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랜더스의 개 비룡소 클래식 12
위더 지음, 하이럼 반즈 외 그림, 노은정 옮김 / 비룡소 / 200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흙바닥과 하늘과 마음속에 그림그리기
 [푸른책과 함께 살기 84] 위다, 《플랜더스의 개》(비룡소,2004)



- 책이름 : 플랜더스의 개
- 글 : 위다
- 옮긴이 : 노은정
- 펴낸곳 : 비룡소 (2004.12.24.)
- 책값 : 9000원



 (1) 어린이와 학교


 온누리 아이들은 저마다 싱그러운 사랑을 품에 안으며 우리 어른들 곁으로 찾아옵니다. 백이면 백 아이 모두 다 다른 사랑을 가슴에 안은 채 우리 어른들 품으로 예쁘게 안깁니다.

 다 다른 아이들은 다 다른 삶을 일구면서 다 다른 사랑을 펼치기 마련입니다. 다 다른 아이들이 다 같은 꿈을 품거나 다 엇비슷한 길을 걸을 수 없습니다. 한집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이라 하더라도 어버이한테서 받는 손길은 조금씩 다릅니다. 튼튼한 아이는 믿음을 더 사면서 홀로 마음껏 뛰놀 겨를이 많습니다. 여리거나 아픈 아이는 보살핌을 더 받으면서 집안에서 어버이와 지낼 겨를이 많습니다.

 튼튼한 아이는 제 두 다리로 박차고 뛰놀며 삶과 삶터와 삶자락을 헤아립니다. 여리거나 아픈 아이는 어깨동무를 받으며 삶과 삶터와 삶자락을 곱씹습니다. 먼 데를 두루 돌아다닌 아이는 온몸으로 맞아들인 꿈을 키웁니다. 한 곳에서 오래 머문 아이는 온마음으로 받아들인 사랑을 돌봅니다. 너른 꿈은 아이를 살찌우고, 깊은 사랑은 아이를 북돋웁니다.


.. 넬로와 파트라슈는 세상에 홀로 남겨진 외톨이였습니다 … 살아온 시간의 길이로 치자면 둘은 동갑내기였어요. 그래도 하나는 아직 어렸고, 다른 하나는 이미 늙었지요. 둘은 늘 함께 지냈어요. 둘 다 부모가 없었고, 몹시도 가난했으며 그리고 한 사람의 손에 의지하여 살았거든요 … 둘은 서로를 아낌없이 사랑했지요 ..  (9∼10쪽)


 좋다 하는 책을 아이들한테 잔뜩 선물한대서 아이들이 좋아할 까닭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좋다 하는 책을 즐거이 읽기도 해야 하지만, 좋다 하는 책에 앞서 따순 사랑을 먼저 넉넉하고 보드랍게 받아먹을 수 있어야 합니다. 따순 사랑을 먼저 넉넉하고 보드랍게 받아먹지 못하는 채 좋다 하는 책만 맞아들일 때에는, 아이들 몸뚱이는 가냘프고 맙니다. 이때에는 아이들 마음 또한 메마르고 말아요.

 좋다 하는 책이란 무엇일까요. 아이들 지능과 재주와 솜씨와 지식을 키우는 책이 좋다 할 만한 책일까요.

 좋다 하는 책에는 어떤 줄거리를 담을까요. 아이들이 언제나 사랑스러이 살아가는 힘을 이끄는 책이 아니고서야 좋다 하는 책이라 손꼽을 수 있을까요.

 좋다 하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이나 학교 모두 매한가지라고 느낍니다. 어른들은 무엇을 바라보면서 좋다고 여기는가요. 어떤 유치원이 좋은 유치원인가요. 어떤 어린이집이 좋은 어린이집인가요. 어떤 학교가 좋은 학교인가요.

 아니, 어떤 아이가 되어야 내 아이가 좋은 아이인가요. 어떤 아이로 자라야 내 아이가 좋은 아이답다 할 만한가요. 어떤 아이로 키워야 내 아이를 좋은 아이로 생각하나요.


