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네덜란드사람 (2022.10.19.)

― 서울 〈카모메 그림책방〉



  어제 하루는 책짐을 잔뜩 짊어진 채 서울 여러 곳을 휘휘 걷고 달렸습니다. 오늘은 아침에 마을책집 한 곳만 들러서 책상맡에 앉아 얘기꽃(동화)을 쓰다가 고흥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앞서 들른 창신동 책집에 찾아온 다른 손님이 꽤 큰소리로 수다꽃을 한참 피웁니다. 일찍 일어나서 걷고, 또 걷고, 내처 걷습니다. 한참 땀을 빼고서 〈카모메 그림책방〉에 닿습니다. 가을볕이 따끈따끈 내려앉습니다.


  책시렁을 헤아리다가, 그림책을 읽다가, ‘자벌레’ 그림책을 오랜만에 되읽다가 ‘레오 리오니’ 님 삶길을 노래꽃(동시)으로 문득 적어 봅니다. 처음 ‘레오 리오니’ 님 그림책을 만난 해는 1988년이라고 떠오릅니다. 그무렵에는 그림님 이름을 몰랐어요. 책집에서 동무를 기다리며 문득 집어든 책을 읽다가 눈물이 핑 돌았어요. 1994년에 네덜란드말을 배우는 배움터에 들어갔으나 그림님이 네덜란드사람인 줄 몰랐습니다. 네덜란드말을 가르치는 이들은 이분 그림책을 알까요?


  모든 말은 어버이가 맨 처음 들려주면서 물려주는데, 어른이 되어 이웃말을 처음 배우려는 사람한테는 그림책하고 노래책(동시집)이 어울립니다. 네덜란드말을 배우려는 이웃님이라면, ‘네덜란드말로 나온 레오 리오니 그림책’을 장만해서 읽으면 무척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말을 배우고 싶은 이웃나라 사람한테는 어떤 그림책이나 노래책을 건넬 만할까요? 우리는 아직 ‘우리말을 우리말답게 사랑으로 여민 그림책이나 노래책’이 거의 없지 않나요? 무늬는 한글이되 우리말이 아닌 책이 수두룩합니다.


  잘 볼 수 있기를 바라요. 서두르려는 마음을 털어내고서 느긋하게 찬찬히 보는 눈빛을 밝히기를 바라요. 책집 골마루를 한나절쯤 천천히 거닐고 또 거닐면서 두리번두리번 되읽고 새로읽는 눈망울을 가꾸기를 바라요.


  봄에도 꽃이 피고 가을에도 꽃이 핍니다. 봄볕도 온누리를 살리고, 가을볕도 온누리를 살립니다. 봄바람도 싱그럽고 가을바람도 싱그럽습니다. ‘자연 예찬’이 아닌 ‘숲을 노래’하는 마음을 한결같이 품을 적에 비로소 어른입니다. ‘문화 비평’이 아닌 ‘살림을 짓’는 손길을 아이들하고 누릴 적에 즐거운 어른이에요.


  풀씨를 돌보는 손길이 마을을 살린다고 느낍니다. 나무씨를 보듬는 손길이 나라를 살리는구나 싶습니다. 마음씨를 사랑하는 손길이 이 별을 빛낸다고 생각해요.


  다시 등짐을 짊어지고서 전철나루로 걸어갑니다. 버스나루에 닿아 꾸벅꾸벅 졸며 시외버스를 기다립니다. 시외버스를 한참 달리고서야 잠을 깹니다. 버스가 전라남도로 접어들 즈음 바깥으로 별이 보입니다. 머잖아 서울에도 별이 돋기를 빕니다.


ㅅㄴㄹ


《비밀의 숲 코끼리 나무》(프레야 블랙우드, 창비, 2022.9.30.)

《하나는 뱀이 좋아》(가니에 안즈/이구름 옮김, 나는별, 2022.9.17.)

《꿈틀꿈틀 자벌레》(레오 리오니/이경혜 옮김, 파랑새, 2003.11.15.첫/2007.5.28.3벌)

《곰인형의 행복》(가브리엘 벵상/이정기 옮김, 보림, 1996.8.30.첫/2009.2.20.15벌)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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