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배우 추송웅 - 말과 몸짓으로 이야기하다 예술가 이야기 1
안치운 지음 / 나무숲 / 200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린이책 <추송웅> 말고 <빠알간 피이터 추송웅> 책에 이 글을 붙이고 싶지만, 일찌감치 사라진 책이기에, 이 책에다 붙여놓습니다. 아무쪼록, 잘 읽힐 뿐 아니라, 잘 삭여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책 하나 110 ― 빠알간 피이터 추송웅이 걸었던 한길
 : 추송웅, 《빠알간 피이터 추송웅》



- 책이름 : 빠알간 피이터 추송웅
- 글 : 추송웅
- 펴낸곳 : 기린원 (1981.4.15.)



 (1) 한 사람이 걷는 길


 연극을 하던 사람 추송웅이 있습니다. 1941년에 태어나 1985년에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당신은, 고작 마흔다섯밖에 살지 못했습니다. 1977년 서른일곱 살이 될 때 무대에 선보인 〈빠알간 피터의 고백〉을 보여주기까지는 가난에 허덕이는 하루하루였습니다. 1963년, 스물셋에 연극밭에 몸을 담근 지 열다섯 해 만에 큰빛을 본 셈인데, 큰빛을 본 이듬해에 드디어 당신 이름으로 살림집을 마련할 수 있었고, 이태 뒤인 1980년에는 연극 소극장 ‘테아트르 추’를 열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달콤한 하루하루를 얼마 보내지 못한 1985년 12월 29일 새벽, 배앓이를 하다가 패혈증과 급성 심부전증으로 눈을 감았습니다. 바로 이해 1985년 5월에는 ‘모노드라마 1천 회 공연’을 이루어냈다고 하는데, 1천 회에서 더 뻗어나가지 못하고 잠들은 셈이라고 할까요.


.. 아버지는 하필이면 내가 다니는 국민학교의 교장 선생님이셨다. 위로 형님 세 분, 누님 두 분, 모두가 수재라 할 만큼 공부를 잘하셨다. 그런데 막내녀석 하나가 생긴 것도 묘하게 생긴데다 둔재요 보통 골치가 아니었다 … 담임 선생님과 아버지가 잠시 말씀을 주고받는데 아버지가 오늘 산수 공부를 직접 가르칠 터이니 양해해 달라는 내용이 아닌가? 나는 순간 뻥하고 망치로 얻어맞은 듯 아찔했다. 아버지께서는 무슨 방법, 어떠한 챙피를 주더라도 막내둥이 산수 실력을 올리겠다고 결심을 단단히 하신 모양이셨다 … “하나에 둘을 더하고 또 다섯을 더하고 다시 여섯을 더하면 모두 얼마냐? 아는 사람 손 들엇!” 딱 한 녀석만 빼놓고는 전부 손을 들었다. 물론 그 녀석은 바로 교장 선생님의 막내둥이 나였다. 순간 아버지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하셨다. 창피하시기도 하셨으리라. “추송웅 이리 나온나.” … 순간 뭔가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에 둔탁한 아픔이 왔다. 얼마 후 내가 눈을 뜬 곳은 교단 위가 아니라 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낯선 방이었다. 참다 참다 못한 아버지께서 불같이 솟아오르는 화를 못 참으시고, 지지리도 못생긴 자식을 주판으로 후려갈겨 버리신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정신이 혼미하고 후들후들 떨리던 판이라, 아버지에게 맞고는 나는 그만 기절을 하고 만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병원으로 옮겨졌고, 이 소동을 전해 들은 어머니가 빨래를 하시다 말고 방망이를 드신 채 학교와 병원으로 정신없이 뛰시면서 “깡패 교장이 자식 죽인다”고 고함을 치셨으니, 그 웃지 못할 촌극은 두고두고 학교의 얘깃거리로써 남게 되었다. 그날 밤, 퇴원을 하기 직전 누군가가 방안으로 들어오는 인기척이 나서 슬쩍 바라보니 아버지가 분명하셨다. 나는 못 본 척 눈을 감고 자는 듯 누워 있었다. 내게로 가까이 다가오신 아버님은 한동안 말이 없으셨다. 그냥 나를 내려다보신 채 상념에 잠기신 모양이었다. 갑자기 뜨거운 액체방울이 내 오른뺨 위로 떨어졌다. ‘흥, 그래도 양심은 있어서 우는가베.’ 목메인 아버지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웅아, 이제 산수 공부 안 해도 좋다. 아프지만 말아라, 잉.” ..  (23∼29쪽)


