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 간 사자 웅진 세계그림책 107
미셸 누드슨 지음, 홍연미 옮김, 케빈 호크스 그림 / 웅진주니어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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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어떤 책을 어디에서 읽나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32] 케빈 호크스·미셸 누드슨, 《도서관에 간 사자》(웅진주니어,2007)

 


 책은 알맹이를 읽습니다. 껍데기를 읽지 않습니다. 책을 읽는 사람은 회사원일 수 있고, 흙일꾼일 수 있으며, 대통령일 수 있습니다. 책을 읽는 사람은 깡똥치마를 입을 수 있고, 구멍나고 헐렁한 바지를 입을 수 있으며, 알몸일 수 있습니다. 책을 읽는 사람은 선 채 읽을 수 있고, 누워서 읽을 수 있으며, 앉아서 읽을 수 있습니다.

 

 한국사람이 책을 읽습니다. 일본사람이 책을 읽습니다. 버마사람이 책을 읽습니다. 이주노동자가 책을 읽습니다. 원어민강사가 책을 읽습니다. 실업자가 책을 읽습니다.

 

 양복을 빼입은 사람이 책을 읽습니다. 한 달쯤 빨래하지 않은 옷을 걸친 사람이 책을 읽습니다. 학교옷 입은 고등학생이 책을 읽습니다.

 

 책은 누구한테나 열립니다. 이 사람한테는 열리고, 다른 사람한테는 안 열리는 책이란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도 가멸찬 사람도 똑같은 책값을 치러 책 한 권 장만합니다. 가난한 사람도 가멸찬 사람도 똑같은 책을 똑같은 도서관에서 빌려 읽습니다.


.. 어느 날, 도서관에 사자가 왔어요. 사자는 곧바로 대출 창구를 지나 자료실로 들어갔어요 ..  (5쪽)

 


 책은 줄거리를 읽습니다. 눈으로 글자를 좇으며 읽든, 귀로 소리를 들으며 읽든, 누구나 책은 줄거리를 읽습니다. 줄거리를 읽는 책이기 때문에, 책을 손에 쥔 사람마다 다 달리 받아들입니다. 저마다 살아온 나날에 비추어 줄거리를 헤아립니다. 저마다 쓸모와 찾을모가 다른 만큼, 같은 책 같은 줄거리라 하더라도, 이 줄거리를 가슴으로 삭이는 느낌과 맛이 다릅니다.

 

 아마, 누군가는 독후감이나 보고서 숙제 때문에 읽겠지요. 아마, 누군가는 삶을 밝히는 눈을 북돋우려고 읽겠지요. 아마, 누군가는 자격증을 따거나 수험 공부 때문에 읽겠지요. 아마, 누군가는 그저 즐거워서 읽겠지요. 아마, 누군가는 지식을 한껏 쌓으려고 읽겠지요. 아마, 누군가는 사회와 정치와 경제와 문화를 파헤치려고 읽겠지요. 아마, 누군가는 이름난 사람이 썼기에 읽겠지요. 아마, 누군가는 바보가 되지 않으려고 읽겠지요. 아마, 누군가는 마음에 환히 켜지는 등불을 깨닫기에 읽겠지요.

 

 책방에 서서 책을 읽습니다. 커다란 새책방 한쪽에 서서 책을 읽으면 티가 나지 않습니다. 작은 헌책방 한쪽에 쭈그려앉아 책을 읽어도 티가 나지 않습니다. 새책방에서는 새로 나온 책을 읽으나, 오래도록 안 팔린 채 꽂히기만 한 책을 읽습니다. 헌책방에서는 예전에 판이 끊어진 책을 찾아 훑기도 하지만, 나온 지 얼마 안 되었으나 누군가 즐거이 사서 읽다가 내놓은 책을 읽기도 합니다.


.. 아무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랐어요. 도서관 규칙에 사자에 대한 것은 없었으니까요 ..  (9쪽)

 


 꼭 책을 읽어야 한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하루하루 아이들과 복닥이면서 돌아보면, 책을 손에 쥘 겨를조차 없기 일쑤인데, 아이들 눈빛이 좋은 책이고, 아이들 손짓 발짓이 멋진 책이며, 아이들 목소리가 해맑은 책이곤 합니다. 이 땅뿐 아니라 온누리 수많은 어머니들은 아이를 낳고 돌보고 먹이고 재우고 보살피면서 둘도 셋도 없이 어여쁜 ‘아이책’을 읽으리라 생각합니다. 시골자락 논밭을 일구는 흙일꾼은 호미와 낫과 쟁기를 부려 손발과 얼굴 모두 흙빛으로 바뀌는 나날을 보내며 ‘흙책’과 ‘풀책’과 ‘하늘책’을 읽으리라 생각합니다. 바다로 배를 몰고 나가서 고기를 낚는 바다일꾼은 ‘물고기책’과 ‘바다책’을 읽으리라 생각해요.

