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리가 길게 자란다면 내 친구는 그림책
타카도노 호오코 글 그림, 예상렬 옮김 / 한림출판사 / 200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좋은 마음그릇으로 읽는 그림책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7] 타카도노 호오코, 《내 머리가 길게 자란다면》(한림출판사,2003)



 좋은 마음그릇이 되어 읽는 그림책은 내 아이한테 좋은 마음그릇이 되기도 할 테지만, 이보다 어버이인 나부터 내가 이제껏 제대로 느끼지 못하거나 살피지 못했던 고운 마음그릇이 되어 스며든다고 느낍니다. 좋은 마음그릇인 좋은 책 하나 가만히 펼치면서 아이하고 함께 읽든 혼자서 읽든, 이 마음그릇이 담긴 마음밥을 차근차근 받아먹거나 즐길 수 있구나 싶어요.

 책값을 천천히 마련하면서 즐겁고, 땀흘려 마련한 돈을 책값으로 쓰면서 즐거우며, 책 하나 장만하려고 책방마실을 다니는 일이 즐겁습니다. 장만한 책을 읽을 때에 즐겁고, 읽은 책을 책시렁에 꽂을 때에 즐거우며, 읽은 책을 틈틈이 다시 꺼내어 들출 때에 즐겁습니다.

 먹고 또 먹어도 줄지 않는 마음밥인 책입니다. 즐기고 또 즐기면서 낡거나 닳지 않는 마음벗인 책입니다. 나누고 또 나눌수록 새로운 빛이 서리며 어여쁜 마음밭인 책이에요.


.. “뭐야? 너희들 겨우 그것밖에 안 길러? 나라면 더 길게 기를 텐데!” 수진이가 말했습니다. “뭐, 얼마나?” “훨씬, 훨씬, 훨씬, 훨씬, 훨씬, 더 길게! 길이는 …….” ..  (4쪽)


 타카도노 호오코 님이 빚은 그림책 《내 머리가 길게 자란다면》(한림출판사,2003)을 읽습니다. 머리가 짧은 아이는 저보다 머리가 긴 동무 둘이랑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내 머리가 길게 자란다면’ 어떠한 모습일까 하고 꿈을 꿉니다. 길디긴 머리카락으로 무엇을 하고, 길디긴 머리카락 때문에 어떤 일이 생기며, 길디긴 머리카락은 아이 삶을 얼마나 아름다이 일구는가를 차근차근 보여줍니다.

 예쁜 꿈이에요. 멋진 꿈이에요. 예쁘게 살아가는 아이인 만큼 예쁘게 꿈꿀 수 있겠지요. 멋지게 살아숨쉬는 아이인 터라 멋지게 꿈꿀 수 있을 테지요.

 짧은머리 아이하고 살아가는 어버이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합니다. 예쁘게 꿈을 꾸는 아이하고 살아가는 어버이 또한 예쁘게 꿈을 꾸는 어른일까요. 아이만 혼자 예쁘게 꿈을 꾸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곰곰이 돌아봅니다. 나는 우리 집에서 우리 옆지기랑 두 아이가 저마다 어떤 예쁜 꿈을 꾸면서 살아가도록 따스하거나 너그러운 살붙이로 지내는가 하고 곰곰이 돌아봅니다. 나는 내 보금자리를 얼마나 어여삐 건사하는 어여쁜 어른인가 하고 곰곰이 되새깁니다. 우리 집 딸아이와 아들아이가 무럭무럭 자라서 저희 동무들하고 어여삐 이야기꽃을 피우도록 이끌 만큼 나 스스로 어여삐 살아가는지 곰곰이 헤아립니다.


.. 오른쪽으로 땋은 머리와 왼쪽으로 땋은 머리를 팽팽하게 나무에 묶으면 우리 집 모든 빨래를 한꺼번에 널 수 있어. 빨래가 마를 동안 나는 책 10권을 읽고 “도와줘서 고맙다.”라는 엄마의 칭찬을 들을 수 있을 거야 ..  (12∼13쪽)


 좋은 삶으로 이루는 좋은 꿈입니다. 좋은 사랑으로 일구는 좋은 믿음입니다. 좋은 손길로 나누는 좋은 밥입니다.

 아이한테서 예쁜 웃음이나 맑은 웃음을 바란다면, 아이를 낳아 함께 살아가는 나부터 예쁜 웃음과 맑은 웃음을 아끼며 사랑하면 돼요. 아이한테서 예쁜 말이나 예쁜 몸짓을 꿈꾼다면, 아이랑 오순도순 복닥이는 나부터 예쁜 말이나 예쁜 몸짓으로 이웃을 사귀면 돼요.

 좋은 마음그릇으로 읽는 좋은 그림책입니다. 좋은 마음그릇을 갈고닦지 않는다면 좋은 그림책을 코앞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며 받아들이지 못해요.

 좋은 그림책을 찾기 앞서, 내 삶을 좋은 꿈·사랑·이야기 감도는 기쁨으로 돌볼 줄 알아야 해요. 좋은 그림책을 바란다면, 어른인 내가 하는 일이 아이들이 기꺼이 물려받으면서 좋아할 만한 일이 되어야 해요. 내 아이가 어른이 되어 저희 좋은 짝꿍을 만나서 저희 아이를 낳은 다음에도, ‘어른인 내가 마련한 보금자리’에서 함께 살아가고 싶다고 느끼면서 알콩달콩 한솥밥을 먹을 수 있다면, 따로 좋은 그림책이 곁에 없어도 내 삶은 늘 좋은 이야기꽃이 가득합니다.


.. “그래도 보통 때는 귀찮지 않을까?” “그래, 머리가 길어서 다니기 불편하지 않을까?” 연희와 민지가 함께 물었습니다. “문제없어. 그럴 때는 파마를 하는 거야. 그러면 ……. 내 머리는 숲이 되는 거야! 작은 새도, 다람쥐도, 벌레들도 모두 다 모여서 아주 멋있는 숲이 되는 거야!” (22∼26쪽)


 나는 숲을 꿈꿉니다. 나와 옆지기가 따사로이 한삶을 일구는 좋은 ‘집숲’을 꿈꿉니다. 두 어버이와 살아가는 두 아이가 푸른 숨결을 누리면서 푸른 꿈결을 스스로 보살필 수 있을 좋은 집숲을 생각하면서 우리 살림집을 가꿉니다. 돈을 더 벌거나 이름을 더 얻거나 힘을 더 펼치는 삶은 내키지 않아요. 포근하게 어깨동무하고 싶고, 넉넉하게 껴안고 싶으며, 신나게 손잡고 싶어요.

 그림책 《내 머리가 길게 자란다면》을 읽고 덮고 다시 읽고 다시 덮으면서 즐겁습니다. 이야기꽃 하나 피고 지는 그림책을 읽으면서 즐겁습니다. 새 이야기꽃이 천천히 피어나고, 또다른 새 이야기꽃이 새삼스레 피고 지는 그림책을 아이하고 나눌 수 있어 즐겁습니다. (4344.10.13.나무.ㅎㄲㅅㄱ)


― 내 머리가 길게 자란다면 (타카도노 호오코 글·그림,예상렬 옮김,한림출판사 펴냄,2003.1.30./9000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