.. 이제 갓 여섯 살이긴 해도, 여러 번 할아버지를 따라다닌 덕에 안트베르펜을 구석구석 잘 알고 있는 넬로가 할아버지를 대신하게 되었어요. 넬로는 우유를 팔고 잔돈을 거두어 우유 주인에게 가져다주는 일을 성실하게 해냈습니다. 그런 넬로를 사람들은 누구나 좋아하게 되었지요 ..  (27쪽)


 어른들은 대중노래를 흥얼거립니다. 온통 사랑 외침만 있는 대중노래를 쉴새없이 주절거립니다. 어른들은 여기에서도 사랑, 저기에서도 사랑이라고 외칩니다. 연속극도 사랑을 다루고 영화도 사랑을 다룹니다. 소설도 사랑을 다루며 시도 사랑을 다뤄요. 어른들은 노상 사랑으로 둘러싸입니다. 그러나 막상 어른들이 사랑을 맺어 낳는다는 아이한테는 참답거나 착하거나 고운 사랑을 물려주지 못해요. 아이들이 사랑을 받아먹도록 돕지 않아요. 아이들한테 사랑을 나누기 앞서, 섣불리 지식을 안깁니다. 아이들하고 사랑꽃을 피우지 않고서, 지식열매만 먹이려 해요.

 학교라는 곳이 생긴 지 얼마 안 된 줄 깨달아야 합니다. 학교라는 곳을 세워 모든 아이들을 집어넣은 지 얼마 안 된 줄 알아차려야 합니다. 학교라는 곳에 모든 아이들이 다녀야 한 뒤부터 이 나라 아이들 삶이 메마르거나 팍팍하거나 차디차거나 슬픈 굴레에 얽히고 만 줄 느껴야 합니다.

 아이들은 무엇을 배우는가요. 아이들은 무엇을 배워야 하나요.

 아이들한테 국어 영어 수학 역사 도덕이 무슨 뜻일까요. 아이들이 우리 말글과 이웃을 느끼지 못한다면, 아이들이 셈과 생각과 마음과 사랑을 키우지 못한다면, 아이들이 살림집과 마을과 자연을 보듬지 못한다면, 아이들한테 주어지는 시험성적과 졸업장은 어떤 값을 하는가요.


.. “그림을 보여주지 않다니 정말 너무해. 가난해서 돈을 낼 수 없기 때문에 그림을 볼 수 없다니! 그분이 저 그림을 그리셨을 때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않겠다고는 생각하지 않으셨을 거야. 난 믿어. 그분이 계셨다면 언제든 매일매일 우리가 그림을 볼 수 있게 해 주었을 거야.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림을 천으로 가려 두었어. 캄캄한 어둠 속에 저 아름다운 그림을 가둬 두다니!” … 넬로는 생각에 빠져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배도 고프고 맨발에 나막신만 신어 몹시 추웠을 텐데요 … 넬로는 가난 속에서 자라 운명과 싸웠으며, 글을 배우지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도 못했습니다 … 파트라슈는 항상 넬로와 함께 있으면서 넬로가 길바닥의 돌에 석필로 그린 그림들이 생생히 살아숨쉬는 것을 지켜보았으니까요 ..  (38, 40쪽)


 예부터 큰식구 이루던 조촐한 보금자리가 배움터였습니다. 삶을 배우고 사랑을 배우던 배움터란 바로 큰식구 이루던 조촐한 보금자리였습니다. 스스로 밥을 얻고 스스로 옷을 지으며 스스로 집을 돌보던 보금자리가 늘 배움터였습니다.

 예부터 큰식구 이루던 조촐한 보금자리에서는 밥·옷·집을 낳고 돌보며 건사합니다. 이 보금자리에서는 쓰레기가 나오지 않습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나무를 심던 우리 옛사람입니다. 아이들이 사랑스레 살아갈 보금자리부터 되고, 아이들이 살가이 부대낄 마을이 되도록 했던 어버이요 어른입니다.