 저는 연극을 잘 모릅니다. 연극을 본 일도 몇 번 안 됩니다. 이제까지 통틀어 열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되지 싶습니다. 연극을 딱히 싫어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따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영화를 딱히 싫어하지 않으나 따로 좋아하지 않으며, 여행을 딱히 싫어하지 않으나 따로 좋아하지 않는 가운데, 춤을 딱히 싫어하지 않으나 따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연극을 제대로 만날 자리가 없었기 때문에 연극을 잘 모르며, 그리 못 즐기지 않느냐 싶습니다. 제가 태어나 자란 인천에는 연극 모임이 제법 있고, 연극을 내거는 작은극장도 있었습니다만, 연극을 슬슬 볼 만한 나이에는 학교에서 시험공부에 붙잡혀 있어야 했습니다. 시험공부에 붙잡혀야 하는 학교에서 풀려난 다음에는 고향을 떠났습니다. 고향을 떠난 뒤에는 책읽기로 삶을 익히고 세상을 배우느라 다른 곳에 눈을 두지 않았습니다.

 저는 책 하나에만 푹 빠진 채, 책 아닌 이야기는 ‘나와 다른 곳에서 나와 달리 살아가는 사람 이야기’로만 여겼습니다. 다만, 나와 다르고 나와 동떨어져 있으나, 저마다 제자리에서 즐겁고 힘차고 바르게 살아가면 넉넉하리라 생각했습니다. 나는 나대로 책밭에서 힘내고 땀흘리면 되고, 다른 분들은 다른 분들대로 그분들 텃밭에서 힘내고 땀흘리면 될 테니까요.


.. 나는 눈이 사팔뜨기였던 것이다. 나는 산수 시간만 되면 안절부절했다. 구구셈을 외우기 시작하면 더더구나 바늘방석에 앉은 것 같았다. 1단에서 2단으로 가고 2단에서 3단 4단으로, 4단이 시작되어 한 자리씩 오르면 피가 말랐다. 선생님의 주의에도 아랑곳없이 4×8이 32라고 신명나게 제창을 했다 ..  (39쪽)


 모든 학문과 생각밭과 일놀이는 ‘말’을 바탕으로 합니다. 연극이나 영화나 여행이나 춤, 또 사진이나 그림이나 만화는 ‘책’을 바탕으로 합니다. 그러니까, 말 없이 아무런 세상이 없고, 책 없이 아무런 문화나 예술이 없다 할 만합니다. 이런 느낌을 일찍부터 받았기에 저 스스로 말에 온마음을 바치고 책에 온몸을 기울였다고 봅니다. 그런데, 세상과 문화예술을 이루는 바탕인 말이요 책이지만, 바탕만으로는 썩 재미있기 어렵습니다. 주춧돌만 서서는 집을 이룰 수 없고, 기둥만 있다 하여 집은 아니니까요. 지붕도 얹고 기와도 얹으며, 온돌을 깔고 마루를 대며 창문을 달고 대문을 붙여야 집입니다. 벽에는 그림을 그릴 수 있고, 못을 박아 온갖 살림살이를 걸어 놓거나 무청이나 배추잎을 말릴 수 있습니다. 집 앞에 조그맣게 꽃밭을 일구거나 남새밭을 가꿀 수 있어요. 밑바탕이 없이는 어느 하나 이루어질 수 없다 하지만, 밑바탕만 소담스레 여길 까닭이란 없습니다. 밑바탕만으로는 우리 삶을 이룰 수 없습니다.

 말을 생각하지 않는 학문이란 뿌리가 없이 헛도는 학문이지만, 말만 생각하는 학문이 되면 따분하면서 지루합니다. 책을 생각하지 않는 연극영화란 줏대가 없이 떠도는 문화예술이지만, 책만 생각하는 연극영화가 되면 메마르고 팍팍해집니다.

 그나마, 헌책방마실을 하면서 《빠알간 피이터 추송웅》을 만났고, 2004년에 나온 《추송웅, 배우의 말과 몸짓》(안치운 씀) 같은 책을 찾아 읽으면서 어렴풋하게나마 연극을 헤아립니다. 책 몇 가지를 읽는다 하여 연극을 안다 할 수 없고, 또 스스로 보지 못한 추송웅 연극 이야기를 추송웅 님 책을 읽는다 하여 느끼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연극도 모르고 연극인 또한 모른다 하여도, 한 사람이 걷는 길은 알아보게 됩니다. 연극에 온몸을 바친 한 사람 길을 느껴 보게 되며, 연극에서 온삶을 불사른 한 사람 매무새를 만나게 됩니다.


