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책 이야기 - 소년한길 어린이문학 5
이오덕 지음 / 한길사 / 2002년 7월
평점 :
품절


이오덕을 읽는 하루

― 누구나 쓰고 읽도록


《어린이책 이야기》

 이오덕

 소년한길

 2002.7.30.



  《어린이책 이야기》(이오덕, 소년한길, 2002)는 2000년 언저리에 나온 여러 어린글꽃(어린이문학)을 놓고서 줄거리와 얼거리와 말씨를 하나하나 짚으면서 우리가 어른으로서 어른답게 살아갈 넋은 무엇인가 하고 밝히는 꾸러미입니다. 재미만 흐르는 글이어서는 아이 눈을 버릴 뿐이요, 서울만 쳐다보는 글이어서는 서울아이도 시골아이도 몽땅 가두는 굴레일 뿐이요, 아이들이 쉽게 익히고 수월하게 생각을 펴도록 북돋우는 말씨를 글로 옮기지 않는다면 ‘글바치 힘자랑(문단 기득권 권력)’이 될 뿐이라고 거듭 밝히기도 합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낱말을 하나하나 따질 노릇입니다. 토씨 하나까지 오래도록 헤아릴 노릇입니다. 둘레(사회·학교)에서 널리 쓰는구나 싶은 낱말이나 말씨라 하더라도 굳이 글에까지 써야 하는가 하고 생각할 노릇이면서, 둘레에서 널리 쓰지만 오히려 이 ‘둘레에서 널리 쓰는 말’을 바로잡거나 가다듬거나 고쳐서 새말을 엮거나 지을 길을 생각하기도 할 노릇입니다.


  누가 나라지기가 되더라도 그이가 나라지기로서 옳고 바르고 참하고 착하고 아름답게 나라살림을 펴도록 지켜보고 따지고 목소리를 낼 노릇입니다. 잘 하는 일은 손뼉을 치면서 북돋우고, 잘못 하는 일이라면 따끔하게 나무라면서 바로잡도록 새길을 알려줄 노릇입니다.


  어린이가 읽을 글은 어떤가요? 어린이한테 ‘아무 말씨’나 담은 글을 읽히려 하지는 않나요? 어린이 낱말책조차 ‘교과서에 실린 낱말’을 바탕으로 엮는 우리나라입니다. ‘어린이 자람결’을 바탕으로 엮는 어린이 낱말책은 아직 하나조차 없습니다. 숱한 그림책에 어린글꽃도 ‘교과서 학습진도 연계’에 얽매입니다. 더구나 ‘배움곁책(교과서·학습지)’을 내놓는 펴냄터에서 어린글꽃을 나란히 내놓고, 어린글꽃을 내놓던 펴냄터에서 배움곁책을 내놓기까지 하는 판이에요. 돈에 미쳐 돌아간다고 여길 만한 오늘날입니다.


  어린이한테 착하고 참하고 아름다운 새길을 들려주면서 북돋울 몫을 할 어른일 텐데, ‘어른다운 어른’은 자꾸 사라지면서 ‘나이든 사람’만 늘어납니다. 나이만 먹기에 어른이 될 수 없습니다. 나이만 먹을 적에는 ‘늙은이’입니다. 어린이가 참답게 읽으면서 착하게 살림을 꾸려서 아름답게 사랑을 꽃피우는 길을 밝혀야 비로소 어린글꽃입니다. 어린글꽃조차 ‘학습 보조도구’로 삼는 판이라면 이제는 어린이한테 아무 글을 안 읽힐 일이라고 느낍니다. 아니, 어린배움터(초등학교)조차 싹 걷어치워야 하지 않을까요?


  마침종이(졸업장)를 거머쥐도록 다녀야 할 배움터가 아닙니다. ‘서울에 있는 열린배움터(대학교)’에 철썩 붙도록 바탕을 다지는 어린배움터일 수 없습니다. 나중에 돈 잘 버는 일자리를 얻도록 읽는 ‘문화교양 인문책’일 수 없습니다. 온나라가 돈판으로 흐르고, 어린글꽃을 쓰는 사람조차 돈바라기로 기운다면, 어린이는 돈만 쳐다보고 돈만 아는 굴레에 갇히게 마련입니다.


  《어린이책 이야기》는 숱한 글꾼이 자꾸 놓치거나 잊거나 뒷전으로 내모는 대목을 찬찬히 짚으려고 합니다. 아이들이 읽고 느끼고 돌아볼 ‘삶’이란 그저 ‘먹고살기’에 그칠 수 없다는 대목을 짚어 줍니다. 어린이 누구나 ‘사랑으로 가꿀 삶’과 ‘숲빛을 품는 삶’과 ‘스스로 살림을 짓는 삶’과 ‘서로 푸르게 북돋우면서 나누는 삶’과 ‘참답게 어른스레 피어날 꽃송이로 걸어갈 삶’을 어린글꽃에 담자는 생각을 들려줍니다.


  어린글꽃뿐 아니라 어른글꽃도 아무 낱말이나 쓰지 않을 수 있어야 합니다. 생각해 봐요. 아이들한테 아무 밥이나 먹여도 될까요? 아이들이 아무 데서나 살아도 될까요? 아이들이 아무 책이나 쥐어서 읽어도 될까요?