 조촐히 이루는 보금자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전쟁무기나 싸움무기를 만들지 않습니다. 낫과 쟁기와 보습과 호미면 넉넉합니다. 임금님도 신하도 장군도 사또도 이방도 포졸도 쓸데없는 삶입니다. 스스로 밥을 일구고 스스로 옷을 지으며 스스로 집을 마련하는데, 무슨 임금이나 사또나 포졸이 있어야 하나요. 이웃하고 다투거나 이웃집 논밭을 넘보지 않는데, 어떤 전쟁무기나 싸움무기가 있어야 하나요.

 이웃을 해코지하거나 다치게 하거나 따돌리거나 등치거나 괴롭히지 않으니까, 싸우는 연장은 없습니다. 이웃 또한 쳐들어온다든지 들볶는다든지 바보짓을 하지 않으니까, 서로서로 싸우는 연장을 안 갖춥니다.

 임금이 생기고 신하가 생기며 사또이니 포졸이니 무어니 하고 생기니까 싸움무기가 생깁니다. 권력이 생기고 이름값이 생기며 돈이 생깁니다. 권력이고 이름값이고 돈이고 부질없는데, 이 부질없는 빈놀음을 하자면서 바보짓이 불거집니다.


.. 넬로는 깨끗한 나무판 위에다 숯으로 친구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그 그림을 본 방앗간 주인의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림은 참으로 신기하게도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외동딸의 모습을 꼭 닮았거든요. 그러나 돌연 방앗간 주인은 집에서 엄마를 돕지 않고 밖에서 빈둥거린다며 어린 딸을 호되게 꾸짖었습니다. 그러고는 겁에 질려 우는 딸을 집 안으로 들여보냈지요. 그런 다음 돌아서서 넬로의 손에서 나무판을 낚아챘습니다. 그리고 소리쳤어요. “너, 이렇게 어리석은 짓 할 게냐?” 방앗간 주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지요. 넬로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그러고는 들릴락 말락 웅얼거렸습니다. “전 눈에 들어오는 것은 뭐든 그리는걸요.” 방앗간 주인은 한동안 잠자코 있었어요. 그러더니 불쑥 일 프랑짜리 은화를 내밀었지요. “내 장담하건대, 그림 그리는 일은 사악하고 어리석은 일이야. 시간 낭비일 뿐이다. 어쨌거나 이 그림은 알루아를 닮았고 알루아의 엄마가 보면 기뻐할 테니 내게 다오. 대신 은화를 주마.” 어린 아르덴 소년의 얼굴에서는 핏기가 싹 사라져 버렸습니다. 소년은 고개를 들며 손을 등 뒤로 감추었어요. “코제 나리, 돈하고 그림 다 가지세요.” 넬로는 순진하게 말했습니다. “저한테 이따금 잘해 주셨잖아요.” 그러더니 넬로는 파트라슈와 함께 들판을 가로질러 가 버렸어요. “그 돈만 있었으면 성당의 그림들을 볼 수 있었을 텐데…….” 넬로는 파트라슈를 보며 중얼거렸습니다. “하지만 알루아의 그림은 팔 수 없었어. 아무리 그 그림들이 보고 싶어도 그럴 수는 없어.” ..  (46∼47쪽)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하나같이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꿈을 키웁니다. 축구선수가 되든 야구선수가 되든, 한결같이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틀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내 몸을 살찌우는 좋은 밥을 거둔다든지, 내 몸을 아끼는 좋은 옷을 짓는다든지, 내 몸이 살가이 쉴 보금자리를 이룬다든지, 이런저런 꿈을 키우거나 품거나 헤아리지 않는 오늘날 아이들이자 어른들입니다.

 돈을 벌면 무얼 하나요. 돈을 벌면 돈을 쓰겠지요. 이름값 얻으면 무얼 할까요. 이름값 얻으면 이름을 드날리겠지요.

 사랑을 심어 사랑을 거두면 사랑을 나누겠지요. 꿈을 심어 꿈을 거두면 꿈을 나누겠지요.


