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무라 이헤이


 기무라 이헤이 님 사진책 두 권을 장만했다. 인터넷책방에서 한다는 해외배송이라는 틀에 따라 주문해서 석 주쯤 걸려 받아본다. 여권이 집구석 어디에 있는지 알 길이 없을 뿐더러, 무엇보다 돈없는 내 삶에서, 누군가 여권을 다시 만들어 주며 바깥마실값을 베풀어 주지 않는다면 일본이건 중국이건 나들이를 할 수 없다. 나라밖 마실을 할 수 없는 내 삶이란, 나라밖 책방을 쏘다니며 나라안에 들어오지 않는 애틋한 책을 장만할 수 없다는 소리이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나라안 헌책방을 바지런히 돌아다니면서 누군가 애써 장만한 다음 고마이 내놓아 준 나라밖 책을 반가이 맞아들이는 일 한 가지이다.

 인터넷책방에서 나라밖 사진책을 장만하자면 돈이 꽤 든다. 그렇지만 비행기삯이며 여러 날 드는 품이며 무거운 책을 들고 지고 나르는 품이며 헤아린다면 하나도 안 비싼 값이라고 느낀다. 더구나, 꿈에 그리던 책을 돈 몇 푼에 내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쓰다듬을 수 있기까지 하니, 그지없는 보배가 아닌가 싶다.

 2000년 즈음인가 헌책방에서 겨우 한 권 고맙게 만났던 기무라 이헤이 님 사진책을 드디어 새로 장만하면서 이래저래 더 알아보니, 예전에 나온 책을 사자면 영어이든 일본말이든 더 잘해야 할 텐데, 나로서는 참 까다롭다. 우리 나라 인터넷책방에는 내가 바라는 책이 목록으로 뜨지는 않는다. 시골 읍내 책방에서 이런 책을 주문하거나 받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나라밖 책을 주문해서 받자면 서울에 있는 책방으로 찾아가서 이야기해야 한다. 가볍게, 또는 가뜬하게, 또는 홀가분하게, 또는 살며시 사진기 단추를 누르면서 사람들이 따사로우며 넉넉하게 어우러지는 삶자락을 사진으로 엮은 기무라 이헤이 님 같은 분들 사진책이라면, 품과 땀과 돈을 많이 들이면서 차곡차곡 장만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리 따뜻하지 못한 손길로 껍데기만 번쩍번쩍 꾸민 숱한 나라안 사진책이 으레 5만 원이니 7만 원이니 10만 원이니 하는 판에, 일본돈으로 1만 엔 하는 사진책 하나를 한국에서 장만하며 치러야 하는 돈이란 조금도 비싸지 않다. 그러나, 돈이 아니라 책을 찾기 어려우니 걱정이다.

 저녁나절, 졸음에 겨운 아이를 아버지 무릎에 앉히며 기무라 이헤이 님 사진책 하나를 펼친다. 아이한테 사진읽는 눈을 길러 주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그예 들여다보면 따뜻해지는 사진이니까 아이하고도 함께 보고 싶어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사진을 한 장 두 장 넘기면서 이 사진은 어떠하고 저 사진은 어떠하다고 이야기한다. 사진에 나오는 사람들 모습을 풀이하고, 이렇게 알뜰히 찍은 사진은 구석구석 볼 만한 대목이 많으며 이야기가 넘친다고 도란도란 속삭인다. 아이는 “응, 응.” 하면서 제 아버지 말을 귀담아듣는다.

 기무라 이헤이 님 사진은 흑백으로 이루어진다. 빛깔사진도 찍었을까? 기무라 이헤이 님 빛깔사진은 어떤 느낌 어떤 맛 어떤 삶일까? 그러고 보니, 기무라 이헤이 님 사진책을 넘기면서 당신 사진이 ‘흑백사진인지 아닌지’를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사진’이라고만 생각했고, 사진책을 보면서 ‘사진인가 아닌가’조차 헤아리지 않았다. 흑백사진 아닌 사진이요, 사진 아닌 삶이며, 나라밖 일본사람들 삶이라기보다 그저 어디에서나 마주하는 살가운 사람들 수수한 매무새라고 여겼다.

 그렇다. 일부러 흑백사진으로 찍어야 할 까닭이 없다. 애써 빛깔사진으로 담아야 할 까닭도 없다. 그냥 사진이면 된다. 그런데 굳이 사진이라는 틀로 담아야 할 까닭 또한 없다. 글이면 어떠하고 그림이면 어떠하며 사진이면 어떠한가. 반드시 사진이기 때문에 더 잘 담아낼 수 있지는 않다. 사진은 그예 사진일 뿐인데, 사람들이 살아가는 결을 껴안거나 얼싸안거나 부둥켜안는 너른 품일 때에 사진은 그예 사진이 된다. 그예 사진이 되는 사진이란 곧바로 삶이며, 이러한 삶에는 사람들 하루하루가 곱게 아로새겨진다. 머나먼 옛날이라 할 만한 1930년대에 찍은 사진이든 좀 가까운 옛날이라 할 만한 1970년대 사진이든 다르지 않다. 우리가 오늘을 살아가는 2010년대 사진이라 해서 값어치가 덜하지 않다. 1930년대이든 2010년대이든 똑같은 사람들이 나고 죽고 젊다가 늙으면서 얼크러지는 한살이일 뿐이다.

 사진이란 문화가 아니다. 사진이란 예술이 아니다. 사진이란 사진이다. 사진이 사진이 되는 자리란, 사진을 하는 사람이 사진을 내 삶으로 예쁘게 돌볼 때이다. 내 삶으로 예쁘게 사진을 돌보는 사람들은 누구하고 이웃을 하면서 어떠한 사람들 어떤 삶자락을 사진으로 담든 더없이 포근하면서 웃음꽃이 절로 피어난다. 사진에 찍히는 사람이든 사진을 찍는 사람이든 한결같이 사랑스럽다.

 사진찍기를 한창 내 삶으로 곰삭이면서 앞으로 내가 걸을 사진길을 곰곰이 돌아보던 때, 헌책방에서 기무라 이헤이 님 사진책 하나 만난 일은 나로서는 대단한 선물이었다. 아마, 내가 헌책방을 아끼거나 사랑하는 마음을 고등학생 때에 맞아들이지 않았다면 이러한 선물을 받을 수 없었겠지. 어쩌면, 내가 고등학생 때에 나한테 헌책방 속모습을 처음으로 보여준 헌책방 일꾼이 남몰래 나한테 뿌려 놓은 책씨가 열 해쯤 지나서 싹을 튼 셈이라 할 만하고, 이 책씨가 무럭무럭 자라 이제서야 줄기를 올린 셈인지 모른다. 앞으로 또 열 해쯤 지나면 이 책씨는 잎을 틔우는 튼튼한 들풀 한 가지가 될 수 있을까. 기무라 이헤이 님 사진은 들풀과 같은, 아니 꼭 들풀이라 할 만한 사진이다. (4344.2.13.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