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전쟁
조지 풀러 / 눈빛 / 1996년 6월
평점 :
품절



 한국전쟁을 빛깔사진으로 담은 미군
 [따순 손길 기다리는 사진책 5] 조지 풀러, 《끝나지 않은 전쟁》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예순 해를 맞이하면서 여러 가지 책과 사진자료가 빛을 봅니다. 이 가운데 지난 5월 10일에 나온 《컬러로 보는 한국전쟁》(존 리치 사진,서울셀렉션 펴냄,2010)은 무척 돋보이는 사진책이라 할 만합니다. 그런데 《컬러로 보는 한국전쟁》 맨 앞자리에 실린 추천글을 쓴 사람은 백선엽 씨입니다. 백선엽 씨 이름 밑에는 ‘대한민국 육군협회 회장’과 ‘6·25전쟁 6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고문’이라는 직책이 달려 있습니다. 백선엽 씨가 한국전쟁 때 거두었다는 ‘큰 성과(쥐잡기 작전)’를 헤아린다면 《컬러로 보는 한국전쟁》이라는 사진책에 추천글을 쓸 만할 수 있으며, 한국전쟁을 기린다는 사업회 고문 자리를 맡을 만하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백선엽 씨 발자취를 돌아보면 일제강점기에 만주군관학교를 나왔고, 인천에서 당신과 동생 백인엽 씨 이름을 딴 ‘선인재단’을 만들었습니다. 만주군관학교라는 곳은 아무나 들어가는 여느 학교가 아닙니다. 인천에서 선인재단은 어마어마한 사학비리를 저지른 곳일 뿐 아니라 인천이라는 곳이 꼴통이 되도록 권력을 뒤흔들던 곳입니다. 





 어찌 생각하면 일제강점기 발자취라든지 군사독재정권 무렵 사학비리를 저질렀다든지 하는 발자국이란 ‘한국전쟁 공로’에 견주면 아무것 아닐 수 있으며, 눈감을 만한 티끌로 삼을 수 있겠지요. 그러나 속이 갑갑하고 아찔합니다. 전쟁 때에 나라를 지키겠다고 외치며 두 주먹 불끈 쥐었던 사람이라면 전쟁을 마친 다음에도 나라를 지킬 수 있게끔 맑고 깨끗하며 정갈한 삶을 꾸려야 할 노릇이 아니냐 싶습니다. 전쟁 업적과 친일부역과 사학비리란 한 자리에 한 사람한테 나란히 놓일 만한 보람은 아니라고 느낍니다.

 씁쓸한 추천글이 달린 사진책 《컬러로 보는 한국전쟁》을 한 장 한 장 넘깁니다. 추천글은 씁쓸하더라도 책에 담긴 사진이 씁쓸하지 않다면 이 사진책은 훌륭합니다. 아니, 이런저런 추천글하고는 아랑곳하지 않을 책 하나 알맹이입니다. 그런데 《컬러로 보는 한국전쟁》에 실린 사진들 또한 그리 달갑지 못합니다. ‘컬러로 보는’이라는 책이름답게 한국전쟁 모습을 빛깔사진으로 담은 드문 자료로 엮은 책이기는 하나, 한국땅에서 일어나 한겨레가 서로 치고박으며 숨을 거두고 괴로워 하던 나날을 읽을 수 없습니다. 또한, 총부리를 마주하며 다투는 가운데에도 여느 사람들은 여느 자리에서 여느 살림을 여느 매무새로 꾸리고 있던 손길을 찾을 수 없습니다.

 지난 1996년에 나온 작은 사진책 《끝나지 않은 전쟁》을 책꽂이에서 꺼내어 다시 한 번 읽어 봅니다. 《컬러로 보는 한국전쟁》이든 《끝나지 않은 전쟁》이든 미군 사진기자가 찍은 빛깔사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두 가지 책은 한국땅과 한국전쟁과 한겨레붙이를 바라보는 눈매가 사뭇 다릅니다. 아니, 한국땅과 한국전쟁과 한겨레붙이를 바라보는 눈매가 다르다기보다 두 미군 사진기자 삶이 달랐겠지요. 사뭇 다른 삶에 따라 서로 다른 눈매가 되었을 테며, 서로 다른 눈매에 따라 서로 다른 눈썰미로 한국땅에서 한국전쟁을 부대끼고 한겨레붙이를 마주하면서 빛깔사진을 담았을 테지요.