  가장 정갈히 다스린 밥옷집을 아이들한테 내어주고, 가장 알뜰히 여민 살림살이를 아이들한테 남겨주고, 들짐승과 새와 풀벌레가 넉넉히 어우러지는 푸른 들숲바다를 아이들한테 물려줄 노릇입니다. 가장 곱게 돌본 우리말과 우리글을 아이들한테 들려주면서 알려줄 때라야 비로소 ‘어른’이란 이름을 쓸 수 있습니다.


  누구나 처음에는 아기였습니다. 사랑을 받고 자라는 길에 아이로 뛰놉니다. 어느덧 어린이로 우뚝 서면서 철이 들고, 팔다리에 힘이 붙을 즈음 푸르고 젊게 새길을 여미는 사람으로 피어나지요. 서로 사랑이란 눈빛을 마주하자면, 저마다 스스로 사랑씨앗을 온몸과 온마음에 새길 줄 아는 하루를 지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나이가 스물이나 마흔이나 예순을 먹기에 어른이 되지 않습니다. 나이만 먹으면 그저 늙은이입니다. 나이를 잊고서 하루하루 새길을 닦고 새빛을 찾으며 사랑을 길어올려 나누는 숨결일 적에 고요히 맑은 어른입니다.


  어린글꽃은 스스로 어른으로 자라려는 마음인 사람이 쓸 글입니다. 문학상에 뽑히려고 발버둥을 친다거나 문학잡지에 내놓는 글이 아닌, ‘작가’ 따위 이름에 얽매이려는 사람이 써대는 글이 아닌, “나부터 사랑으로 돌보면서 어린이랑 함께 푸른씨앗을 온누리에 포근히 심는 손길로 문득 환하게 웃음짓는 기쁜 숨결로 쓸 글”로 나아갈 어린글꽃입니다.


  《어린이책 이야기》는 어린이책을 읽는 눈길을 보여주면서 어린이책을 쓰는 손길을 함께 이야기합니다. 어린글꽃을 읽고 싶다면 푸른눈길로 거듭나야지요. 어린글꽃을 쓰고 싶다면 푸른손길로 피어나야지요.


ㅅㄴㄹ


우리말에는 높이거나 낮추는 말의 등급이 많은 것이 문제가 되어 있다. 말이 이렇게 되어서 우리들의 생각이나 행동이 자유스럽지 못하고, 민주사회를 창조해 가는 일도 온갖 어려운 일에 걸리고 빠져들고 부딪히고 하여 제대로 안 된다 … 아이들이 쓰는 글을 보면 흔히 “아빠께서”라고 쓰는데, 아버지를 아버지라 하지는 않고 혀짤배기 소리로 된 ‘아빠’라 하면서 여기에다가 높인말 ‘께서’를 붙였으니, 이런 우스꽝스러운 말이 또 있겠는가. (29쪽)


정작 이 이야기를 읽고 가장 기뻐하고 힘을 얻어야 할 아이들에게는 이 작품이 절망을 안겨 주는 것으로 된다고 안 할 수 없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까? 어른들의 보호를 받고, 어른들에게 기대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어린이들이지만, 어떻게 해서라도 제 힘으로 이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없더라도 온갖 어려움을 참고 이겨내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그런 길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쓴다는 것이 대단히 어렵겠지만, 우리 아이들을 살리는 길이 그 길밖에 없다고 본다. (94쪽)


이렇게 말하면 많은 글쟁이들이 대답할 것 같다. “모두가 널리 쓰고 있는 말 가지고 뭘 그렇게 자꾸 따지는가? 무슨 말이든지 오랫동안 쓰면 저절로 우리말이 되는 것 아닌가?” 하고. 그런데, 이런 어거지말이 바로 왕조시대의 귀족 양반들의 논리요, 식민지 시대와 군사독재 시대, 그리고 신판 제국주의 외세 추종자들이 우리말과 우리글, 우리 얼을 팡먹는 글쓰기로 기득권을 지키려고 하는 속임수다. (110쪽)


무슨 말이든지 서울사람들이 쓰면 아주 앞선 말로 여겨서 요즘은 다른 지방의 어머니들도 많이 따라서 흉내내게 되었다. 이래서 모든 병든 말의 원천이 서울이다. (246쪽)


이밖에 그림에 대해서도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으나 이만 줄인다. 부디 다음에 나오는 책은 좀더 조사와 연구를 많이 하고, 우리말도 더 올바르게 써서 우리 아이들에게 정말 유익한 그림이야기 책이 되도록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말한 의견에서 혹시 잘못 말한 것이 있을지 모르는데, 그런 것이 있으면 지적해 주기 바란다. (308쪽)


70년대 초, 그 암흑의 시대에 아무리 꽉 닫혀 있는 학교 안에서 공부만 해야 했다고 하지만 그래도 고등학교를 나와 대학에 들어가려고 했던 나이라면 나라와 민족에 대한 생각은 어느 정도 있었을 터인데, 그런 고민을 했다는 이야기는 거의 없고 언제나 개인의 문제와 기분만으로 살았던 것 아닌가 싶고, 또 그때를 회상해서 글을 쓰는 지금에도 아무 생각 없이 그런 지난날 이야기를 쓰고 있다고 느껴지는데, 내가 글을 잘못 읽은 것일까? (348∼349쪽)


다만 여기서 존재한다는 말을 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고 싶다. “이 돌이 여기 존재한다”고 하는 말과 “이 돌이 여기 있다”는 말은 어떻게 다른가? … 아이들도 잘 아는 말 ‘있다’를 쓰는 것이 좋다. (373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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