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리면서 웃기


 사진기가 없던 먼 옛날 태어나 아이하고 살아가는 아버지였다면 나는 내 아이들을 바라보며 어떻게 느꼈을까를 돌아보는 일은 부질없다고 느낍니다. 글이나 책이 없던 더 먼 옛날 태어나 아이들을 사랑하며 지내는 아버지였다면 나는 내 아이들을 마주하며 어떻게 받아들였을까를 톺아보는 일은 덧없다고 느낍니다. 사진기도 있고 글이나 책도 있는 오늘 내 삶자리에서 내 아이들을 헤아려야 한다고 느낍니다.

 내 몸이 훨씬 튼튼했다면 나는 내 살림을 어떻게 꾸렸을까를 생각하지 못합니다. 내 몸이 더욱 여렸으면 나는 내 살림살이를 어찌 다스렸을까를 되짚지 못합니다. 그러나 가만히 곱씹습니다. 등허리가 결리고 쑤셔서 방바닥에 드러누워 되새깁니다. 내 몸이 훨씬 튼튼했다면 나는 우리 살붙이를 한결 따사로이 껴안는 품을 옳게 건사하기 힘들었으리라 느낍니다. 내 몸이 더욱 여렸으면 사진이고 글이고 책이고 없이 오직 깊은 마음과 너른 품으로 아이들을 얼싸안았으리라 느낍니다.

 깊은 새벽이 아니고서는 글을 쓸 겨를을 내지 못합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이들하고 옆지기를 담은 사진 또한 깊은 새벽이 아니고서는 갈무리할 짬을 내지 못합니다. 8월 24일을 맞이한 새벽녘, 8월 9일에 찍은 ‘아이가 어머니하고 그림 그리는 사진 넉 장’을 들여다봅니다. 8월 9일에 찍은 고작 넉 장밖에 안 되는 사진인데, 이제껏 갈무리하지 않았습니다. 따지고 보면, 헌책방마실을 하며 필름으로 찍은 사진 가운데에는 지난해인 2010년 여름에 찍었지만 스캐너로 긁지 못하기까지 한 녀석이 있습니다. 필름 서른여섯 장 한 통을 스캐너로 긁자면 적어도 한 시간이 넘게 걸립니다. 하루 한 시간이든 한 주 한 시간이든, 아니 한 달 한 시간이든 오직 아버지 사진일을 하자며 한 시간을 빼기란 몹시 빠듯합니다.

 보름 앞서 고작 넉 장 찍은 사진을 들여다봅니다. 아이는 어머니하고 즐거이 그림을 그립니다. 그림을 그리면서 웃습니다. 지난 보름 사이, 아버지로서 아이하고 얼마나 그림그리기 놀이를 즐겼는가 되돌아봅니다. 지난 보름에 걸쳐 새 보금자리 알아본다며 바깥마실을 한다든지, 바깥마실을 마치고 돌아와 지친 몸으로 나자빠진다든지 하며, 막상 아이하고 종이를 펼쳐 그림그리기 놀이를 한 적조차 드물고, 아이하고 어머니가 그림그리기 놀이를 하더라도 곁에서 사진찍기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깨닫습니다.

 내가 사진을 안 찍는 사람이었어도 이런 내 삶을 느꼈을까 궁금합니다. 내가 글을 안 쓰는 사람이더라도 이런 내 모습을 돌아보았을까 아리송합니다. (4344.8.24.물.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