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빛씨를 심다 (2024.3.28.)

― 부천 〈빛나는 친구들〉



  레오 리오니 님이 남긴 그림책 가운데 《프레드릭》은 일찌감치 《잠잠이》란 이름으로 나왔고, 《매튜의 꿈》은 예전에 《그리미의 꿈》이란 이름으로 나왔습니다. ‘프레드릭’이나 ‘매튜’라는 이름을 살려도 안 나쁘되, ‘잠잠이’하고 ‘그리미(그림이)’처럼 새로 빚은 이름은 놀라우면서 아름답게 사랑입니다.


  가만히 잠기듯 빛으로 나아가는 길이 ‘잠’입니다. 온하루를 새롭게 일구려는 꿈이니 ‘그림’입니다. 우리가 어른으로서 어린이 곁에 서는 상냥한 숨빛이라면, 바로 ‘잠’하고 ‘그림’ 두 가지를 어질게 들려줄 노릇이라고 봅니다.


  부천 〈대성서적〉에 한참 책을 누렸습니다. 〈빛나는 친구들〉로 걸어갈까 하다가, 부천버스 8을 타려고 기다립니다. 꽤 오래 기다립니다. 안 기다리고 걸었으면 진작에 〈빛나는 친구들〉에 닿았겠거니 싶습니다. 그러나 늘 걸어다니는 삶인 터라, 이따금 일부러 버스를 타면서 다르게 마을을 바라보곤 해요.


  걷는 자리에서 보는 마을하고, 버스나 자가용을 타면서 보는 마을은 아주 다릅니다. 걷는 자리에서 보는 사람과 나무와 풀꽃이랑, 버스나 자가용을 타다가 휙 지나치는 사람과 나무와 풀꽃은 그지없이 다릅니다.


  철을 밝히는 ‘비’를 느끼고 알자면 걸어야 합니다. 아침저녁으로 갈마드는 ‘빛’을 느껴서 알려면 걸어야 합니다. ‘나’를 알고 ‘너’를 보려는 마음이라면 걸을 일입니다.


  천천히 해가 기웁니다. 해가 모두 넘어간 저녁에 마을책집에서 이야기꽃을 밝힙니다. 두런두런 이야기가 흐르다가 떡볶이도 사이에 놓습니다. 올해에 태어난 《우리말꽃》이란 책을 쓰담쓰담하다가, 말글지기라는 길을 걸은 서른 해를 돌아봅니다. 어느새 서른 해를 걸었더군요. 1994년에 틀림없이 “내가 앞으로 어느 길을 걷든, 서른 해쯤은 걸어야 빛을 볼 테지. 그런데 서른 해를 걸었어도 빛을 못 본다면, 그때에는 다시 서른 해를 걷자.” 하고 혼자 고요히 생각했어요.


  시골에서는 개구리가 깨어나서 노래하고, 봄맞이새도 찾아와서 함게 노래잔치인 밤입니다. 큰고장에서는 개구리도 봄맞이새도 풀벌레도 만나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우리 보금자리에서 울리는 밤노래가 부천 기스락까지 퍼지리라 여기면서 길손집에 깃듭니다. 짐을 풀고서 씻고 눕습니다. 초 한 자루를 켭니다.


  촛불을 켜놓고 가만히 바라보노라면, 촛불에 사람이 나타나기도 하고, 여러 말소리가 들려요. 마음을 다스리는 짬을 내면, 언제나 스스로 피어납니다. 빛을 보는 마을길입니다. 빛을 그리는 살림길입니다. 빛씨를 심는 하루길입니다.


ㅅㄴㄹ


《출판햇, 1인 명랑 출판기》(공은혜, 마음모자, 2023.11.27.)

《엄마한테 가고 싶은 날》(박희정, 2022.10.20.첫/2023.6.1.2벌)

《출판문화 696》(편집부, 대한출판문화협회, 2024.1.8.)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이계은, 빨간소금, 2024.3.13.)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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