 

 종이에 글로 담는 책이란, 이 땅 숱한 이야기 가운데 아주 조그마한 점 하나라고 느낍니다. 많디많은 이야기 가운데 몇 가지 간추려 종이에 글로 담는다고 느낍니다. 나무를 베어 종이를 만듭니다. 종이로 바뀌는 나무는 나무로 숲에서 살아가는 동안 저마다 다른 숲삶을 알알이 아로새깁니다. 책장을 넘겨 종이 내음을 맡을 때에는 잉크 내음이나 화학처리 내음이 난달지 모르지만, 이 화학약품 냄새 밑바닥에는 흙에 뿌리내리고 햇살을 받아먹으며 잎사귀 푸르게 늘어뜨리던 우람한 나무에 아로새긴 기나긴 나날 이야기에 서린 냄새가 깔려요.

 

 시골 숲에서 책을 읽으면 시골 숲바람을 맞으며 책 알맹이를 받아먹습니다. 도시 지하철에서 책을 읽으면 깜깜한 땅밑 시끄러운 쇠바퀴 소리에 흔들리면서 책 알맹이를 받아먹습니다. 아이들 재우고 나서 모로 누워 책장을 넘기면 새근새근 숨소리 들으며 책 줄거리를 헤아립니다. 시외버스에 앉아 책장을 넘기면 멀미 나며 어지러운 머리로 책 줄거리를 헤아립니다.


.. 사실, 사자는 도서관에 딱 어울리는 것 같았어요. 사자는 커다란 발로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도서관을 걸어 다닐 수 있었어요. 이야기 시간에는 아이들이 편하게 기댈 수 있는 등받이가 되어 주었지요. 게다가 이제 도서관에서는 절대 으르렁거리지 않았어요 ..  (18쪽)

 

 


 케빈 호크스 님이 그림을 그리고 미셸 누드슨 님이 글을 쓴 그림책 《도서관에 간 사자》(웅진주니어,2007)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도서관에 간 사자》에 나오는 ‘사서 맥비 씨’는 처음부터 끝까지 규정·규칙·법규를 따집니다. 언제나 무슨무슨 규정을 찾고, 노상 어떤저떤 규칙을 헤아립니다.

 

 관리직이라는 자리라면 어쩔 수 없을까요. 공무원이라는 자리라면 어찌할 길이 없을까요.

 

 도서관에는 사자라고 못 들어가란 법 없습니다. 이주노동자라고 도서관에 가지 말란 법 없습니다. 열여섯 살에 아기를 낳은 어머니라서 도서관에서 가로막을 까닭이 없습니다. 학교 문턱을 밟지 못했대서 도서관을 드나들지 말란 법이 없습니다. 누구나 도서관에 드나들되, 책 하나에 깊이 마음을 쏟는 다른 사람들을 헤살 놓지 않으면 돼요. 침을 묻히며 책장을 넘긴다든지, 책장을 몰래 오린다든지, 거칠게 책장을 뒤적인다든지 하는, 애먼 짓을 하지 않으면 됩니다.

 

 호젓하게 책을 즐길 수 있으면 돼요. 나와 내 아이와 내 아이가 낳을 아이가 오래오래 책 하나 두고두고 즐길 수 있는 도서관이라고 여기는 매무새라면 돼요.


.. 사자는 그 뒤를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규칙을 어겼으니까요.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고 있었거든요. 사자는 고개를 떨어뜨리고 문 쪽으로 터벅터벅 걸어갔습니다. 하지만 맥비 씨는 눈치 채지 못했어요. “관장님, 메리웨더 관장님! 사자가 규칙을 어겼어요. 사자가 규칙을 어겼습니다!” ..  (26쪽)

 


 ‘메리웨더 관장’은 사자가 규칙을 어긴 일이 없으니 괜찮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굳이 규칙을 따지지 않더라도 사자가 반가우면 도서관에서 받아들일 노릇입니다. 규칙을 어겼더라도 사자가 좋으면 규칙을 고칠 노릇입니다.

 

 왜냐하면, 도서관이 그리 크지 않아 새로운 책을 더 받아들일 수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생각하면 되거든요. 묵은 책은 버리고 새로운 책을 받아들여야 할까요. 도서관을 늘릴까요. 책꽂이 사이사이에 새 책꽂이를 놓을까요. 책꽂이 위에 새 책꽂이를 붙이고 사다리를 놓을까요. 도서관 둘레에 다른 도서관 하나를 열어 새로운 책은 그곳에 둘까요.

 

 도서관 손님으로 사자를 받아들이는 규칙을 마련해도 되겠지요. 규칙이란 아예 없애고 서로 즐거운 책삶을 누리자고 할 수 있겠지요. 책은 누구한테나 책이니까요. 책에 깃든 넋은 누구한테나 좋은 씨앗이니까요. 책으로 나누려는 이야기는 누구한테나 사랑이니까요. (4345.2.19.해.ㅎㄲㅅㄱ)


― 도서관에 간 사자 (케빈 호크스 그림,미셸 누드슨 글,홍연미 옮김,웅진주니어 펴냄,2007.2.15./9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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