 (2) 어린이와 집


 시골마을 할머니랑 할아버지가 서숙을 텁니다. 구부정한 허리는 펴지지 않습니다. 너른 길가에 쪼그려앉아 서숙을 털어 빈 껍질을 날립니다. 공장 기계가 있으면 흙일꾼 할매랑 할배 일손을 덜 수 있나요. 공장 기계가 있으면 서숙을 흙에 심을 때에 일손을 아낄 수 있나요. 공장 기계가 있으면 굳이 흙에 서숙을 심어 거두지 않아도 될까요.

 서숙을 이루는 영양소를 낱낱이 밝혀 공장 기계로 ‘서숙하고 꼭 닮은 먹을거리’를 만들면 값싸면서 품이 안 들고 맛날까 궁금합니다. 나락을 이루는 영양소를 하나하나 캐내 공장 기계로 ‘나락하고 똑 닮은 먹을거리’를 만들면 더 값싸고 품 하나 안 들이는 맛난 밥이 나올는지 궁금합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공장 기계와 같습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까지 다닌 아이들은 틀에 맞추어 잘 짜인 톱니바퀴 노릇을 합니다. 이 아이들은 회사나 관공서에서 시키는 일을 제때에 제대로 해낼 줄 아는 일꾼입니다. 그렇지만 이 아이들은 스스로 밥을 짓거나 옷을 짓거나 집을 짓지는 못합니다. 이 아이들은 스스로 사랑을 꽃피우거나 내 살가운 짝꿍이랑 사랑열매를 맺는 일은 못합니다.


.. 젊었을 때 군인이었던 할아버지는 황소가 밭고랑을 짓밟듯이 전쟁이 이 땅을 뭉개 버린 일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어요. 할아버지는 상처 입은 몸만 갖고 빈손으로 전쟁터에서 돌아왔습니다 … 예한 다스 할아버지가 여든 살이 되었을 무렵, 소도시 스타벨로트 근처의 아르덴 지방에 살던 딸이 죽으면서 할아버지에게 두 살 난 아들을 남겼습니다. 할아버지는 자기 한 몸 먹고살기도 힘들었지만 묵묵히 손자를 맡아서 키웠어요. 그리고 이 아이는 곧 할아버지에게 둘도 없는 소중한 기쁨이 되었습니다 … 할아버지와 넬로는 비록 좁고 보잘것없는 오두막에서 살았지만 만족했습니다 … 형편은 어려웠지만 할아버지는 손자를 무척이나 상냥하고 다정하게 대했어요. 넬로는 마음씨가 진실하고 순수하며 고왔지요. 할아버지와 넬로는 딱딱하게 굳은 빵 한 조각, 양배추 몇 잎에도 기뻐했으며 그 이상의 것을 탐내지 않았습니다 ..  (12∼13쪽)


 두 아이랑 살아가는 내 삶을 돌이킵니다. 두 아이한테는 무엇보다 너른 사랑과 깊은 믿음을 물려줄 수 있는 어버이여야 합니다. 두 아이한테 사랑과 믿음을 물려주자면 어버이인 나부터 사랑과 믿음으로 살아내야 합니다. 내 삶을 사랑으로 누리고 믿음으로 즐겨야 합니다. 어버이 스스로 늘 사랑스러우며 믿음직스러울 때에 어버이 둘이 사랑으로 맺은 열매인 아이들은 가장 보드라우면서 싱그럽고 빛나는 사랑을 받아먹어요.