.. 겨우겨우 나를 잊은 채 남의 인생 대역 노릇 하다 보면 하루 해가 간다. 저녁때가 되어 백반 정식이라도 먹고 싶은데, 혼자 가면 차리기 구찮다고 백반 정식은 주지도 않는다. 먹고 싶지도 않은 곰탕이나 육계장을 주인이 주는 대로 결국 먹게 되는데, 그것도 오래 먹으면 자리가 좁아 손님 못 받는다고 또 혼이 난다. 습관처럼 대포 몇 잔을 들이키고 귀가길에 들어서면 그때사 피로와 함께 소변이 마렵다. 그러나 공중 변소는 없고 빌딩 변소들은 잠겨 있어 230원 차를 먹고 다방에 안 들리면 소변 볼 수도 없다. 230원이 아까워서 골목 빌딩 벽에다 숨어서 소변을 본다. “여보, 점잖은 분이 어디다 소변을 봐요.” 뒤를 급히 돌아보니 방범대원이다. “죄송합니다. 개로 봐 주십시오. 이렇게 한 발 들고 쌀 테니 말이요…….” 후유―. 살기도 힘들다. 하루가 혼나는 것으로 시작해서 혼나는 것으로 끝나는구나 ..  (86∼87쪽)


 가난한 주제에 책으로 세계여행을 하고, 돈없는 주제에 책으로 연극을 만나고 영화를 만나고 여행을 만나며 춤을 만난다고 할까요. 제가 태어나기 앞서 사진을 찍어 온 분들이 있기 때문에, 제가 보지 못하던 지난날 모습을 볼 수 있고, 또 바로 그 지난날을 살아온 분들하고도 ‘예전 이곳이 어떠했음’을 이야기로 나누며 머리속으로 가만히 떠올려 보곤 합니다.

 추송웅 님이 연극배우로 한창 꽃을 피우던 때에 제가 함께 살고 있었다면 저 또한 추송웅 님 연극을 보면서 웃고 울고 이야기꽃을 피웠으리라 봅니다. 그러나 추송웅 님이 연극배우로 한창 꽃을 피우고 있던 줄을 몰랐을 뿐더러 연극밭에 눈길을 둔 적조차 없었기에, 외려 차분하게 ‘한 사람 추송웅’을 책으로 사귀면서 돌아봅니다. 연극하는 추송웅 님은 이렇게 이 길을 갔다면,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아이를 키우고 동네도서관을 하고 책을 만들고 자전거를 타고 골목길에서 살아가는 최종규라는 한 사람은 어떤 길을 어찌어찌 가는지 헤아립니다.

 사팔뜨기로 태어나 온통 주눅든 채 어린 나날과 젊은 나날을 보냈고, 열여덟 나이에 드디어 ‘사팔뜨기 고치는 수술’을 받으면서 “이제부터 제발 학교 잘 다니고, 부모님 속 안 썩히고 좋은 일은 다 할 테니, 제발 4×8이 32 소리만 안 듣게 해 주십시오.(41쪽)” 하고 비손을 올리던 추송웅 님 삶자락을 곱씹습니다. 저한테는 어떤 아픔이 있었을까 되씹고, 이 아픔이 제 삶을 어떻게 가꾸어 주고 있는지 생각합니다. 죽고 없는 한 사람이 걸은 길을 엿보면서, 살아 있는 한 사람이 걸을 길은 어떻게 다스릴까를 생각합니다.
 





 (2) 연극쟁이를 보며 사진쟁이를 생각


.. 연기 예술은 체험 예술이다. 신은 훌륭히 될 사람에게 여러 가지 시련을 준다고 했다. 사팔뜨기 이것도 나는 신이 준 시련으로 생각한다 … 갑자기 빠른 시간 안에 대사를 입으로만 외운다는 것은 연기자로서 가장 위험한 짓임을 그날의 그 망신스러운 실패가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 영원히 몰랐으리라 … 대사를 무조건 빨리 외우려고 덤빈 이유부터 따져 보기로 했다. 한 마디로, 빨리 남보다 먼저 이름을 날리고 스타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  (43, 119쪽)


 엊그제 서울마실을 하면서 출판사 일꾼을 세 분 만나 밥과 술을 나누었습니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가 사진기 이야기가 나오면서 저절로 ‘제가 여태까지 사진기를 열 차례 도둑맞은 일’이 흘러나옵니다.

