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담은 그림책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마주보는 나무하고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바라보는 나무는 다릅니다. 나무이기는 똑같은 나무이지만, 나무가 뿌리내려 지내는 터전은 사뭇 다릅니다.

 도시사람이랑 시골사람은 다릅니다. 둘은 사람이라는 테두리에서는 같으나, 지내는 보금자리가 다릅니다. 그러나, 도시사람하고 시골사람이 다르대서 어느 쪽이 더 낫거나 좋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생각해 보면, 도시에서 자라야 하는 나무하고 시골에서 자라야 하는 나무도, 어느 쪽이 더 낫거나 좋다고 말할 수 없는지 모릅니다.

 도시에서 자라는 나무치고 제 목숨대로 살아갈 수 있는 나무는 없습니다. 한국땅 도시에서 자라야 하는 나무는 백 해를 살아남기도 힘듭니다. 한국사람 살아가는 도시는 끝없이 다시 파헤치거나 무너뜨려 개발하는 일이 되풀이됩니다.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자는 집짓기만 하기 때문에, 나무 몇 그루쯤이야 돈으로 사서 심으면 그만이라고 여깁니다. 쉰 해를 살았건 이백 해를 살았건, 고운 목숨 하나로 나무를 살피지 않는 도시입니다.

 시골이라 해서 나무가 잘 살아남기에 만만하지 않습니다. 땔감으로 베기도 하지만, 이보다 지난 한국전쟁 때 온통 죽고 말아 벌거숭이가 된 멧자락에 아무 나무나 함부로 심는 바람에 이 나무들은 제 결대로 살아가기 어렵습니다. 스스로 씨앗을 흙에 내어 자라난 나무는 많지 않습니다. 나무가 나무다이 살아가기 힘듭니다. 그래도 시골 멧자락에서는 사람들이 이런 뜻으로 심건 저런 까닭으로 심건, 열 해 스무 해 지나면서 저희끼리 씨앗을 내어 천천히 조용히 자랍니다. 사람들이 솎아내기를 하지 않거나 가지치기를 굳이 하지 않는다면, 시골나무는 시골나무 그대로 마음껏 자랍니다.

 도시나무는 걷는 사람한테 걸리적거리거나 오가는 자동차한테 번거로우니까 가지를 자릅니다. 전깃줄에 걸린다느니 건물 창문을 가린다느니 해서 줄기이든 가지이든 뭉텅뭉텅 자릅니다. 숲에서 살아가는 나무도 키가 클수록 줄기가 위쪽으로 올라가기 마련이지만, 시골나무는 키가 크면서 제 스스로 줄기를 위쪽으로 올립니다. 억지로 가지를 잘라내면서 줄기를 위쪽으로 올리지 않습니다. 잎사귀가 햇볕을 더 많이 받아들이려 하니까 위쪽 가지가 아래쪽 가지보다 잎이 우거집니다.

 도시에서는 어린나무를 보기 힘듭니다. 아니, 도시에는 어린나무를 아예 볼 수 없다고 해야겠지요. 시골땅에서 웬만큼 키운 다음 가지치기를 한 젊은나무를 심으니까요.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라보는 나무는, 또 도시사람이 ‘나무숲’이라는 수목원을 찾아가서 마주한다는 나무는, 가지가 으레 위쪽에만 남습니다. 어느 나무이든 잔가지가 얼마나 많은데,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나무 잔가지’를 볼 일이 없습니다. 더욱이, 겨울을 난 나무마다 새로 뻗는 가지가 얼마나 많은가를 느끼기 어렵습니다. 봄이 되기 앞서 도시 공무원들은 ‘가로 정비’라는 이름을 붙여 잔가지며 몸통 아래쪽 가지는 모조리 잘라내거든요.

 그림책에 담기는 나무란, 으레 도시에서 살아가는 그림쟁이가 그림으로 담고, 도시에서 살아가는 책마을 일꾼이 엮어,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들여다보는 그림책 나무입니다. 흙에 씨앗을 떨구어 천천히 뿌리를 내리며 새 목숨을 영차영차 일구는 시골나무가 그림책에 담기는 일이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나무는 흙이 있는 곳에서 살아가지만, 사람은 흙이 없는 곳에서도 살아가는 나머지, 나무와 흙과 햇볕과 바람과 물과 풀과 짐승이 어떻게 얼크러지는가를 도시사람으로서는 헤아리거나 느끼거나 받아들이지 못하고 맙니다.

 그래도 ‘나무 이야기 다룬 그림책’이라도 읽어야 도시사람 마음에 푸른 싹이 틉니다. 도시에서 태어나 자라는 아이들은 이래저래 어수룩하거나 어설픈 자연 그림책이든 나무 그림책이든 가까이해야, 모자라나마 나무사랑 흙사랑 자연사랑 사람사랑을 조금이나마 맛보거나 생각할 만합니다.

 나무다운 나무를 그리지 못하는 도시사람 그림책이지만, 어찌 되든 나무이기는 나무이지, 하고 말할 수 있으니까, 이런 나무를 그린 그림책이라도 만들고 팔며 사서 읽습니다.

 나무는 그림책이 아니라 멧자락에 있습니다. 나무는 사진책이나 도감이 아니라 시골마을이나 우리 집 자그마한 마당에서 살아숨쉽니다. (4344.2.26.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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