 두 아이 어버이인 나는 아무래도 오래도록 제도권 학교에 길들었습니다. 학교에서는 개구진 짓을 하거나 교과서는 집어치우며 교과서 아닌 책을 읽으며 버틴 아이였습니다. 집에서는 텔레비전 소리가 시끄러웠다지만 국민학생 때에는 텔레비전 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동네 동무들이랑 신나게 뛰놀았습니다. 아버지가 주마다 잔뜩 갖다 안기는 문제집이 벅찼습니다. 이제 와 헤아리면 참 작은 집에 참 작은 씻는방에 참 작은 마루에 참 작은 방에 참 작은 부엌인 살림이었으나, 어린 날에는 이런 대목은 하나도 헤아리지 않으면서 너르며 깊은 사랑을 날마다 받아먹었습니다. 어머니는 뜨개옷 뜨개모자 뜨개장갑을 손수 마련해 주었습니다. 이웃 아주머니들은 착하다 예쁘다 심부름 잘한다 하는 말을 끊이지 않고 들려주었습니다. 학교에서 교사들은 무시무시한 몽둥이를 휭휭 휘두르면서 윽박질렀습니다. 중학교 동무들은 툭하면 무리지어 싸움박질이요 힘여린 동무 괴롭히거나 쥐어박기 일쑤이면서, 중학교 교사들은 툭하면 뺨따귀를 갈기고 구두발로 걷어찼습니다. 커다란 아파트숲으로 집을 옮기기 앞서까지 언제나 학교를 걸어서 다녔습니다. 비오는 날은 비를 맞으며 뭉게구름과 무지개를 보았습니다. 맑은 날은 파란 빛깔과 하얀 빛깔이 어우러진 멋진 그림을 손가락으로 휘휘 저으며 그렸습니다.

 깊은 밤에 자꾸 깨는 둘째 갓난쟁이는 요즈음 들어 몸이 퍽 아픕니다. 이 작은 몸으로 참 잘 견디는구나 싶어 대견하면서, 이 몸앓이를 네 어버이가 맡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싶지만, 아이는 아이대로 몸앓이를 견디고 이기면서 무럭무럭 크겠지요. 이 몸앓이가 지나고 아이 스스로 제 두 다리로 흙땅에 우뚝 설 무렵 얼굴에 벌겋게 난 아토피가 시나브로 걷히겠지요.


.. 파트라슈는 태어날 때부터 고통과 힘에 부치는 일밖에 물려받은 것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의 욕지거리를 먹고 매질 세례를 받으며 자랐어요. 파트라슈의 나라는 기독교 국가였지만 파트라슈는 그저 개일뿐이었거든요. 파트라슈는 강아지 티를 채 벗기도 전에 벌써 짐수레와 멍에의 쓰라린 맛을 알았습니다 … (철물점 사람이 파트라슈를 버렸고, 예한 다스 할아버지가 파트라슈를 길에서 살려서 돌볼 때에) 신기하게도 그렇게 쉬는 동안 한 번도 욕설을 듣지 않았고, 아픈 매질도 당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안쓰러워하는 어린아이의 목소리와 할아버지의 다정한 손길만을 느낄 뿐이었지요 … 파트라슈는 또 할아버지와 손자가 자기에게 어서 일어나라고 욕지거리를 내뱉지도 않고, 빨리 일하라고 매질을 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고 은근히 놀랐어요. 그리고 마침내 파트라슈는 그 크나큰 사랑에 감동했지요 … 파트라슈는 마치 자기를 보살펴 준 데 대한 보답으로 일을 돕고 싶다는 듯 가만히 서 있었어요. 또 그 일을 잘할 수 있다고 말하는 듯했지요. 예한 다스 할아버지는 한동안 그렇게 하기를 꺼렸습니다. 할아버지는 대자연의 뜻을 거스르면서 그저 부려먹고자 개를 줄로 옭아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파트라슈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  (15, 22, 23, 24쪽)


 예쁜 아이를 바라보며 예쁜 어버이로 살아야지 하고 다짐합니다. 착한 아이를 바라보며 착한 어버이로 살아야지 하고 생각합니다. 때때로 밉다 싶은 짓을 하는 아이를 바라보며 어버이로서 아이한테 못나거나 모자란 짓을 했으니 이렇게 따라하는구나 싶어 부끄럽고 슬픕니다.