 살림이 넉넉하지 않은 깜냥으로 잃고 또 잃고 거듭 잃었으니 사진밭에 진저리를 치거나 손을 떼거나 등을 돌릴 법도 하지만, 되레 사진밭에 더 몸을 붙이고 가까이 파고들며 깊이 껴안았습니다. 좀더 나은 렌즈를 장만하고 싶어 적금을 들던 모든 일이 물거품이 되었고, 이제는 그렇게 돈을 모을 길조차 까마득한데, 열 차례 도둑맞았던 일은 ‘싸구려 사진기를 쓰면서도 사진을 즐겁게 찍는 매무새’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뭐라고 해야 할까요. 따지고 보면 그냥 ‘사진기’이지, ‘싸구려와 비싸구려’가 따로 없었다 할 테고, ‘더 나은 렌즈와 덜 나은 렌즈’ 또한 따로 없었다 하겠습니다. 가장 비싸고 가장 대단한 렌즈를 갖추어야 ‘내가 찍고 싶은 사진을 찍을 수 있지 않’아요.


.. 고집스런 외길 인생, 20년 동안 오직 연기만을 위해서 혼신을 불태워 온 회한과 눈물의 나는 누구인가 … 그 당시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나에게 있어서 연극은 종교 의식과도 같았다. 깨끗한 마음가짐만이 좋은 연극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  (99, 115∼116쪽)


 생각해 보면, 열 차례까지 도둑맞지 않고서야 제 사진눈을 틔울 수 없었을지 모릅니다. 열 차례라는 도둑맞음은 하루하루 사진눈을 뜨도록 해 주던 제 사진길이었는지 모릅니다. 제 눈에 박힌 들보를 덜어내게 하고자 하늘이 내려준 선물과 같은 사진마음이었는지 모릅니다. 겉읽기 사진이 아닌 속읽기 사진을 하고 싶어하는 제가 참다우 속읽기 사진을 하려 한다면 어떻게 사진길을 닦고 느끼고 부대껴야 하는가를 깨우치는 아픔이었는지 모릅니다.


..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경상도 액센트가 아직 그대로 남아 있을 때였고 보니, 대뜸 “샤일록 할랍니더 …….”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샤일록 대사 중의 한 토막을 줄줄 외우기 시작했다. 어느 교수님인가 갑자기 ‘끽’ 하고 참다 못해 웃음을 터뜨린 것 같았다. 나는 속으로 ‘누군지 나의 진가를 몰라주는 사람 엿이나 먹어라’ 욕지꺼릴 퍼부어대면서 똥뱃장으로 연방 대사를 줄줄 외우고 있었더니 “알았어. 그만 해도 돼 …… 샤일록도 경상도 샤일록이 나타나니 거 참 묘하군.” … 사실 사투리를 고치려고 생각하고 그 작업에 들어갔을 때, 나름대로의 일종의 우리 나라 방언학은 연구해 보았던 것이다. 그 결과 전라도 방언이 가장 리드미컬했고 경상도 방언이 가장 감정이 풍부한 말의 액센트임을 알았다. 사실 가장 볼품없고 극적인 맛이 없는 말이 표준말, 이른바 서울말이었다. 아무런 맛도 없이 끊어지기만 하고 리듬도 없고 뉘앙스도 없이 단조로와서 한참 듣고 있으면 지루하기 짝이 없는 말이다. 특히 연극 대사로서 부적당하기 세계 제일인 것이다. 우리 나라 관객이 극장에서 툭하면 조는 버릇이 생긴 이유 중의 하나가 표준말이 연극 대사로서 부적당하기 때문이다 ..  (114, 129쪽)


