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구 삼촌 산하작은아이들 18
권정생 지음, 허구 그림 / 산하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착한 사람하고 함께 살아가니 좋다
 [그림책이 좋다 72] 권정생(글)+허구(그림), 《용구 삼촌》



- 책이름 : 용구 삼촌
- 글 : 권정생
- 그림 : 허구
- 펴낸곳 : 산하 (2009.6.15.)
- 책값 : 9500원


 (1) 바보스러운 삶


 그림책 《용구 삼촌》에 나오는 용구 삼촌은 바보입니다. 바보란 덜 떨어진 사람을 가리키는 이름입니다. 얼음과자를 사먹을 줄 모르는 용구 삼촌이니 바보라 할 만합니다. 그런데, 그림책 《용구 삼촌》을 함께 보던 옆지기는 ‘용구 삼촌은 얼음과자를 안 좋아할 수 있잖아?’ 하고 이야기합니다. ‘뭐야?’ 하고 대꾸했지만, 바보 소리를 듣는 용구 삼촌은 얼음과자를 안 좋아할 수 있겠구나 싶습니다. 조용조용 살아가기를 좋아하는 용구 삼촌일 수 있고, 남들이 바보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아도 그저 헤헤 웃으면서 사람 좋이 살아가기를 기쁘게 여길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남들이 용구 삼촌을 두고 무어라 무어라 떠들든 말든 용구 삼촌은 용구 삼촌이 좋아하는 대로 살아가고자 합니다. 용구 삼촌한테 가장 좋은 길을 찾고, 용구 삼촌한테 가장 알맞을 길을 찾으며, 용구 삼촌한테 가장 고운 길을 찾고자 합니다. 용구 삼촌한테 주어진 먹을거리를 스스럼없이 이웃 아이한테 나누어 주기도 하고, 제 몫은 조금만 먹어도 되며, 여느 어른들처럼 몸을 깨끗하게 씻고 옷을 예쁘게 차려입지 않아도 되는 삶을 좋아합니다.

 오늘날에는 따로 ‘가난하게 살자’고 외치는 사람이 있고, 일부러 헙수룩한 옷을 챙겨입는 사람이 있으며, 환경사랑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스스로 바보처럼 살아가자는 사람은 드뭅니다. 제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가난하든 말든 기꺼이 나누며, 딱히 환경사랑인지 아닌지 모르나 조용히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 서른 살이 넘었는데도 용구 삼촌은 이렇게 모든 게 서툴렀습니다. 언제나 집안 사람들은 삼촌 때문에 마음을 놓지 못하는 것입니다. 건넛집 다섯 살배기 영미보다도 용구 삼촌은 더 어린애 같은 바보였습니다. 한 가지 비교를 하면 영미는 마을 들머리 구멍가게에서 백 원짜리 동전으로 얼음과자도 사 먹을 줄 아는데, 용구 삼촌은 그렇게도 못하니까요. 겨우 밥을 먹고 뒷간에 가서 똥 누고 고양이처럼 입언저리밖에 씻을 줄 모르는 용구 삼촌은, 언제나 야단만 맞으며 자라서인지 벙어리에 가깝게 말이 없었습니다 ..  (13쪽)
 





 그림책에 나오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용구 삼촌 삶자락이 어떠한가를 짚기는 만만하지 않습니다. 다만, 용구 삼촌한테는 옷이 여러 벌 있지는 않으리라 봅니다. 늘 한 벌만 입는지 모르며, 두 벌을 갖춘 채 한 벌을 빨아야 하면 다른 옷을 입고, 이 옷을 빨아야 하면 지난번에 빨아 둔 옷을 입으며 살아가는지 모릅니다.

 생각해 보면, 지난날 시골에서 땅을 부치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옷 가짓수가 많지 않았습니다. 꼭 한 벌만 있기도 했고, 언니나 형한테서 물려받는 옷 아니고는 없기도 했으며, 집과 일터(논밭)에서 입는 똑같은 옷 하나에 나들이를 갈 때 챙기는 옷이 겨우 하나 있곤 했습니다. 영화 〈로빙화〉를 보면 영화에 나오는 아이들은 학교에서 입는 옷을 집에서도 고스란히 입습니다. 찻잎에 붙는 벌레를 잡아서 죽이는 일을 거들 때에도 학교에서 입는 옷을 똑같이 입습니다. 어쩌면 이 아이들한테는 옷이 꼭 한 벌만 있는지 모르며, 빨아 입는 옷까지 해서 다문 두 벌만 있는지 모릅니다. 이 아이들뿐 아니라 이웃 아이들도 비슷했을 터이니 옷 투정을 한달지 옷을 사 달라고 조른달지 하는 일이란 생기지 않습니다. 흔한 말로 ‘하향평준화’가 아니라, 한 사람이 살아가면서 챙겨 입어야 할 옷 가짓수는 그리 안 많습니다. 한 벌로도 괜찮고 두 벌로 넉넉하며 세 벌이라면 넘칩니다.