 오늘 하루도 동이 새로 틉니다. 희뿌윰하게 밝는 마당에 차츰차츰 노란 물이 들면서 이내 환한 온갖 빛깔이 살아숨쉬겠지요. 밤새 빛나던 뭇별은 햇빛에 가릴 테고, 추운 날 꽃봉우리 활짝 여는 동백꽃이 우리 살림집 마당에서도 흐드러지겠지요. 동백나무 곁 후박나무는 후박꽃이 필까요. 후박꽃은 언제 필까요. 집 뒤꼍 뽕나무는 이듬해에 어떤 꽃을 피울까요. 우리 집 뒤쪽 흙땅에서 자랄 모과나무에서 모과꽃 피는 모습을 볼 수 있겠지요. 멧골자락에서 주운 도토리를 심으면 이곳에서도 참나무가 자랄 수 있겠지요.


..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린 가난하단다. 우린 신이 우리에게 주신 것을 공손하게 받아들여야 해. 좋지 않은 일도 착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려무나. 가난뱅이는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란다 … 가난한 사람도 때로는 선택을 할 수 있어. 위대한 사람이 되는 길을 택하는 거야. 남들이 함부로 얕보지 못하게 말이야.” … 넬로는 불가능하지만 아름답고 순수하며 아무런 이기심도 없는 꿈에 사로잡혀 걸어갔습니다 ..  (52, 53, 56쪽)


 하나하나 천천히 사랑하고 싶습니다. 하나씩 가만히 아끼고 싶습니다. 모두모두 알뜰히 보살피고 싶습니다. 저마다 해맑게 바라보고 싶습니다.

 햇살이 보듬는 풀과 나무처럼, 아이를 어루만지는 어버이로 사는 기쁨을 누리고 싶습니다. 햇볕이 쓰다듬는 흙과 물처럼, 아이를 얼싸안는 어버이로 지내는 즐거움을 나누고 싶습니다.


.. 넬로는 종이라는 위대한 흰색 바다 위에 자신을 사로잡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환상 가운데 하나를 옮겨 그렸어요. 물론 그림에 대해 가르쳐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물감을 살 수도 없었고요. 몇 안 되는 조잡한 미술 도구를 장만하기까지 넬로는 수도 없이 끼니를 굶어야 했습니다. 그래 봤자 검은색과 흰색으로밖에 사물을 표현할 수 없었지만 말이에요 … 넬로에게 선이나 원근법, 해부학이나 명암에 대해서 가르쳐 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넬로는 온갖 고난과 슬픔과 세월의 풍파를 겪은 사람의 말없는 표정을 독특한 느낌으로 그렸습니다 … 넬로는 생각했습니다. 그림을 두고 돌아서니, 왠지 말도 못하게 부끄럽고 쑥스러워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 아무 보잘것없는 가난뱅이가 그림 공부도 제대로 못한 처지에 감히 위대한 화가들, 진짜 예술가들이 자기 그림을 봐 주기를 바랐다는 게 너무나도 주제넘고 경솔하고 어리석게 느껴졌거든요 ..  (60, 62∼63쪽)


 아침부터 파리를 잡습니다. 따뜻한 남녘 날씨에 파리가 아침 일찍 윙윙 날아다니면서 새근새근 자는 둘째 아이 머리께에서 성가시게 구니, 파리채를 들고 아침부터 열 마리 남짓 잡습니다.

 둘째 오줌기저귀를 빨래합니다. 밤새 나온 아이 기저귀를 빨래합니다. 첫째가 갓 태어났을 때에는 늘 첫째 오줌기저귀를 빨면서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이제 첫째는 기저귀를 떼었기에 기저귀 빨래는 없으나, 다른 옷가지 빨래가 많습니다. 첫째를 씻길 때에는 머리를 따로 감깁니다. 새로 빨래한 오줌기저귀는 해바라기하는 마당에 빨래대를 세워서 넙니다.

 둘째가 무럭무럭 자라면 둘째 기저귀 빨래가 사라지면서 옷가지 빨래가 잔뜩 늘 테고, 둘째를 씻길 때에 머리를 따로 감기겠지요. 이때에는 네 식구 함께 풀을 밟고 흙을 누리는 시골집살이를 신나게 누리겠지요.


