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사람들 - 양해남 사진집
양해남 지음 / 연장통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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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울 수 없는 사진을 배우는 길
 [따순 손길 기다리는 사진책 10] 양해남, 《우리 동네 사람들》(연장통,2003)



 아이 사진을 찍을 때에는 내가 낳아서 기르는 아이이기 때문에 한결 사랑스러운 모습을 더욱 즐거이 찍지 않습니다. 내 아이가 아니더라도 아이마다 싱그럽고 맑은 기운을 듬뿍 나누어 주고 있으니, 이 기운을 고이 받으면서 사랑스러운 모습을 즐거이 찍을 수 있습니다. 나와 좀더 가까운 사람을 찍는다고 해서 좀더 부드럽거나 따스한 모습을 찍을 수는 없습니다. 나와 동떨어지거나 낯선 사람을 찍는다고 해서 그예 딱딱하거나 차가운 모습을 찍지는 않습니다. 사진으로 찍히는 사람 숨결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사진인 가운데, 사진기를 쥔 사람 마음결이 소담스레 스며드는 사진입니다.

 사진을 찍고자 하는 분들은 사진을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사진을 즐긴다 할 때에는 스스로 좋아하는 사진을 스스로 찾아나서면서 스스로 느끼는 그대로 찍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진은 배울 수 없습니다. 사진을 배운다 할 때에는 스스로 사진을 좋아하는지 좋아하지 않는지를 살피지 못하는 가운데 내 눈길이 사진으로 기쁘게 가 닿는가 가 닿지 않는가조차 느끼지 못하면서 셀 수 없이 단추를 눌러대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진찍기 일을 하는 분들은 으레 어느 분한테서 사진을 배웠다느니 어느 나라로 찾아가사 어느 대학교에서 사진을 배웠다느니 하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다시금 말씀드리지만 사진은 배울 수 없습니다. 아주 빼어난 스승을 섬기고 있다 한들, 아주 놀라운 나라밖 대학교를 다녔다 한들, 사진을 배웠다고 할 수 없습니다. 렘브란트 님한테서 그림을 배운 사람이란 없고, 반 고흐 님한테서 그림을 배운 사람이란 없습니다. 벨라스케스 님한테서 그림을 배운 사람이 있을까요. 이중섭 님이나 박수근 님한테서 그림을 배운 사람이 있는가요.

 우리한테 생각하는 힘이 있다면 어떤 대단한 분 그림을 들여다보았다든지 어느 훌륭한 분 그림 그리는 모습을 살폈다든지 하고만 살짝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붓을 들고 종이 앞에 섰다 하는 모습만이 그림그리기가 아닙니다. 종이 하나에 다 그려진 그림 하나만이 그림으로 일군 작품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진찍기를 제대로 알고 느끼며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사진찍기란 무엇인가를 참다이 바라보고 살피며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얻은 사진 한 장에 어떤 삶이 담겨 있는가를 보듬고 껴안으며 어깨동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사진에는 내가 바라보며 찍은 모습이 담기지 않습니다. 내 사진에는 내가 살아가며 부대낀 이야기를 담습니다. 내 사진에는 고운 얼굴이나 미운 얼굴이 담기지 않습니다. 나와 사귀고 있는 한 사람 삶을 얼굴에 빗대어 담습니다. 내 사진에는 풍경이 담기지 않습니다. 내 사진에는 사람들이 어우러지며 살아가는 터전을 담습니다.

 내 이야기를 담는 사진이기에 누구한테서 배울 수 없는 사진이지만, 누구를 가르칠 수도 없는 사진입니다. 나는 내 이야기를 담고 당신은 당신 이야기를 담는 사진입니다. 나는 내 이야기를 글로 쓰고 당신은 당신 이야기를 글로 씁니다. 나는 내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리며 당신은 당신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립니다.

 다만 한 가지 가르치거나 배울 수 있다면 사진기라는 기계를 다루는 솜씨입니다. 필터를 어떻게 건사한다든지 손수 인화하고 현상하는 솜씨라든지 어떤 세발이를 쓰면 알맞을까 하는 대목은 배우거나 가르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진기를 골라들고 어떤 렌즈를 끼워서 쓰느냐마저 따로 가르치거나 배울 수 없습니다. 스스로 다루어 보지 않은 기계를 누군가 알려준다고 해서 섣불리 쓸 수 없습니다. 나 스스로 지내 보아야 살 만한 보금자리인가 아닌가를 알 수 있습니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괜찮은 아파트’라는 광고가 대문짝하게 나온다 해서 이러한 집이 나한테 살 만한 보금자리가 되지 않습니다. 잘생기거나 이름난 연예인이 광고하는 사진기가 내 사진삶에 걸맞을 기계가 되지 않습니다. 250킬로미터까지 달릴 수 있는 자가용을 뽑아야 내가 일터와 집을 오가는 데에 알뜰살뜰 굴릴 수 있을까요. 한 달에 천만 원쯤은 벌어야 뭔가 일다운 일을 하는 셈이라 할 만한지요.