 《끝나지 않은 전쟁》이라는 사진책은 책이름 그대로 1950년 무렵이든 1996년 무렵이든, 또 2010년 무렵이든 끝나지 않았을 뿐더러 끝날 수 없어 보이는 싸움터 삶자락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끝나지 않을 싸움터로 보이는 이 자그마한 나라에서 살아가는 자그마한 사람들은 아기자기하며 앙증맞습니다. 군인들이 쏘아댄 총알과 폭탄 때문에 산과 들은 무너지고 나무는 꺾이고 풀과 꽃은 자취를 감춥니다. 그러나 군인 아닌 여느 사람들, 또 군인으로 끌려간 여느 사람들은 빈 들판에 곡식을 심어 일구고 빈 멧부리에 나무가 자라도록 마음을 쏟습니다.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헌 옷가지이든 모포이든 무엇이든 그러모아 바느질을 하여 아이들 옷과 어른들 옷을 마련합니다. 쑥대밭이 된 마을에서 흙과 나무로 집을 다시 세우고, 이런 마을 한켠에서 아이들은 어린 동생을 등에 업고 코를 흘리며 골목놀이를 합니다. 널뛰기를 하고 초콜릿을 얻으려고 미군한테 달려듭니다.

 《끝나지 않은 전쟁》이라는 작은 사진책을 덮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이 사진책 하나로 엮인 전쟁 사진을 찍은 미군 사진기자 조지 풀러 님은 ‘전쟁과 자본주의 미국 문화와 삶에 진저리를 치면서 넋이 맑고 차분하고 깨끔한 사람과 삶’을 찾아나서고 싶어 하지 않았느냐 하고. 왜냐하면 《끝나지 않은 전쟁》에 실린 한국땅 여느 한겨레붙이 모습을 보면, 오늘날 한국 사진쟁이가 인도이니 티벳이니 네팔이니 찾아가서 사진으로 담는 ‘거룩하고 수수하며 깨끗하고 착하다는 사람들’ 느낌이 나기 때문입니다. 이와 달리 《컬러로 보는 한국전쟁》이라는 사진책에 실린 한국땅 한겨레붙이 모습을 볼라치면 한 마디로 ‘전쟁 난민’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으레 떠올릴 만한 ‘코소보 아이들’이라든지 ‘아프가니스탄 아이들’이라든지 ‘콩고 아이들’과 같은 느낌이 납니다.

 한국전쟁이란 참으로 쓰디쓴 우리 옛 생채기입니다. 죽인 쪽이나 죽은 쪽이나 아프디아픈 자국입니다. 앞으로 마흔 해가 더 지나 한국전쟁 백 해를 맞이한대서 아물 수 없는 슬픔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전쟁은 왜 우리한테 생채기요 아픔이요 슬픔이 될까요. 한국전쟁을 떠올릴 때 곰곰이 살필 대목이란 북침이니 남침이니 전쟁 피해이니 하는 숫자셈이어야 할까요. 몇 백만이 죽거나 얼마나 많은 산과 들이 무너졌거나 얼마나 많은 들짐승이 나란히 숨을 거두었거나 하는 한국전쟁이 아닙니다. 이때 뒤로 남과 북이 서로서로 무기를 더 늘리려고 얼마나 큰돈을 쏟아부었으며 서로서로 독재 틀거리를 지키고자 반공과 반미를 왜 그토록 모질게 외쳤는가 하는 대목 또한 한국전쟁하고 동떨어진 이야기입니다. 한국전쟁이란 다름아닌 우리 아버지가 죽고 우리 어머니가 죽었으며 우리 누나가 죽는 가운데 우리 동생이 죽은 끔찍한 일입니다. 내 살붙이가 죽고 내 이웃이 죽었으며 내 동무가 죽은 끔찍한 일입니다. 고단하게 죽고 만 용산 철거민 또한 내 이웃이요, 미선이와 효순이 또한 내 동생이며, 한때 정치권력자와 언론들이 폭도로 내몰았던 광주사람 또한 내 살붙이입니다.

 어떤 전쟁이든 우리 삶을 망가뜨릴 뿐 아니라 괴롭히며 짓밟습니다. 어떤 전쟁에서든 가장 밑바닥에 있는 여느 사람들은 아프고 힘들며 고단해야 합니다. 어떤 전쟁이든 거룩하다거나 뜻깊다는 이름을 붙일 수 없습니다. 어떤 전쟁에서든 권력자와 지휘자는 죽지 않으며, 전쟁이 끝났든 전쟁이 없는 동안에든 평화롭고 아름다운 나라가 되자면 모든 무기와 군인이 사라져야 합니다. 나라를 지키는 참된 힘이란 무기와 군대가 아닙니다. 나라를 지키는 참다운 힘이란 여느 사람들 따스한 사랑과 땀흘려 일하는 투박한 손에서 샘솟습니다. (4343.6.25.쇠.ㅎㄲㅅㄱ)


- 끝나지 않은 전쟁 (조지 풀러 사진,신광수 엮음,눈빛 펴냄,1996.6.3./1만 원)
(재미있다고 해야 할까 모르겠으나, 사진책 《끝나지 않은 전쟁》을 엮은 신광수 님 또한 백선엽 씨한테서 도움을 받아 사진에 나온 곳이나 그무렵 이야기를 듣고 갈무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조지 풀러 - 끝나지 않은 전쟁]에 실린 사진들 





















 

[존 리치 - 컬러로 보는 한국전쟁]에 실린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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