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금지 - 구와바라 시세이 사진집, 눈빛의사진 4
구와바라 시세이 지음 / 눈빛 / 1990년 9월
평점 :
품절


한국을 이야기하는 사진을 찍는다
― 구와바라 시세이, 《촬영금지》



- 책이름 : 촬영금지
- 사진ㆍ글 : 구와바라 시세이
- 옮긴이 : 김승곤
- 펴낸곳 : 눈빛(1990.9.3.)


 구와바라 시세이 님은 지난 2003년, 《다시 보는 청계천, 1965―그 후 38년》(김영섭화랑》이라는 사진책을 펴냈습니다. 이때 ‘1965년에 찍은 청계천 모습’을 서울 인사동에 자리한 ‘김영섭화랑’에서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구와바라 시세이 님이 찍은 청계천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문득 ‘에드워드 김’이라는 분이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일하던 때 남녘땅으로 돌아와서 《민주복지의 길》(1980)이라는 두툼한 ‘새마을운동 찬양 사진책’을 냈던 일이 떠오릅니다. 두 사람 사진책에는 똑같이 ‘웃는 얼굴’이 자주 보이는데, 구와바라 시세이 님이 찍은 ‘나라님들이 생각하기에 꾀죄죄하다’고 하는 그 청계천 사람들도 ‘웃는 얼굴’이고, ‘새마을운동 지도자로 뽑히고 새마을모자를 꾹 눌러쓴’ 그 ‘박정희 각하 만세’를 외치던 사람들도 ‘웃는 얼굴’입니다. 더욱이 《민주복지의 길》에는 거수경례를 하는 전두환 얼굴이 큼직하게 실리기도 합니다.


.. 그러한 한국에 내가 강하게 이끌린 이유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한 마디 말로 얘기하는 것은 어쩌면 불손한 표현이 될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이 시기의 한국에서는 한국인들의 피와 땀과 눈물로 얼룩진, 치열하고 장대한 드라마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한국이 남태평양의 산호초로 둘러싸인 평화로운 섬나라였다면 굳이 내가 취재하고자 마음먹지 않았을 것이다 … 한국은 분명 여러 가지 면에서 이전의 어느 때보다도 풍요로운 시기를 맞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격동의 시대가 종식된 것은 아니다 ..  (7쪽)


 한국을 이야기하는 사진을 찍는다고 하는 분들은, 으레 서울 남산에 올라가서 시내를 죽 내려다보는 사진을 싣고, 경주나 설악산이나 한라산에 가서 ‘아름다운 자연’을 담는 사진을 싣습니다. 같은 서울 하늘이라고 해도, 여느 사람들 살림집을 담는 일은 몹시 드뭅니다. 어쩌면, 사진쟁이 스스로 ‘여느 사람’이 아니라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여느 사람 살림집을 모를 수 있어요. 여느 사람 살림집이 어느 골목에 있는 줄 모를 수 있고, 골목길이 어떠한 곳인가, 아니 골목길이 어디에 있는가조차 모를 수 있습니다. 나라안에서는 김기찬 님만이 《골목안 풍경》을 담아서 사진책으로 묶었는데, 어쩌면 사진쟁이 스스로 ‘골목길을 안 다녔’거나 ‘골목길을 하나도 모르기’ 때문에, 아니 ‘골목동네에서 가난한 이웃이랑 가난하게 살아가지 않기’ 때문에, 여느 사람 살림살이나 삶터나 이야기는 조금도 사진책으로 꾸며지지 못하는지 모릅니다.


.. 한국의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을 찍은 몇 장의 사진은 본의 아니게도 주일 한국대사관이나 한국인의 긍지에 상처를 입히는 결과를 초래했다 …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피사체는 한국의 체제 쪽에서는 비판적인 것으로 보일지도 모르는 것들이 대부분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어쩌면 체제의 치부를 드러내는 결과를 초래할지도 몰랐다 … 나는 나의 표현이 사실을 왜곡하지 않았다는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당국의 부당한 주의에 불쾌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  (15쪽)


 ‘가난’이 무엇일까 하고 늘 생각해 봅니다. 오늘 제 삶이 가난한지, 제 동무들 삶이 가난한지 돌아봅니다. 돈이 얼마나 있어야 가난이 아니며, 돈이 얼마나 없어야 가난인지를 헤아립니다. 저처럼 통장에 남은 돈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가난한지, 통장에 남은 돈이 제가 보기에 무척 많다고 느껴지지만 그 통장 임자로서는 아직 한참 모자라다고 느낀다면, 그분이 가난한지요.

 정치꾼들이 입에 올리는 ‘서민’이란 어떤 사람인지 되뇌어 봅니다. 어떤 집에서 살아야 서민이고, 어떤 일을 해야 서민이며, 어떤 살림을 꾸려야 서민일까요. 서민 경제는 무엇이고, 서민 문화는 무엇이며, 서민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요.


.. 그러나 덕수궁의 마당에서 사흘 간에 걸쳐 가면극이 벌어지고 있을 때, 광주에서는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남녘땅 빛고을에서 빚어진 피의 참사를 그 당시의 서울사람들은 과연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성스러운 선혈이 뿌려진 광주로부터 직선거리로 268킬로미터 떨어진 서울에 있으면서도 광주의 현상을 목격하는 일은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 현장에 갈 것을 갈구하면서도 갈 수 없었던 보도사진가에게는 단 한 장의 사진조차 없다. 역사의 현장에 참가할 수 없었고, 그것을 기록할 수 없었던 분함은 패배감에서 오는 것이었고, 그것은 하나의 좌절이었다 … 보도사진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영상을 기록하는 일에 모든 정열을 바쳐야 한다. 현장을 밟지 않는 자는 그 역사를 말할 자격이 없는 한낱 패배자에 불과하다. 지금 한국의 사회는 열려 있지 않은가. 온돌방에 언제까지나 누워 있어서는 안 된다. 자! 밖으로 나가자 ..  (25∼26쪽)


 《촬영금지》라는 사진책을 처음 만나던 때, 《보도사진가》라는 사진책을 처음 만나던 때, 그리고 《다시 보는 청계천, 1965―그 후 38년》이라는 사진책을 만나던 그러께를 뒤돌아봅니다. 한국 사진쟁이가 안 찍으니까 일본 사진쟁이가 이런 사진을 찍는구나 싶습니다. 일본 사진쟁이가 1960년대부터 여태까지 부지런히 사진을 찍고 있지만 한국 사진쟁이는 예나 이제나 참 안 찍는구나 싶습니다. 구와바라 시세이 님 사진이 뭐 대단한 작품이겠습니까만, 이만 한 사진조차 안 찍는 한국 사진쟁이 흐름임을 헤아려 본다면, 구와바라 시세이 님 사진 따위는 ‘사진이 아니야’ 하고 생각하는 한국 사진쟁이 얼굴이 아닐까 싶어요.

 가끔 생각이 나서 구와바라 시세이 님 사진책을 책꽂이에서 모조리 끄집어 내어 바닥에 펼쳐 놓고 하나씩 넘겨 봅니다. 다른 일본 사진쟁이 책도 하나둘 꺼내어 바닥에 함께 놓고 펼칩니다. 그렇지만 이런저런 일본 사진쟁이 사진책 옆에 나란히 놓을 만한 한국 사진쟁이 책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제 주머니가 가벼워서 몇 권 못 샀다고 할 수 있습니다만, 제 가벼운 주머니를 털어서라도 장만하고픈 한국 사진쟁이 책은 그다지 눈에 뜨이지 않습니다. (4341.7.8.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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