 (3) 《플랜더스의 개》에서 읽는 넋


 요즈음 아이들 가운데 만화영화를 안 보는 아이는 없으리라 봅니다. 만화영화가 아니더라도 텔레비전을 보지 않으며 살아가는 아이가 몇이나 될는지 궁금합니다. 집에 텔레비전을 모시지 않는 어버이는 얼마나 될까요. 아이를 낳아 어버이로 살기 앞서, 텔레비전을 모시지 않는 젊은이로 지냈던 사람은 얼마쯤 있을까요. 젊은이가 되기 앞서 푸름이나 어린이로 여느 제도권학교를 다니는 동안 텔레비전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살던 사람은 있기는 있나 모르겠습니다.

 영국사람 위다 님이 일군 문학 《플랜더스의 개》(비룡소,2004)를 천천히 되읽으면서 문득 이런저런 생각이 스칩니다. 이 나라 대한민국에서 《플랜더스의 개》를 어린이 명작동화처럼 읽힌 때는 언제부터일까 하고. 일본사람 요시로 구로다 님이 ‘텔레비전 만화영화’로 〈플란다스의 개〉를 내놓기 앞서까지 이러한 작품이 있는 줄 알던 한국사람은 있기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한국사람한테 아로새겨진 ‘플랑드르 시골마을 아이들과 개’ 이야기는 거의 모두 만화영화로 그려진 모습이라고 느낍니다.

 동화책은 ‘플랜더스’라 적고 만화영화는 ‘플란더스’라 적지만, 둘 모두 틀린 이름입니다. 옳게 적자면 ‘플랑드르(Flandre)’나 ‘플란데렌/플라안데렌(Vlaanderen)’입니다. 영어로 하자면 ‘플랜더스(Flanders)’가 되기는 합니다. 그리고, 이 문학을 빚은 사람은 영국사람이었으니, 영국문학에서는 ‘플랜더스’라 적었겠지요. 이를 일본사람은 ‘플란다스’라 읽었을 테고요.

 《플랜더스의 개》에 나오는 시골마을은 프랑스하고 네덜란드가 맞붙은 자리입니다. 프랑스 이름으로 이곳을 가리켜야 할는지 네덜란드 이름으로 이곳을 말해야 할는지 좀 오락가락이라 할 만합니다. 그러나, 이 시골마을 아이들 옷차림이나 버릇이나 삶을 돌아본다면, 프랑스보다 네덜란드에 한결 가깝습니다. 어쩌면, 이 만화영화를 빚은 일본이나 이 이야기를 일본을 거쳐 받아들인 한국이나, 넬로와 파트라슈를 그냥 ‘네덜란드 문화’로 여기지 않았나 싶습니다.


.. 봄과 여름이면 넬로와 파트라슈는 더욱 기쁨에 들떴습니다. 플랜더스는 사실 경치가 그렇게 아름다운 곳은 아니었어요. 어쩌면 루벤스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 중에서 가장 초라한 곳일지도 모르지요 … 시원하게 탁 트인 푸른 자연은 넬로와 파트라슈에게 충분히 아름다웠지요. 둘은 그 이상의 것을 탐내지 않았어요 ..  (28, 30쪽)


 아이들은 영국 아이들이건 네덜란드 아이들이건 벨기에 아이들이건 남녘 아이들이건 북녘 아이들이건 일본 아이들이건 다르지 않아요. 모두 사랑스러운 아이들입니다. 한결같이 씩씩한 아이들이에요. 저마다 맑으며 밝은 아이들입니다.

 《플랜더스의 개》는 사랑스러우면서 씩씩한 아이들 삶을 그립니다. 맑으며 밝게 살아가려는 아이들 꿈을 그립니다.