 이리하여 사진찍기를 비롯해서 우리가 하루하루 꾸리는 삶 모든 자리 이야기는 어느 한 가지조차 누가 가르칠 수 없고, 누구한테서 배울 수 없습니다. 우리는 사진기를 쥐기 앞서 ‘사진찍기는 혼자서 뒹굴며 즐기는 삶’임을 헤아려야 합니다. 나 스스로 좋아하는 삶이요 나 스스로 즐기는 사진찍기를 이어가고 있다면, 이때에 비로소 사진책 《우리 동네 사람들》(연장통,2003)에 담긴 멋과 맛을 조촐히 느낄 만합니다. 누구나 펼칠 수 있고 누구라도 살 수 있는 사진책 하나인 《우리 동네 사람들》이지만, 아무나 읽어내거나 아무라도 톺아볼 수 없는 사진책 하나인 《우리 동네 사람들》입니다.

 사진책 《우리 동네 사람들》을 일군 양해남 님은 충청남도 금산에서 태어나 자라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 사진책에는 금산사람 삶을 금산사람 눈길로 금산사람답게 담아낸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그런데 책이름은 “금산 마을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 동네” 사람들이라고 붙입니다.

 우리한테 생각해 볼 수 있는 기운이 조금 남아 있다면, 거듭 생각을 기울일 대목입니다. 최민식 님은 “사람”을 찍었지 “부산사람”을 찍지 않았습니다. 김기찬 님은 “골목길”을 찍었지 “서울골목길”을 찍지 않았습니다. 양해남 님은 당신 삶터에서 금산사람을 찍었으나, “금산사람”이라기보다 “우리 동네 사람”을 찍었습니다.

 양해남 님으로서는 굳이 “금산 마을 사람들” 같은 이름을 붙일 까닭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동네가 금산이기는 하지만, 말 그대로 우리 동네에서 살아가며 우리 동네 이야기를 엮었으니까요. 먼 데서 구경 오듯 드나들며 금산을 찍은 사진책이 아닙니다. 고향을 떠나 있다가 모처럼 찾아와서 휘리릭 둘러보며 금산을 담은 사진책이 아닙니다. 말 그대로 금산에서 부대끼면서 스스럼없이 마주한 사람들을 사진이라는 징검다리로 실어낸 사진책입니다.

 우리는 사진을 배울 수 없음을 깨닫지 못하는 채 사진을 찍고 있기 때문에 누구나 아주 놀랍도록 아름다우며 몹시 훌륭하도록 살가운 이야기를 내 나름대로 내 사진에 깃들여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진을 누구한테서 배울 수 없음을 깨닫고 있다면 다른 이 흉내를 낸다든지 다른 이 솜씨를 베낀다든지 다른 이 사진길을 따라 걷는다든지 하지 않습니다. ‘걸작’이나 ‘명작’을 노릴 까닭이 없을 뿐더러, ‘걸작’이나 ‘명작’이라는 사진이 어떻게 태어나고 왜 이러한 이름이 붙는가를 옳게 헤아립니다. 우리 집 식구들 삶자락을 사진으로 담기만 하여도 얼마나 놀랍도록 아름다운데요. 내 동무와 이웃 삶결을 찬찬히 살피며 나날이 한두 장씩 꾸준히 담아내 본다면 이 사진이 얼마나 훌륭하도록 살가운데요. 아니, 우리는 내 모습을 나 스스로 찍으며 새삼스러운 이야기를 엮을 수 있습니다. 내가 살아가며 마주한 사람들이라든지 내가 돌아다니며 만난 모습이라든지 한결같이 알뜰살뜰 사진으로 담으면서 온누리에 꼭 하나만 있는 싱그럽고 씩씩하며 돋보이는 사진열매 하나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러러 마지 않는 ‘온누리에 손꼽히는 사진쟁이’란 바로 ‘다른 사람 사진길을 뒤따라 걷던 사람’이 아닙니다. ‘당신 스스로 느끼며 좋아하고 사랑할 당신 삶을 힘차고 신나게 걸어가며 당신 사진길이 잘났든 못났든 알차든 모자라든 스스럼없이 일군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사진책 《우리 동네 사람들》이 잘 읽히려면 아직 한참 멀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건 다른 나라에서건 이만 한 사진책 하나 살뜰히 읽으며 웃고 울며 기뻐하며 슬퍼할 만한 사람을 사귈 수 있자면 앞으로 한참 멀었습니다. 어쩌면 우리 나라에서 사진길을 걸어가는 동안에는 이 사진책 하나 푼푼하게 즐길 사람을 사귈 수 없을는지 모르겠습니다. (4343.8.14.흙.ㅎㄲㅅㄱ)


― 우리 동네 사람들(양해남 사진,연장통,2003.11.27./2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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