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장갑 빨래

 


 옆지기 말을 들어 고무장갑 빨래를 하기로 한다. 네 식구 손빨래를 하자니 하루에 서너 차례를 해도 금세 다음 빨래가 쌓다. 집에서 빨래만 하지 않으니 손에 물기 마를 새가 없다. 이러다가 손이 너무 트고 갈라지고 뻣뻣해지고 거칠어질 테니까 빨래를 할 때만큼 고무장갑을 끼어 보기로 한다. 1995년에 홀살이를 할 때부터 손빨래를 했으니까, 열여섯 해 만에 맨손 빨래 아닌 고무장갑 빨래를 하는 셈.

 

 그렇지만, 둘째가 똥을 누어 밑을 씻기고 나서 똥기저귀를 빨래할 때에는 으레 맨손 빨래가 된다. 둘째 밑을 고무장갑 끼며 씻길 수 없으니까. 부엌일을 하다가 빨래를 하거나, 첫째를 씻기고 나서 빨래를 할 때에도 으레 맨손 빨래가 된다. 손에서 물기를 말릴 몇 분이 아까우니 그냥 맨손 빨래가 된다.

 

 요 며칠 두 차례쯤 고무장갑 빨래를 한다. 그러니까, 요 며칠 예닐곱 차례는 그냥 맨손 빨래가 되었다. 고무장갑을 끼고 빨래를 하면, 물이 찬지 뜨거운지 잘 못 느끼겠다. 옷가지가 잘 비벼지는지, 때는 잘 빠지는지, 잘 모르겠다. 오래도록 맨손 빨래를 한 나머지,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는 아직 느낌이 와닿지 않는다.

 

 먼먼 옛날 사람들한테는 고무장갑이 없었다. 그리 멀지 않은 옛날, 내 어머니 젊을 적까지도 고무장갑이란 있을 수 없다. 빨래기계는커녕 고무장갑조차 없던 나날 집일을 도맡던 어머니들은 빨래를 하며 손이 까칠까칠해지고 트고 갈라지고 꾸덕살투성이가 되면서 어떤 마음 어떤 생각 어떤 꿈이었을까.

 

 내가 아주 어렸을 적, ‘남자가 여자한테 빨래기계 사 줄 돈은 없어 고무장갑 겨우 사 주며 미안하다’고 하는 이야기가 만화책에 곧잘 실리곤 했고, ‘고무장갑 사 줄 돈조차 없어 미안하다’고 하는 이야기가 만화책이나 동화책에 가끔 실리곤 했다고 떠오른다. 빨래기계 안 사 주어도 되고, 고무장갑 안 사 주어도 되니까, 좋은 보금자리 꾸려 살아가는 아버지들이 함께 손빨래를 하면 즐거웠을 텐데. 집일을 서로 도우면서 하고, 아이를 함께 사랑하면서 보살피면 참으로 아름다웠을 텐데.

 

 나는 네 식구 빨래를 도맡으면서, 네 식구 빨래하며 쓸 고무장갑도 내가 가게로 자전거 타고 마실하면서 장만한다. (4344.12.23.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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