 옷은 이렇다 한다면, 신은 어떨까요? 아마 신은 꼭 한 켤레만 있겠지요. 짚신이라면 틈틈이 삼아 놓을 테고, 고무신이라면 남는 켤레는 없겠지요. 아이들이라면 언니나 형한테서 물려받아 신을 텐데 뒤축이 다 닳은 고무신이라 하여도 고맙게 물려받으리라 봅니다. 용구 삼촌이라면 뒤축이 다 닳고 없어도 발가락에 잘 꿴 채 돌아다니지 않으랴 싶고, 고무신을 양말 없이 신는 사람이라면 흙길을 맨발로 다녀도 발이 아프거나 따갑지 않습니다.


.. 삼촌이 언제부터인지 누렁이를 데리고 못골 산으로 풀을 뜯기러 다니게 된 것입니다. 삼촌이 소를 데리고 간다기보다 누렁이가 삼촌을 데리고 간다고 해야 맞을 것입니다. 삼촌이 누렁이의 고삐를 잡고 있으면 누렁이가 앞장서서 가고 삼촌은 그 뒤를 따라가기만 하면 되니까요 ..  (14쪽)


 사람들이 저를 보며 으레 묻습니다. 왜 고무신을 신느냐고. 고무신을 신어도 어찌하여 검정고무신을 신느냐고.

 까닭이 달리 있지 않습니다. 2003년 가을부터 충북 충주에 있는 이오덕 님 댁에서 일을 하면서 신은 고무신인데, 시골에서 농사짓는 일을 하지는 않았으나 시골에서 흙길을 밟으며 살아갈 때에는 다른 어느 신보다 고무신이 좋습니다. 시골이라 고무신이 어울린다기보다 시골이기에 고무신이 가장 알맞았습니다. 검정고무신은 한 켤레에 3000원이요 흰고무신이나 보라고무신은 5000원입니다. 질기기로는 검정고무신이 훨씬 질기며 오래 신습니다. 값싸고 질기니 마땅히 검정고무신을 신습니다. 처음에는 발가락이나 뒤꿈치가 아팠지만 한 주쯤 지나니 발가락과 발바닥과 뒤꿈치에 꾸덕살이 차츰 늘면서 하나도 아프지 않고, 여름날에는 쉽게 벗고 쉽게 빨아 쉽게 말려서 신을 수 있어 참 좋습니다. 여느 운동신이라면 이렇게 하지 못합니다. 빨 때에도 번거롭고 말릴 때에도 오래 걸리며 값이 비쌉니다. 웬만한 운동신 한 켤레 값이라면 고무신 열 켤레 남짓 살 수 있고, 고무신 열 켤레라 한다면 열 해 남짓 신습니다. 조금 비싼 운동신이라 한다면, 이 신 한 켤레 값으로 ‘죽는 날까지 신고도 남을 만한 고무신’을 장만할 수 있어요.

 논일이든 밭일이든 해 본 분이라면 운동신이건 가죽신이건 신을 수 없음을 잘 압니다. 신으려면 고무신을 신고, 아예 맨발로 일할 때가 가장 낫습니다. 굳이 머나먼 옛날을 거슬러 헤아리지 않더라도, 사람들 발은 흙을 밟고 살아가기에 가장 알맞게 발돋움해 왔습니다. 고무신은 이런 사람 삶에 가장 걸맞는 신발이 아닌가 싶습니다. 시골에서도 신고 도시에서도 신으며 땅을 가장 가까이 느끼도록 하는 신이요, 가장 적은 돈을 들이고 가장 적은 쓰레기가 나오며, 다 닳아 못 신는 고무신짝은 흙을 담아 꽃그릇을 삼을 수 있고, 그냥 책시렁에 얹거나 벽에 걸어 놓아도 좋은 ‘장식품’이 되곤 합니다.


.. 아아! 삼촌은 죽지 않았습니다. 다복솔 나무 밑에 웅크리고 고이 잠든 용구 삼촌 가슴에 회갈색 산토끼 한 마리가 삼촌처럼 쪼그리고 함께 잠들어 있었습니다 ..  (35쪽)


 그림책에 나오는 《용구 삼촌》은 ‘여느 사람 눈길로 바라볼 때에 일다운 일을 하는 한 가지’로 ‘소몰이’를 합니다. 그림책을 읽어 보면 용구 삼촌이 하는 소몰이란 고작 ‘누렁소가 앞장서 걸어가면 그저 고삐를 잡고 뒤에서 쫄래쫄래 따라가는 모양새’입니다. 소한테 풀을 뜯기러 산에 간다기보다 누렁소가 혼자 풀을 뜯으러 가는 길에 심심할까 싶어 동무가 된다고 할 테고, 어쩌면 누렁소가 혼자 풀을 뜯으러 가면서 심심하다고 느끼어 용구 삼촌을 불러 ‘어이, 그렇게 있지 말고 나랑 함께 산에 가서 놀자!’ 하고 꼬드겼다 할 터입니다.

