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깔있는책들 - 민속 149
심우성 / 대원사 / 199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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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숲노래 인문책 2023.2.26.

인문책시렁 282


《빛깔있는 책들 149 탈》

 심우성 글

 박옥수 사진

 대원사

 1994.9.30.



  《빛깔있는 책들 149 탈》(심우성, 대원사, 1994)을 읽으면, 우리 삶터에서 ‘탈’이 얼마나 자취를 감추면서 탈놀이가 잊혔는가를 어림할 만합니다. 아니, 자취를 감추거나 잊힌다기보다, 나라에서 앞장서면서 탈이며 탈놀이를 몰아내거나 짓밟았다고 여길 만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하루를 짓고 누리고 나누던 살림길을 나라에서 깡그리 내쫓았는데, 나라힘(국가권력)뿐 아니라 나라에 빌붙는 우리 스스로 내팽개쳤다고 여겨도 될 만합니다.


  아무리 무시무시한 위아래(신분계급)가 있던 조선 500해였어도 ‘탈’을 쓰고서 탈춤에 탈놀이를 하던 사람(백성)을 나무라거나 탓하거나 때리거나 괴롭히지는 않았습니다. 탈을 쓰고서 나리(양반) 앞에서 탈놀이에 탈춤을 펼 적에는 너그러이 봐주었습니다. 다만, 탈놀이에 탈춤을 할 때뿐입니다. 탈을 벗고서 함부로 말을 하거나 나리(양반)를 눈 똑바로 쳐다보다가는 볼기를 맞거나 멍석말이로 목숨을 잃던 지난날입니다.


  지난날에는 사람들(백성)이 아무런 목소리를 못 냈습니다. 우두머리(임금·왕)란 이는 우리말 아닌 중국말로만 글(상소)을 받았을 뿐이요, 글바치나 나리나 벼슬아치는 사람들(백성) 살림살이를 헤아리거나 살피지 않았습니다. 그들(권력자)은 낛(세금)을 잘 거두거나 많이 거두어들이는 길을 헤아리거나 살폈을 뿐, 사람들(백성)은 그저 부스러기(소모품)로 여겼습니다.


  이런 서슬퍼런 죽음수렁인 나라에서 탈은 얼굴을 가리고서 누구나 목소리를 터뜨릴 수 있는 작은 숨구멍이었어요. 탈로 얼굴을 가려도 누구인지 뻔히 압니다. 탈을 쓰고서 말을 하면 목소리가 살짝 바뀌지만, 누가 말을 하는지 다 알게 마련이에요. 그러나 탈을 쓰기에 마치 풀벌레나 애벌레처럼 ‘탈바꿈’을 할 수 있어요. 비록 탈을 벗으면 탈바꿈을 끝내야 하되, 탈을 쓰면서 ‘놀이’를 하고 ‘춤’을 추면서 바람을 타고 노래로 눈물을 씻을 수 있던 지난날입니다.


  자, 그러면 나라에서 왜 탈을 짓밟고 없앨 뿐 아니라, 탈놀이나 탈춤이 깡그리 사라지도록 내몰았는지 알 만하겠지요? 사람들(백성·민중·시민)이 ‘탈바꿈’을 하면서 새롭게 눈뜨고 일어난다면, 모든 우두머리는 힘(권력)을 빼앗기고 돈도 이름도 움켜쥘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푸른물결을 일으키면 모든 힘바치·돈바치·이름바치는 수수한 사람들하고 똑같이 ‘맨손으로 흙을 만지고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하는 수수한 살림길’을 가야 합니다.


  그들(권력자)은 힘·돈·이름을 놓칠까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스스로 탈바꿈하면서 스스로 놀이를 하고 춤추는 판을 몽땅 걷어치워 버렸습니다. 사람들 누구나 구경꾼(관람자·관중·관객)이 되도록 내몰았습니다. ‘스포츠·영화·책·학교·종교·문화예술’이 사람들을 구경꾼으로 내모는 담벼락입니다. 탈을 잊고 잃은 사람들한테는 아무런 춤노래가 없습니다.


ㅅㄴㄹ


처음으로 탈과 만난 것은 네댓 살 때 풍물패의 뒤를 따르면서 본 양반광대탈이 아닌가 싶다 … 집집에서 쓰다가 버린 바구니, 소쿠리, 키, 삼태기, 멍석 같은 것을 주워다가 이목구비를 적당히 붙이고 보면 참으로 그럴싸한 탈로 변한다. (4쪽)


어느 고장에서나 탈을 불에 태워 없앴는데 이것이 놀이의 마무리인 양 꼭 지켜져 왔다. 또한 탈에는 갖가지 액살이 잘 붙는 것이니 태워 버려야 한다는 것이 오랜 속신이었다. (9쪽)


백제시대에 우리에게서 건너간 기악의 옛 형태가 일본에는 그대로 전해지고 있는데 우리의 경우는 묵극인 기악에서 대사극으로, 신앙성을 띤 연희에서 세속적인 연희(예컨대 산대놀이)로 발전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 아닌가 싶다. 어쨌든 백제시대의 탈 유산이 우리보다 일본에 더 많이 남아 있어서 관심을 그곳으로 돌릴 수밖에 없다. (23쪽)


탈은 지나간 어느 시기의 표정으로 굳어버리고 마는 것이 아니라 발전하는 삶과 함께 부단히 새롭게 재창조되면서 생명력을 지니는 것이어야 한다. (110쪽)


개성을 전제로 한 통일만이 전형성을 획득하는 길이라는 이야기이다. 애매하게 고유 문화를 되뇌이다 보면 봉건의 잔재에 빠지기 쉽다. 또한 회고 취향에 머물러 생명력을 무디게 하는 죄과를 저지르게 된다. 한 예로 한국 인형의 한 전형을 찹ㅈ는다고 조선 왕조의 허리 가는 기생을 백만 개 만들어 보았자 그것은 역사의 한 편린이나 찌꺼기를 답습하는 데 불과하다. 때로는 그러한 것도 필요하다 하겠지만 역사의 주인인 보편적 일반 백성의 모습들이 본보기로 되어야만 한다. (123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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