 1998년부터 찍어 온 사진이니 이제 겨우 열두 해입니다. 열두 해 사진을 찍은 깜냥으로는 어디에 ‘저, 사진찍는 사람입니다’ 하는 이름을 내밀 수 없습니다. 제가 즐겨찾는 헌책방에서는, ‘저, 헌책방 스무 해 다녔습니다’ 하는 말은 함부로 꺼낼 수 없는 이름입니다. ‘헌책방 다니는 사람입니다’ 같은 말을 하자면, 짧아도 서른 해는 다녀야 하고, 마흔 해쯤 다닌 뒤에야 비로소 ‘이제 좀 헌책방을 알 만큼 다녔군요’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다만, 마흔 해 아닌 쉰 해를 다녀도 헌책방을 모르는 분은 많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진찍기를 스무 해나 서른 해를 했어도 사진을 조금도 알아채지 못하는 분들이 많지만, 대여섯 해나 서너 해 만에 사진찍기를 속속들이 알아챘다 하여도, 짧으면 열 해 동안은 ‘사진을 말하겠습니다’ 하는 주제넘은 소리를 뇌까려서는 안 된다고 느낍니다. 모를 때에는 모르니까 입을 다물고, 알 때에는 아니까 입을 닫는다고 할까요. 나 스스로 좋아하는 사진이기 때문에 모르는 동안에는 고개숙여 배우기만 하고, 조금 알아채고 눈을 뜨게 될 때에는 살며시 대꾸를 하면서 나즈막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어 본다고 할까요. 이런 흐름을 찬찬히 삭여내고서야 시나브로 사진말 한 마디 얻을 수 있고, 고맙게 얻은 사진말로 제 사진삶을 가꿀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연기자에게는 천재란 있을 수가 없다. 마치 어린아이가 태어나 걸음마를 배우고 말을 배우고 자기 스스로의 사고력에 의해 행동하고 말을 하려면 최소한 열다섯 살 이상은 되어야 하는 것과 꼭같이 배우는 그와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 … 연극은 놀이가 아니다. 따라서 좋아한다거나 취미로 해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심오하고 고도한 기술을 필요로 하는 전문 직종의 하나이다. 그저 연극이 좋아서 자기 인생에 딸린 식구들의 인생 전부를 송두리째 망쳐 놓는다는 것은 분명 죄악이다. 그렇게 해서 억지로 만들어진 연극의 경우 무언가 정신적 영양을 섭취하려는 목적으로 비싼 입장료를 치르고 객석에 앉은 관객들의 입장에서 볼 때, 그것은 분명 사회악이라고까지 일컬어질 수 있게 된다. 아무리 연극이 순수예술 운운하지만 관객의 입장에서 볼 때 입장권을 돈으로 파는 행위는 분명히 상행위이며 따라서 관객은 연극을 일종의 상품으로 대하는 소비자들인 것이다 … 만알 어떤 연극을 관람한 어느 연극 관객이 자기가 본 연극이 선전과는 전혀 다른 사기성을 발견하고는 분연히 이를 ‘소비자 보호 센터’에 고발을 했다고 하면 우리는 과연 그를 무식하다고 욕할 수 있는 입장이겠는가? ..  (169, 204쪽)


 모를 때에는 모르는 대로 부딪힙니다. 알 때에는 아는 대로 부딪힙니다. 모르니, 이것저것 가리지 않으면서 맞아들입니다. 아니, 이것저것 가리고 솎고 거르면서 꼼꼼히 살핍니다. 좋다 나쁘다를 가리는 눈이 아니라, 이것은 이것이고 저것은 저것이다 하고 알아보는 눈썰미를 기릅니다. 이것은 이리하여 반갑거나 꺼리게 되며, 저것은 저리하여 고맙거나 아쉬워 손사래를 치는 까닭을 익힙니다.

 사진을 보며 사진을 배우고, 연극을 보면서 사진을 배웁니다. 글책을 읽으며 사진책을 생각하고, 그림책과 만화책을 보면서 사진책을 떠올릅니다.

 사람들을 만나면서 사람을 헤아리지만, 사람마다 다른 느낌과 빛깔과 매무새와 생각과 말마디를 떠올리면서, 세상 숱한 사진쟁이 길이란 얼마나 다르고 너르고 고른가를 함께 헤아립니다.

