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고치잠 2023.9.13.물.



잠든 사람은 함부로 건드리거나 깨우면 안 되는 줄 아니? 스스로 눈을 뜨고서 기지개를 켜고 개운하게 일어설 때까지 그저 지켜보거나 기다릴 일이야. 넌 애벌레더러 “왜 그렇게 잎을 잔뜩 갉아?” 하고 따지니? 넌 애벌레한테 “왜 눈도 코도 귀도 없이 입만 살아서 먹기만 하니?” 하고 투덜거리니? 너한테는 눈도 코도 귀도 있니? 그러면 너는 네 눈으로 무엇을 보고 배우니? 너한테 코가 있니? 너는 네 코로 무엇을 맡고 무슨 숨을 쉬니? 너한테 귀가 있니? 너는 네 귀로 무엇을 듣고 알아가니? 너는 네 입으로 먹거나 마시기만 하니? 네 입은 말하거나 노래하는 입이야? 너는 네 입으로 무슨 말을 어떻게 해? 네가 부르는 노래는 숲빛으로 푸르게 온누리를 품는 사랑노래이니? 네가 하는 말은 어질고 슬기롭고 착하고 참하게 누구나 돌보고 아낄 줄 아는 숲말·살림말·사랑말·새말이니? 이제 고치를 틀어 잠이 드는 애벌레로구나. 애벌레는 온몸을 사르르 녹일 때까지 잔단다. 애벌레는 온통 녹이면서 눈물바다로 새로 태어나는 숨빛이 될 때까지 잔단다. 애벌레는 몽땅 녹인 몸을 눈코귀에 더듬이에 날개를 단 새몸으로 왼오른을 똑같이 맞추고 다스릴 때까지 잔단다. 먹는 애벌레를 사랑으로 돌아보렴. 자는 애벌레를 사랑으로 지켜보렴. 나비나 나방으로 거듭난 애벌레를 사랑으로 바라보렴.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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