 이 아이들 곁에는 아이들처럼 사랑스러우면서 씩씩한 어른이 있습니다. 아이들하고 똑같이 맑으며 밝은 어른이 있습니다. 이와 함께, 사랑스럽지 못하고 씩씩하지 못한 어른이 있습니다. 맑으며 밝은 넋을 잃거나 잊은 어른이 있습니다.

 사랑스러움보다 돈을 더 높이 사는 어른이 있습니다. 돈보다 사랑스러움을 거룩히 여기며 아끼는 어른이 있습니다. 맑으며 밝은 넋보다 이름값이나 권력에 휘둘리는 어른이 있습니다. 이름값이나 권력은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맑은 넋과 밝은 얼을 북돋우는 어른이 있습니다.


.. 그때 갑자기 어둠을 뚫고 널따란 복도를 지나 하얗고 눈부신 광채가 흘러 들어왔어요. 찰 대로 찬 달이 구름 사이로 빛을 발한 거였어요. 눈은 그쳐 있었으며 쌓인 눈에 반사된 달빛은 새벽녘의 햇살만큼이나 선명했어요. 빛은 둥근 천장을 통과해서 저 위에 걸린 그림 두 점을 환히 비추었어요. 넬로가 정신이 혼미한 채로 그림들을 가린 천을 걷어 버린 것이었어요 … “마침내 그림을 봤어! 오, 하느님! 이제 됐습니다!” 넬로는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팔다리에 힘이 빠지면서 넬로는 털썩 무릎을 꿇었지만 그래도 그토록 동경해 온 걸작만은 여전히 우러러보고 있었어요. 얼마 되지 않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신비한 빛은 꿈결과도 같이 신성하고 아름다운 그림을 비춰 주었어요. 넬로가 그토록 오랫동안 간절히 보고 싶어했지만 결코 볼 수 없었던 그림이었지요. 하늘의 권좌에서 흘러 내려오기라도 한 듯 선명하고 보드라우면서도 강렬한 빛이었어요 ..  (92, 94쪽)


 그림을 그리는 넬로는 아름다운 꿈을 사랑합니다. 그림을 그리는 넬로는 제 가슴으로 스며든 고운 빛줄기를 그림으로 담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합니다. 그림을 그리는 넬로는 예한 다스 할아버지랑 파트라슈와 알루아하고 지낸 나날을 그림으로 곰삭입니다.

 그림을 그리는 넬로는 천재 그림쟁이는 아닙니다. 그저 한 가지, 하늘이 내린 선물을 곱게 아낄 줄 아는 아이입니다. 하늘이 내린 선물을 저버리지 않은 아이입니다. 하늘이 내린 선물보다 지식에 기울지 않은 아이입니다. 하늘이 내린 선물로만 살다가 하늘이 내린 또다른 길을 걸어가고만 아이입니다.

 그림을 그리는 넬로가 흙바닥이나 하늘이나 마음속이 아닌 종이에 그림을 더 남겼다면, 넬로는 더 빛나거나 훌륭하거나 놀라운 그림쟁이로 이름을 드날릴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넬로는 흙바닥 그림은 흙바닥 그림대로 사랑합니다. 하늘 그림은 하늘 그림대로 좋아합니다. 마음속 그림은 마음속 그림대로 아낍니다.


.. 전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여! 그대의 위대한 인물들을 귀하고도 귀하게 여기세요. 오직 그 인물들을 통해서만 미래가 그대의 나라를 기억할 테니까요 ..  (34쪽)


 푸른 들판을 바라보며 푸른 빛깔을 마음으로 그립니다.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며 파란 빛깔을 마음으로 빚습니다. 콩닥콩닥 뛰는 뜨거운 가슴을 느끼며 뜨거운 기운을 마음으로 일굽니다.

 좋은 사람들과 살아가면서 좋은 사람들 이야기를 그림으로 싣습니다. 좋은 들판을 일구면서 좋은 들판에서 흘린 땀방울을 그림으로 싣습니다. 좋은 바람을 마시고 좋은 흙을 만지는 몸으로 좋은 꿈을 그림으로 싣습니다. (4344.11.16.물.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