 날마다 무럭무럭 자라나는 아기를 사진으로 부지런히 담아 놓으면서, 아기가 어찌어찌 자라며 튼튼한 두 다리와 팔과 제 몸뚱이로 홀로서려 하는지를 지켜봅니다. 한 사람 아름다운 목숨으로 태어난 아기는 하루아침에 말을 하지 않고 하루아침에 똥오줌 가리지 않으며 하루아침에 걷지 않습니다. 흐름이 있고 때가 있습니다. 하루아침에 이빨이 튼튼하게 돋아나지 않습니다. 하루아침에 키가 훌쩍 크지 않습니다. 차근차근 자라고 단단해집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연극쟁이 삶이든 사진쟁이 삶이든 하루아침에 ‘짜잔!’ 하고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한 해 두 해 조용히 가다듬는 가운데 이루어집니다. 아직 어리숙할 때에는 ‘아기가 어머니 손으로 떠먹여 주는 밥술’을 낼름낼름 받아먹듯, 입닥치고 사진스승 말씀만 귀기울여 들어야 합니다. 조금 자라 제 손으로 숟가락질 할 수 있을 때에는, 넌지시 몇 마디 꺼내면서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듯 배워야 합니다. 이제 혼자 밥을 하고 밥상을 차릴 수 있다면, 홀로 부딪히고 깨지면서 사진을 배워야 합니다. 바야흐로 어버이 집안에서 제금나와 홀로서기를 할 무렵이라 한다면, 이제까지는 스승으로 삼았던 사진밭 어르신을 ‘사진벗’으로 삼을 수 있을 만한 사진그릇을 선보여야 합니다.


.. 연습하러 나오는 내 뒷통수에다 “오늘 저녁 밥 지어 먹을 쌀 없어요.” 하고 울먹이는 아내의 목소릴 듣고 어찌 창조라고 일컫는 연극 연습을 할 수 있겠는가? 극단 대표의 눈치를 살피며 저 사람에게 무슨 핑계를 대고 돈을 빌릴까라는 계산을 하면서 무슨 놈의 대사가 마음에 스며들겠는가? ..  (207쪽)


 연극을 하는 사람 또한 사진을 하는 사람 삶에서 ‘연극이란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다고 느낍니다. 글을 쓰는 사람 또한 사진을 하는 사람 삶에서 ‘글쟁이란 어떤 사람인가?’를 배울 수 있다고 느낍니다.

 마땅한 노릇이지만, 온누리 온갖 곳 문화쟁이와 예술쟁이는 제 어머니와 아버지를 보면서 제 갈 길을 배웁니다. 제 어머니 아버지가 농사꾼이든 공장 노동자이든 교사이든 어떤 사람이든, 스스로 참다운 문화쟁이요 예술쟁이라 생각한다면 제 어머니와 아버지한테서 제 ‘사람길’을 익히고 배워 제 깜냥껏 슬기롭고 힘차게 걸어갈 수 있습니다.
 





 (3) ‘빠알간 피이터’가 남긴 발자국


.. 어쩌다 넥타이를 한 번 매면 자신이 꼭 위선자나 우습게만 느껴진단다. 정장은 자신을 속박하는 것 같아서 영 싫어한다. 그래도 정장을 해 봐야지 더 미남으로 보일까? ..  (103쪽)


 1981년에 나온 《빠알간 피이터 추송웅》은 다시 나오지 않습니다. 어쩌면 다시 읽히기 어려운 책일 수 있습니다. 출판사에서는 섣불리 엄두를 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우리로서는 굳이 이런 책을 되읽어야 할 까닭을 못 느낄 수 있습니다.

 《빠알간 피이터 추송웅》이 아니더라도 훌륭하고 멋지고 아름다운 이야기책은 날마다 수없이 새로 나오고 거듭 나옵니다. 짧은 삶을 마감하는 바람에 더 깊이 빛을 뽐내지 못한 추송웅 님이었다고 할 수 있으니, 《빠알간 피이터 추송웅》은 아쉬움과 모자람이 듬뿍 묻어나는 책이라 말해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 전연 다른 일로 바쁘셨던 분이 그해 365일을 온통 연극하고 같이 딩굴며 살아온 사람마냥 속속들이 극계의 사정에 통달한 척할 수가 있단 말인가? 참으로 불행하게도 우리에겐 진정한 비평가는 몇 분이 안 된다고 할 수 있겠다. 평론 부재의 이 땅에 어찌 좋은 연극이 잉태될 수 있겠는가? … 무작정하게 써갈겨대는 그들의 무책임한 글로 인하여 오늘날의 우리 연극은 더욱더 방향감각을 잃고 있다 … 바쁜 세상에 공부할 일도 많고 하는데, 연극평 하나 쓰려고 시간과 교통비 많이 들이고 하란 말이냐고 이의를 제기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또 내가 그 공연극의 연출자냐고 항의하시겠지만, 그러시는 동안에 공연에서 오는 모든 공과는 충분히 받아들여질 수가 있다고 봅니다. 이 정도의 분석과 성의 그리고 열의가 있어야만 내일의 연극에 도움이 되는 것이며, 진정한 의미의 논평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  (212∼213, 222쪽)