 여느 어른들은 다른 할 일이 많아 하지 못하는 소몰이입니다. 여느 아이들은 다른 놀이를 하고 싶어 안 하는 소몰이입니다. 그렇지만 용구 삼촌한테는 더없이 즐거운 산마실입니다. 누렁소를 비롯하여 산에서 자라는 갖가지 풀과 꽃과 나무와 짐승을 만나는 어울림인 소몰이입니다. 참 바보스러운 삶을 누리는 용구 삼촌이요, 참 바보스러워서 즐거운 용구 삼촌입니다.
 





 (2) 착한 사람, 착한 삶, 착한 이야기, 착한 그림


 누렁소를 몰고 산마실을 가는 용구 삼촌한테 마을 할배는 “용구도 이제 소를 다 뜯길 줄 알고, 색싯감만 있으면 장가도 가겠구나(15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감나무집 할배는 우스갯말로 이렇게 이야기했다는데, 아마 바보 용구 삼촌을 지아비감으로 삼으려고 하는 색시는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바보이니까요. 바보스레 살아가니까요. 욕심이나 노림수나 속셈 하나 없이 살아가는 용구 삼촌이니까요. 있는 그대로 살아가고 수수하게 살아가며 남김없이 살아가는 용구 삼촌이니까요.

 요새 사람들로서는 대학교 졸업장이 없는 용구 삼촌입니다. 아니, 고등학교 졸업장조차 없다 할 용구 삼촌입니다. 시험을 치면 거의 0점을 받을 만한 용구 삼촌입니다. 운전면허증은커녕 아무런 자격증이 없습니다. 아파트는커녕 작은 집 한 채 없을 뿐더러 전세집이나 달삯집조차 없습니다. 빈손입니다. 빈몸입니다. 두 손에 가진 물건과 이름과 돈과 힘이 없는 용구 삼촌입니다. 어느 어버이가 이와 같은 용구 삼촌한테 당신 딸아이를 시집보내려 하겠습니까.

 큰회사 일꾼으로 들어갈 수 없는 용구 삼촌을, 공무원이 될 수 없는 용구 삼촌을, 이름 날리는 글쟁이가 될 수 없는 용구 삼촌을, 교수님이든 선생님이든 될 수 없는 용구 삼촌을, 하다못해 구멍가게 하나 차릴 깜냥조차 못 되는 용구 삼촌을 누가 좋다며 달려들어 품에 안겠습니까.


.. “삼초온…….” 경희 누나가 찔끔찔끔 울기 시작했습니다. 내 눈에도 갑자기 눈물방울이 맺혀 떨어지며 콧등이 찡해졌습니다. 바보 삼촌은 그래도 우리 집에 없어서는 안 되는 너무도 따뜻한 식구인 것입니다. 바보여서 그런지, 삼촌은 새처럼 깨끗하고 착한 마음씨를 가졌습니다 ..  (22쪽) 






 용구 삼촌한테는 딱 한 가지만 있습니다. 용구 삼촌한테는 새처럼 깨끗하고 착한 마음씨 하나만 있습니다. 깨끗하고 맑고 정갈한 마음결 하나만 있습니다. 착하고 참되고 얌전한 마음밭 하나만 있습니다.

 용구 삼촌 스스로 보기에 당신 마음이 깨끗하거나 착한지는 모르리라 봅니다. 용구 삼촌은 당신 마음이 어떠하다고는 생각하지 못하는 삶이요, 당신이 누렁소하고 동무가 되어 산마실을 하는 매무새가 어떠한 줄을 돌아보지 못하는 삶이며, 멧토끼를 가슴에 안고 새근새근 잠든 마음녘이 어떠한 그릇인가를 살피지 못하는 삶입니다. 스스로 남 앞에서 내세우겠다고 하는 착한 마음이 아니니까요. 스스로 ‘난 참 착한 사람이야.’ 하고 생각하지 않는 용구 삼촌이니까요. 그저 여느 사람들이 용구 삼촌을 바라보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바보 삼촌’이라고 하다가 ‘착한 삼촌’이라고 할 뿐이니까요.

 그지없이 바보스러우며 착한 용구 삼촌이요, 더없이 바보스러우며 착한 이야기를 글로 남긴 권정생 님이며, 가없이 바보스러우며 착한 그림을 어우러 놓은 허구 님입니다. 바보스러운 글과 그림이 책으로 묶일 수 있으니 우리 나라는 ‘아주 조금은’ 바보스러운 나라가 아닌가 싶고, 아주 조금은 바보스러운 이 나라라 한다면, 아주 조금은 착한 마음이 남아 있지 않느냐 싶습니다. (4343.2.1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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