기를 이야기하는 사진책은 아예 모든 사진을 파노라마사진기로 찍는 셈입니다.


  “일반 카메라에서 빛샘 흔적이 보인다면 카메라를 수리해야겠지만 홀가는 이러한 단점조차 개성으로 인정하기 때문에 더욱 다양한 사진을 연출할 수 있다(14쪽).”고 합니다. 너무 마땅해서 달리 할 말이 없습니다만, 홀가뿐 아니라 어떠한 사진기라도 ‘좋고 아쉬운’ 대목이 있습니다. 모든 대목이 그저 좋기만 한 사진기는 한 가지도 없습니다. 질감이나 빛느낌이 대단히 좋다지만, 장비가 너무 무겁다든지, 사진 한 장 찍기까지 품이나 손이 많이 간다든지 하잖아요. 가볍게 들고 다니며 잽싸게 찍을 수 있다지만 질감은 좀 떨어진다든지 하고요.


  사진을 찍는 사람한테는 사진기가 대수롭지 않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한테는 연필이 대수롭지 않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한테는 붓이 대수롭지 않습니다.

 

 


  연필이든 볼펜이든, 하얀 종이가 되든 앞쪽은 광고종이요 뒤쪽은 빈종이가 되든, 책 귀퉁이가 되든 껌종이가 되든, 글을 쓰는 사람은 어디에라도 글을 씁니다. 글을 쓰려는 사람 넋을 온통 불사르며 글을 씁니다.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든 파스텔로 그림을 그리든 다 좋습니다. 1b이든 2b이든 3b이든 hb이든 대수로울 까닭이 없어요. 아무 연필이든 손에 쥘 수 있으면 돼요. 《플란다스의 개》에 나오는 네로라는 아이는 물감이 없어 숯이나 목탄으로만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누구보다 빛나는 이야기를 담았다고 해요.


  홀가이든 펜탁스이든 미놀타이든 캐논이든 롤라이이든 하나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로모면 어떻고 후지6×17이면 어떻습니까. 내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내가 사랑하는 이야기를 실으며, 내가 생각하는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사진기라면 어떠한 사진기라도 좋습니다. 내 꿈을 담는 사진이고, 내 빛을 선보이는 사진입니다. 내 길을 걷는 사진이고, 내 뜻을 나누는 사진이에요.

 


  《홀가와 놀기》를 내놓은 두 분은 “언제부터인가 내 사진 촬영에서 노력의 흔적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마음에 드는 컷은 취하고 아니다 싶으면 바로 지워 버리는 일들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 쉽게 찍힌 사진이 아무 거리낌없이 버려지는 것을 자주 보는 나에게는 잘 나온 사진이든 그렇지 못한 사진이든 내 기억을 대신해 줄 훌륭한 저장소가 필요했다(79쪽).” 하고 말합니다. 적잖은 이들이 이러한 갈림길에 빠진다고 하는데, 참 딱하며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어쩌는 수 없어요. 삶이 재미없을 때에는 사진 또한 재미없습니다. 삶이 사랑스럽지 않을 때에는 사진이라고 사랑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해요.


  “내 사진을 더 땀흘려 잘 빚지 못한다”고 느낀다면, “내 삶부터 얼마나 땀흘려 슬기로이 빚는가” 하고 돌아보아야 합니다. 삶을 추슬러야 합니다. 삶을 다스리는 꿈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헤아려야 합니다.


  사진기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사진기 아닌 두 손과 두 다리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맨눈으로 온누리를 살피고, 맨몸으로 이웃과 동무를 사귀어야 합니다. 맨마음으로 집일과 바깥일을 알뜰히 보살펴야 합니다. 삶을 먼저 사랑할 수 있는 몸가짐을 되찾고서 다시 사진기를 손에 쥐어야 합니다.


  “홀가처럼 정사각형 필름 안을 채우는 경우는 기존과는 다른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봐야 한다(99쪽).”는 말마디로는 모자랍니다. 어떤 사진기이든 사진기마다 ‘사람과 사물을 바라보는 틀’이 다릅니다. 같은 회사에서 나온 사진기라 하더라도 제품에 따라 ‘사람과 사물을 바라보는 틀’이 바뀝니다.

 

 


  무딘 칼로 도마질을 할 때랑 날카로운 칼로 도마질을 할 때에는 손놀림이 바뀝니다.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을 만질 때에는 손길이 달라집니다. 여느 옷가지를 빨래할 때하고 똥기저귀를 빨래할 때에는 사뭇 다릅니다.


  먼저 내 마음을 가다듬은 뒤 사진기를 손에 쥘 우리들입니다. 홀가를 쥐어 놀든, 다른 사진기를 쥐어 놀든, 나 스스로 어떤 꿈을 꾸면서 어떤 길을 걷는 어떤 삶을 사랑하려 하느냐 하는 대목을 환하게 깨달은 다음 사진기를 쥐어야지 싶습니다. 꿈과 길과 삶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나날이면서 사진기만 먼저 달랑 손에 쥔다면, 어떠한 사진기를 손에 쥐더라도 아무 사랑이 깃들지 못하는 맨숭맨숭한 복제품만 잔뜩 쏟아질 뿐이에요.


  슬픔을 담는 사진인지 기쁨을 담는 사진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삶을 사랑하는 사진인지 삶이 고단한 사진인지 살펴야 합니다. 좋아하는 이야기를 싣는 사진인지 가슴 저린 이야기를 싣는 사진인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남한테 보여주려 하는 사진인지, 나 스스로 가슴이 벅차오르는 사진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그나저나, 사진책 《홀가와 놀기》는 똑같은 사진을 되풀이해서 쓰는군요. 작은 사진책에 같은 사진을 되풀이해서 쓰는 일은 썩 보기 좋지 않습니다. 다 다른 이야기를 선보이는 더 많은 사진을 실을 때에 한결 나으리라 생각합니다. 또한, 《홀가와 놀기》라는 이름을 붙이지만, 정작 ‘얼마나 신나게 노느냐’ 하는 이야기는 책 끝자락에 몇 쪽 없습니다. 이 책은 ‘중형필름 쓰는 사진기 다루기’하고 ‘찍은 사진을 스캐너로 긁어 파일로 다루기’를 이야기하느라 너무 긴 자리를 써 버립니다. ‘홀가 입문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책을 엮었는지 모르나, ‘기계 다루기’는 ¼쯤으로 간추리고, 나머지는 온통 ‘홀가랑 아기자기하고 멋스러이 논 이야기’를 담았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4345.3.9.쇠.ㅎㄲㅅㄱ)


― 홀가와 놀기 (현정민·한인규 글·사진,시공아트 펴냄,2009.9.21./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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