 그렇지만, 《빠알간 피이터 추송웅》은 아쉬움도 있고 모자람도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책이 아닌가 하고 느낍니다. 어느 한 구석 빈틈이 없이 훌륭하다면, 《빠알간 피이터 추송웅》이라는 책을 굳이 헌책방마실 여러 해를 이어가면서 찾아볼 값어치는 따로 없지 않느냐 하고 느낍니다. 저는 이 책을 찾아 달라는 부탁을 받고 여섯 해쯤 걸려 겨우 하나 찾아내어 읽었습니다만, 그래서 제가 끄적이는 느낌글을 읽으신 분 가운데 ‘나도 찾아봐야지!’ 하고 소매를 걷어붙이고 눈에 불을 켜 보아도 여섯 해는커녕 열여섯 해가 되도록 구경조차 못할 수 있습니다만, 그렇게 찾기 어려운 헌책 하나이기 때문에 한결 아름답지 않느냐 싶습니다.

 그리고, 《빠알간 피이터 추송웅》을 못 찾으면 못 찾는 대로 좋습니다. 《빠알간 피이터 추송웅》을 찾아보려고 여러 해에 걸쳐 수많은 헌책방을 수없이 들락거리는 가운데 ‘《빠알간 피이터 추송웅》하고는 또다른 깊이와 너비’를 선사하는 ‘수많은 다른 헌책’을 가득가득 만날 수 있으니까요. 이런 책을 만나며 이렇게 기쁘고, 저런 책을 만나며 저렇게 기뻐하는 가운데, 내 생각과 마음을 한껏 드높일 수 있으니까요. 이렇게 나 스스로 내 마음밭을 살찌우다가 어느 날 뜻하지 않게 《빠알간 피이터 추송웅》을 만난다면 책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겠지요. 그지없이 눈물샘이 터질 테지요.


.. 나는 너무 늦기 전에 서둘러 잃어버린 자신을 되찾기 위한 진짜 연극을 해야겠다. 이제부터는 슬그머니 숨어들어가듯 무대에 서지 말고 벌거벗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서 무대에 서야 한다. 간교한 기교로 아름답게 보여지려 노력하는 연기자가 되지 말고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추구하려 노력하는 연기자가 되어야 하겠다 ..  (266쪽)


 《빠알간 피이터 추송웅》은 연극쟁이 하나가 비로소 ‘연극하는 사람 입으로 연극이 무엇이다!’ 하고 외칠 수 있던 때에 눈물과 웃음을 듬뿍 담아서 내놓은 피땀입니다. 추송웅 님 스스로 〈빠알간 피이터〉를 무대에 올리지 않았다면 나올 수 없던 책이지만, 스스로 ‘연극이란 이러하다!’고 외치고 싶었고, 외치기 앞서 연극으로 불살라 보여주고 싶었기에 나올 수 있던 책입니다. 이제까지 어느 연극쟁이도 밟아 보지 못한 땅을 밟았던 한 사람이 온힘을 쏟아내어 엮어낸 책입니다.

 이 하나로 ‘한국연극’을 마무리하려고 낸 책은 아닙니다. ‘연극문화’를 통틀어 모두어 내는 책 또한 아닙니다. 이 하나가 작은 밑바탕이 되어 주기를 바라며 낸 책입니다. 이 하나를 밑거름 삼아 수많은 연극나무가 자라나 주기를 꿈꾸며 낸 책입니다. 그렇기에 좀 모자라거나 어수룩한 구석을 엿볼 수 있습니다. 찬찬히 다듬지 못한 성김과 어수룩함을 맛볼 수 있습니다. 만들어 가는 책이었고, 씨앗으로 뿌린 책이니 그렇습니다. 연극밥 먹는 사람은 연극밭에서, 사진밥 먹는 사진밭에서, 글밥 먹는 사람은 글밭에서, 노래밥 먹는 사람은 노래밭에서, 꾸준히 한길을 즐겁게 걸어가 주기를 꿈꾸는 마음을 담은 책입니다. (4342.6.13.흙.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